【槪要】 언어의 감옥을 깨고, 무분절의 심연으로부터 '묘유(妙有)'의 기적을 재창발하는 예지의 금자탑
20세기가 낳은 불세출의 지성 이즈츠 토시히코(井筒俊彦, 1914–1993). 이슬람 신비주의(이븐 아라비의 '존재의 일성'), 고대 중국의 타오이즘(노장사상), 대승불교(唯識·中觀·華嚴·선·밀교), 고대 인도의 베단타, 나아가 서양 철학과 심층심리학을 '공시적 구조화(synchronical structuralization)' 기법으로 통합한 그의 형이상학은, 우리가 자명하다고 믿는 '객관적 세계'와 '자아'의 존립 근거를 근원부터 뒤흔드는 지적 프론티어입니다.
본 대화록에서는 서구의 본질주의를 전복하는 '존재의 근본성(우주드 / aṣālat al-wujūd)'으로의 전환부터, 언어가 세계를 구획하는 '의미적 분절화'의 메커니즘, 의식의 3층 모델(A층·M영역·B층)과 세계의 주객상응, 선의 '卽非의 논리'에 의한 존재의 투명화, 노장의 '坐忘'이 가져다주는 절대적 자유 '遊', 그리고 동서양의 각성자들이 도달한 '完成된 인간(The Perfect Man)'의 경지까지 남김없이 조망합니다. 언어를 초월한 심오한 진리를, 언어의 극한에서 명철하게 논증합니다.
서양의 전통적 철학(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본질주의)과, 이즈츠 토시히코 선생이 규명하신 동양·이슬람의 형이상학 사이에는 '존재(Being/Existence)'를 파악하는 방식이 근본부터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서양적 '본질주의(Essentialism)'와 동양적 '존재의 근본성(aṣālat al-wujūd)'의 형이상학적·인식론적 결정적 차이에 대해 상세히 가르쳐 주십시오.
대화 1: 서구 형이상학을 극복하는 동양적 存在論의 지평 ―― 本質主義에서 '존재의 근본성'으로
서양의 전통적 형이상학과, 이즈츠 토시히코가 해명한 동양·이슬람의 존재론 간의 상이는 단순한 개념이나 학술 용어의 차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 세계를 어떠한 기본 시좌에서 경험하고 있는가'라는 인식론적·존재론적 패러다임의 결정적 대립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1. 서구적 本質主義(Essentialism)의 구조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서양 전통 형이상학에서 존재 이해의 중심에 자리해 온 것은 '本質(quiddity / māhīyah)'이었습니다. 이 입장에서는 먼저 개개의 '사물(Being / mawjūd)'이나 고형화된 개체가 객관 세계에 실재한다고 간주됩니다. 예컨대 '인간', '산', '말', '탁자'와 같은 개별 사물이 제1실체(primary substance)이며, 그 사물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개념적 규정('인간성', '산성' 등)이 '본질'로 불립니다.
이 본질주의의 틀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existence / wujūd / actus essendi)'은 이미 앞서 존재하는 '본질'에 대해 사후에 외적으로 부여되는 2차적 속성, 혹은 술어(predicate)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주어로서 존재하는 사물(본질)'이 먼저 있고, '존재하고 있다'는 상태는 그 속성에 불과하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데카르트,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의 주류는 개념적 분류와 의식 표층에서의 구성 작용(본질주의)을 중심축으로 전개되었습니다.
2. 동양·이슬람적 '존재의 근본성(aṣālat al-wujūd)'으로의 전회
이에 반해 이븐 아라비와 물라 사드라(Ṣadr al-Dīn Shīrāzī), 샵자바리 등 이슬람 형이상학의 이란 학파, 그리고 노장과 불교의 심층사상을 관통하는 동양적 존재론에서는 이 주종관계가 완전히 역전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이즈츠가 강조한 '존재의 제1성·근본성(aṣālat al-wujūd)'의 입장입니다.
- 유일한 실재로서의 존재 활동: 우리가 일상에서 사물이나 개체로서 고형적으로 인식하는 '본질(māhīyah)'은 그 자체로 독립하여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유일의 실재(Ultimate Reality)란 정지된 물체가 아니라, '존재한다는 것의 순수하고 역동적인 활동·원사실(Act of Existence / actus essendi / wujūd)' 그 자체입니다.
- 본질은 '존재의 자기현현'이 드리운 그림자: 우리가 목도하는 개개의 사물과 본질은 이 유일무이하고 동적인 '존재의 流露·에너지'가 스스로를 한정하고 응고시켜 특정한 틀에 밀어 넣음으로써 생겨난 '내적 양상', '그림자', '架構的 구분(i'tibārī)'에 불과합니다. 즉 '본질이 존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존재(wujūd)가 스스로를 다양한 본질의 형태를 취하여 자기현현(tajallī)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3. 인식론적 변용과 '의식의 장'
이 존재론적 전회는 순수한 이론적 추론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본질주의는 인간의 일상적인 '표층의식(대낮의 의식)'이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고, 언어를 통해 세계를 칼질한 결과로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착각(본질주의적 편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반면 '존재의 근본성(aṣālat al-wujūd)'을 개안하기 위해서는 표층의 자아의식과 언어적 분절화를 해체하는 실존적인 인식론적 변용(선의 身心脫落, 노장의 坐忘, 수피즘의 파나[Fanā'])이 불가결합니다. 표층의 자아가 소멸하고 주관과 객관의 불투명한 장벽이 무너졌을 때, 고정된 사물의 배후로부터 일체를 관통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의 활동(wujūd)'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듯 관조되는 것입니다.
✦ 본질주의와 존재근본성의 대비
서양의 본질주의가 '산이라는 본질이 있고 그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동양의 존재론은 '순수한 존재 활동(wujūd)의 에너지가 지금 이 순간에 산이라는 특정한 형태를 취하여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고 관조합니다. 실재하는 것은 고형물이 아니라, 존재의 생생한 現成 그 자체입니다.
이즈츠 토시히코 선생의 대표 저작인 『Sufism and Taoism』에서 이슬람의 이븐 아라비가 설파하는 '존재의 일성(waḥdat al-wujūd)'과 노장사상의 '도(Tao)' 형이상학 사이에 놀라운 구조적 상응(Structural Equivalence)이 입증되어 있습니다. 궁극적 실재가 어떻게 다층적으로 자기현현(tajallī)해 가는지 그 4계층의 프로세스를 상세히 해설해 주십시오.
대화 2: '존재의 일성(Waḥdat al-Wujūd)'과 '도(Tao)'의 구조적 상응 ―― 다층적 自己顯現의 프로세스
『Sufism and Taoism(수피즘과 타오이즘)』에서 이즈츠 토시히코가 전개한 공시적 형이상학의 성과는 비교철학 역사상 불멸의 금자탑입니다. 이즈츠는 지리적·역사적·언어적으로 완전히 격절된 이슬람 신비주의와 고대 중국의 타오이즘이 인간의 의식과 존재의 최심층에서 놀라울 정도로 동일한 존재론적 구조에 도달해 있음을 논증했습니다.
그 핵심에 자리한 것이 '절대자(Absolute)'가 불가지의 무분절 상태로부터 다양한 현상세계(다의 세계)로 스스로를 단계적으로 개시해 나가는 '다층적 자기현현(tajallī)'의 과정입니다.
| 존재의 계층 | 수피즘 (이븐 아라비) | 타오이즘 (노장사상) | 형이상학적 실상 |
|---|---|---|---|
| 제1계층: 절대적 불가지 | 본체(Dhāt al-wujūd) 비밀의 보물(kanz makhfī) |
현지우현(玄之又玄) 무명(Nameless) / 혼돈(渾沌) |
일체의 개념·언어·속성 부여를 거절하는 절대적 암흑. 형이상학적 카오스. |
| 제2계층: 절대적 일성 | 아하디야(Aḥadīyah) 차별 없는 절대의 일 |
무(Non-Being / 無)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의 무 |
아직 내부에 차별상이나 다(多)의 싹을 지니지 않은, 순수하고 절대적인 일(一)의 잠재력. |
| 제3계층: 다의 일성 | 와히디야(Wāḥidīyah) 원형(a'yān thābitah) |
유(Being / 有名) 일(One) / 음양의 분화 |
신명(神名)·신의 속성으로서 만물의 원형(아키타입)이 내적으로 의식됨. '가장 성스러운 流露'. |
| 제4계층: 현상세계 | 현상계(Mawjūdāt) 자비의 숨결에 의한 조사(照射) |
만물(Ten Thousand Things / 萬物) '삼은 만물을 낳는다' |
원형이 감성적·물리적 형태를 입고 구현화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다양한 세계. |
'일과 다'의 역동적 대립물의 합일(Coincidentia Oppositorum)
이즈츠는 이 계층구조가 과거의 단 한 번뿐인 시간적 사건(천지창조)이 아니라, 매 순간 세계가 소멸하고 다음 순간에 새롭게 재창조되기를 거듭하는 '매 순간의 새로운 창조(al-khalq al-jadīd)'이며, 장자가 말한 '物化'의 끊임없는 유전 운동이라고 해독했습니다.
현상계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물은 절대자로부터 독립한 물질적 덩어리가 아니라, 유일한 존재(wujūd)가 스스로를 투영한 '파도'이자 '얼음'이며 '글자'입니다. 파도의 실체가 '바다'이고, 얼음의 실체가 '물'이며, 글자의 실체가 '먹물(잉크)'이듯, 다(多)의 세계는 즉 그대로 '일(一)인 존재의 자기현현'에 다름 아닙니다.
✦ 대립물의 합일(코인키덴티아 오포지토룸)
다즉일(多卽一), 일즉다(一卽多). 현상의 다양성(다)을 직시하면서 그 심층에 자리한 유일한 존재(일)를 동시에 관취하는 것. 이븐 아라비와 노장사상은 이 '일과 다의 긴장감 넘치는 합일' 속에서 완벽하게 공명하고 있습니다.
이즈츠 토시히코 선생의 대표작 『의식과 본질』에서 '의미적 분절화(semantic articulation)'가 곧 '존재론적 분절화(ontological articulation)'라는 전율적인 명제가 제시됩니다. 언어가 무분절의 카오스로부터 어떻게 우리가 믿는 '현실'과 '본질'을 축조해 내는지, 나아가 보편적 본질(마히야)과 개별적 본질(후위야)의 예술적 개안에 관해 설명해 주십시오.
대화 3: 언어에 의한 세계의 分節化와 '본질(Māhīyah)'의 착각 ―― 의미적 분절화와 존재론적 분절화의 동일성
이즈츠 토시히코 언어 형이상학의 백미는 "언어란 단순히 외부에 이미 존재하는 객관적 사물을 지시하기 위한 사후의 이름표(라벨)가 아니다"라는 종래의 소박한 언어관을 뿌리부터 뒤엎은 점에 있습니다. 이즈츠에게 언어란 '세계 그 자체를 산출하고 現成시키는 존재론적 칼날(ontological razor)'이었습니다.
1. 무분절한 원초적 존재 (카오스·여여)
언어가 개입하기 이전의 근원적 실재는 일체의 고착된 경계선, 개념적 틀, 이원론적 대립(자·타, 주·객, 선·악)을 지니지 않은 '무분절(inarticulate)의 유동체'입니다. 이를 노장은 '도(Tao)'나 '혼돈(渾沌)', 대승불교는 '空(Śūnyatā)'이나 '如如(Tathatā)', 수피즘은 '불가지의 본체(Dhāt)'라 불렀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산'도 '나무'도 '인간'도 독립된 고형물로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2. 의미적 분절화 = 존재론적 분절화
인간이 일상의식에서 언어('이름')를 발할 때, 언어는 이 매끄러운 무분절의 카오스에 칼날을 꽂아 넣듯 절단선(boundary)을 긋습니다.
- 경계선의 창출: 예컨대 "이것은 '꽃'이다"라고 명명하는 순간, 언어는 무분절한 전체 실재로부터 '꽃'이라 불리는 영역을 예리하게 도려내어 "꽃은 비(非)꽃(잎이나 줄기나 공기)이 아니다"라는 강고한 식별을 부여합니다.
- 동일성의 발견: 언어가 의미를 구별하고 한정하는 활동(의미적 분절화 / semantic articulation)은 그대로 객관 세계에서 '꽃'이라는 존재 단위(사물)를 출현시키는 활동(존재론적 분절화 / ontological articulation)과 완전히 동일합니다. 객관적 사물이란 언어의 칼날에 의해 분단되고 응고된 '언어적 산물'에 불과합니다. 불교는 이 언어적 절단 작용을 '分別(vikalpa)' 혹은 '戱論(prapañca)'이라 불렀습니다.
3. '언어 아뢰야식'과 '본질(Māhīyah)'의 착각
인간은 개인의 멋대로 된 생각으로 세계를 구획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태어난 특정한 언어문화 공동체 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의미 체계(언어와 이마주의 그물망)를 무의식중에 내면화합니다.
이즈츠는 대승불교 유식파(唯識派)의 개념을 확장하여, 이 무의식의 심층구조를 '언어 阿頼耶識(Linguistic Storehouse Consciousness)'이라 명명했습니다. 언어 아뢰야식 속에는 과거의 온갖 언어 활동의 찌꺼기가 '種子(bīja)'로서 축적되어 있으며, 이것이 필터(인식의 틀)가 되어 외계의 감각 데이터에 투영됩니다.
언어에 의해 오려진 영역에 대해 인간은 "이 사물에는 '장미성'이라는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본질(māhīyah)이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하며, "본질이 먼저 있고 언어는 그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다"라는 실체화의 착각(본질주의)에 빠집니다. 이즈츠는 이 '본질(māhīyah)'이야말로 인간 의식이 언어의 분절화 작용에 의해 스스로 빚어낸 가구의 그림자(i'tibārī)이며, 인간을 결박하는 정신적 감옥임을 간파했습니다.
4. 마히야(보편성)와 후위야(개체성)의 예술적 개안
이즈츠는 『의식과 본질』에서 본질을 추상적·보편적인 '마히야(māhīyah)'와 일회적인 개적(個的) 본질인 '후위야(huwīyah / 이것임·개체성)'로 구분하고, 문학과 예술에서의 본질직관 드라마투르기를 묘사했습니다.
- 보편적 본질(마히야)의 고정화: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일본 고전 시가의 세계는 구상적인 개물을 넘어선 보편적 본질(벚꽃의 미, 가을의 비애)을 고정화하여 미의 양식을 성립시킵니다.
- 개적 본질(후위야)의 응시와 전환: 마쓰오 바쇼의 "적막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에서 매미 소리라는 일순간의 감각적 지각은 개념적인 '매미 일반(마히야)'의 영역을 뚫고 들어가 눈앞의 그 일순간에만 존재하는 '이 매미 소리의 절대적 개체성(후위야)'으로 몰입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개적 본질은 그 배후에 놓인 무분절의 우주적 정적(공·무)으로 반전·돌입합니다. 예술이란 언어의 분절화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면서, 그것을 안쪽에서 폭파시켜 무분절의 진실을 드러내는 '본질직관의 기법'입니다.
✦ 언어의 양면성: 구속의 감옥이자 해방의 열쇠
언어는 일상에서 인간을 '본질주의'라는 경직된 우리 속에 가둡니다. 그러나 시나 공안, 만트라처럼 극한까지 벼려진 언어는 스스로를 내부로부터 폭파하여 무분절의 실재를 노출시키는 '해방의 도약대'로 전환됩니다.
이즈츠 토시히코 철학에서 '존재론(Ontology)'과 나란히 중요한 것이 현상계 사물을 새롭게 포착하는 '유론(Being / Phenomenal Existence / 有論)'입니다. 이즈츠 선생이 제시한 '유(有)'의 4가지 양상과, 그로부터 생기하는 '妙有(眞空妙有')의 다이내미즘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대화 4: 有論(Phenomenal Existence)의 심화 ―― 무·유·'眞空妙有'의 다이내미즘
이즈츠 토시히코의 형이상학이 지닌 최대의 매력과 독창성은, 일상의 현상세계(유자·사물의 세계)를 단순한 무가치한 '허망'이나 '환영'으로 배척하는 불철저한 허무주의(니힐리즘)에 빠지지 않고, '유(Being)'의 존재론적 가치를 밑바닥에서 건져 올려 최고도로 다시 긍정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1. 이즈츠가 밝힌 '유론'의 4가지 양상
- ① 노장사상에서의 '有': 무로부터의 생기와 한정
노자의 "천하만물은 유에서 나고, 유는 무에서 난다"가 보여주듯, '유(유명)'란 일체의 구별이 없는 절대적 '무(무명)'가 스스로를 분화·한정하여 만물을 산출하는 최초의 창조적 경계선입니다. 장자는 이 개념적 경계선을 논리적으로 해체('유무', '무무')해 감으로써 근원적인 '혼돈(무)'으로 의식을 회귀시키는 프로세스를 설파했습니다. - ② 이슬람 형이상학에서의 '有者(mawjūd)': 架構的 그림자와 현현형
이븐 아라비와 물라 사드라 등의 '존재의 일성'론에서 개별적인 '유자(mawjūd)'는 그 자체로 자립한 실체가 아닙니다. 유자란 유일한 순수존재(wujūd)가 특정한 원형(a'yān thābitah)이라는 거울에 비친 '그림자(ẓill)'입니다. 그림자라는 것은 곧 '빛(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지극히 높은 긍정적 함의를 품고 있습니다. - ③ 불교 형이상학에서의 '유(Rūpa/色)'와 '공(Śūnyatā)'의 즉일
대승불교(중관·유식·화엄)에서 사물(유·색)은 고정된 자성(svabhāva)을 갖지 않으므로 '공'입니다. 그러나 바로 고유한 본질을 갖지 않기 때문에 일체 사물은 서로 의존하며 무한한 그물망처럼 연관되어 역동적으로 생기합니다(緣起).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즉일 구조입니다. - ④ 유교·역경에서의 '소박실재론'적 『유』의 긍정적 수용
노장이나 불교가 현상계를 탈구축하는 경향을 지니는 데 반해, 유교와 『역경』의 형이상학은 눈앞의 현실세계와 시간적 유전 속의 '유'를 우주의 생명력(도·태극)의 진실한 발현으로서 있는 그대로 전면 긍정합니다. 이즈츠는 이 유교적 수용 역시 동양 철학의 불가결한 한 축으로 정당하게 평가했습니다.
2. '妙有(眞空妙有)'로의 승화
그리고 이즈츠의 유론이 도달하는 최고의 클라이맥스가 선과 화엄에서 설해지는 '妙有'의 경지입니다.
일상의 표층의식에서 우리가 파악하는 '유(사물)'는 언어에 의해 굳어진 불투명하고 단단한 '본질(māhīyah)'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좌선이나 수련을 통해 표층의 자아의식이 해체(신심탈락·파나)되어, 일체의 사물이 '절대적 무(공)' 속으로 완전히 소멸하는 체험을 거친 뒤, 변용된 의식을 가지고 다시 일상의 다(多)의 세계로 되돌아왔을 때(바카[Baqā'] / 각성), 사물은 극적인 변모를 겪으며 재발견됩니다.
이 제3단계에서 눈앞에 출현하는 '유'(예컨대 뜰 앞의 잣나무 한 그루, 길가에 핀 한 송이 들꽃)는 더 이상 개념으로 묶인 단순한 물리적 물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분절한 절대자(진공)의 온 에너지가 그 일순간·그 한 장소에 응축되어, 스스로를 직접 노출시킨 생생한 기적의 자기현현(This is it!)'으로서 찬연하게 빛을 뿜으며 일어섭니다.
고착된 본질이 탈락하고, 배후에 깃든 절대적 무가 그대로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현상――이것이야말로 이즈츠 토시히코가 말하는 '眞空妙有(True Emptiness, Marvelous Being)'이며, 동양적 유론의 궁극적 모습입니다.
✦ 진공묘유의 경지
'진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허무가 아니라, 고정된 본질을 갖지 않는 순수한 자유입니다. '묘유'란 그 무의 심연으로부터 매 순간 새롭게 솟아나는 생생한 만물의 모습입니다. 동양 철학은 무를 경유함으로써 비로소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기적으로서 전면 긍정합니다.
이즈츠 토시히코 선생이 에라노스 회의 등에서 제창하신 '의식의 다층구조(A층·M영역·B층)'와 '세계의 다층성'이 거울처럼 상응하는 주객상응 모델에 대해, 만다라와 상징공간을 포함하여 상세히 가르쳐 주십시오.
대화 5: 의식의 多層構造(A층·M영역·B층)와 세계의 다층성의 주객상응 ―― 만다라·상징공간·성스러운 언어의 창발
이즈츠 토시히코의 비교철학이 달성한 가장 아름다운 이론적 결실 중 하나가 바로 이 '주객상응(Co-relationship between Consciousness and Reality)'의 다층구조 모델입니다.
서양 근대 철학은 인간이라는 '관측자(주관)'가 고연히 존재하고, 그 외부에 '객관 세계'가 객체로서 놓여 있다는 이원론적 배치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 이즈츠는 '의식의 깊이가 깊어질수록(수직으로 하강할수록), 그에 대응하는 세계의 층위가 그대로 열려간다'는, 인식과 존재가 완벽히 일체화된 역동적 구조를 밝혔습니다.
의식의 3층과 세계의 3층의 정밀한 대응관계
| 계층 | 주관: 의식의 다층구조 | 객관: 세계의 다층성 | 정신 활동과 現成 형태 |
|---|---|---|---|
| A층 (표층) |
표층의식 (대낮의 의식) 감각·논리·언어적 식별 |
현상계 (사 / 事) 다양한 사물들 (Mawjūdāt) |
"A는 A이며, 비(非)A가 아니다"라는 동일률과 본질주의에 의해 단단히 고정된 일상세계. |
| M영역 (중간) |
중간·상징공간 (Middle region) 신화적·시적·황혼의 의식 |
원형계 (이마주의 세계) 신명·원형(a'yān thābitah) |
진언밀교의 만다라, 『역경』의 괘상, 융의 원형. 유동적이고 상징적인 형상이 상호 변용하는 장. |
| B층 (심층) |
심층의식 (언어 아뢰야식) 주객미분의 무심·초의식 |
절대적 무 (리 / 理) 도(Tao)·진공·불가지의 본체 |
일체의 분절선이 융해된 근원적 실재. 화엄의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 중중무진의 전일적 우주연관. |
주객불이와 성스러운 언어(진제)의 창발
이즈츠 형이상학의 압권은 이 대응관계가 일방통행의 관찰이 아니라, '주객타성일편(Subject and Object becoming smoothly one)'이라는 즉일적 체험이라는 점입니다.
B층(심층의식)에 도달한 인간이 다시 A층(표층)으로 시선을 되돌릴 때, 일상의 언어(속제 / 俗諦)와는 전혀 다른, 심층의 생명력을 직접 잉태한 '주술적·창발적 언어(진제 / 眞諦 / 성스러운 언어)'가 솟아납니다. 예언자의 말씀, 밀교의 진언(만트라), 선의 공안, 세아미의 노가쿠(‘구위’에서의 ‘묘’의 경지), 그리고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에 깃든 언어는 바로 이 심층의 B층과 M영역에서 길어 올린 '존재를 재창발시키는 언어'에 다름 아닙니다.
✦ 만다라(Mundus Imaginalis)의 비밀
밀교의 만다라란 B층의 '형상 없는 절대적 무(대일여래의 법신)'가 인간 의식이 지각 가능한 한계인 M영역에서 기하학적이고 다채로운 불보살의 상징군으로 자기표현한 '우주의 설계도' 그 자체입니다.
선(禪)에서의 '깨달음'의 체험 구조에 대해, 청원유신(靑原惟信)의 "산은 산이요, 산은 산이 아니요, 산은 역시 산이다"라는 3단계와, 『금강반야경』의 '즉비(卽非)의 논리', 그리고 도겐 선사의 사상을 교차시켜 주객의 상보적 운동과 '존재의 투명화'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해설해 주십시오.
대화 6: 선의 '卽非의 논리'와 존재의 투명화 ―― 청원유신의 3단계와 주객의 상보운동
이즈츠 토시히코에 의한 선의 '깨달음' 구조 해명은, 신비주의 체험이라는 언뜻 '언어도단·불가설'로 여겨지기 쉬운 영역에 최고도의 투명한 철학적 논리(즉비의 논리)의 빛을 비춘 역사적 공적입니다.
1. 청원유신의 3단계와 '즉비의 논리' 구조
- 【제1단계】 A is A ("산은 산이요" / 일상의 소박실재론):
일상의 표층의식(A층) 단계입니다. 언어의 분절화에 의해 '산'이라는 고정된 본질(māhīyah)이 도려내어져, "산은 산이고 강이 아니다"라는 동일률이 지배합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고정된 관찰자(주관)로 두고 산을 객관적 물체로서 소외시켜 바라봅니다. - 【제2단계】 A is non-A ("산은 산이 아니요" / 진공·절대적 무분절):
좌선이나 공안 실천에 의해 표층의 자아의식이 파쇄·소멸(신심탈락)합니다. 산이라는 개념적 틀이 한계를 넓혀 무한한 무분절의 실재('진공') 속으로 몰입·소실합니다. 여기서는 고형물로서의 '산'은 사라지고, "산은 산이 아니다"라는 동일률의 부정·모순 상태가 출현합니다. - 【제3단계】 A is (again) A ("산은 역시 산이다" / 묘유·즉비의 완성):
한 번 '진공(무)' 속으로 소멸했던 산이, 무의 심연으로부터 다시 생생한 구체적 존재로서 눈앞에 일어섭니다(탈락신심 / 바카[Baqā']).
이 제3단계의 논리구조야말로 이즈츠가 강조한 '卽非의 논리(Logic of Soku-Hi)'입니다. 『금강반야경』의 정형구 "말한 바 〇〇은 곧 〇〇이 아니요, 그러므로 〇〇이라 이름한다"에 따르면, 제3단계 "산은 산이다"의 진정한 내실 구조는 단순한 제1단계로의 회귀가 아니라, "A는 비(非)A이며, 그러므로 A이다 (산은 산이 아닌[진공인] 까닭에 참으로 산[묘유]이다)"라는 부정을 경유한 고차원의 절대적 긍정입니다.
2. 주객의 상보운동: '사람이 대나무가 됨'과 '대나무가 사람이 됨'
이 제3단계(깨달음)에 도달하는 순간,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극적인 두 가지 상보적 운동이 일어납니다.
- 주관의 외화('사람이 대나무가 됨'): 인간의 사적인 자아의식이 완전히 소멸하여 외계의 대상(대나무, 꽃, 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 몰입·동일화합니다. '인간'이라는 관찰자가 사라지고, '대나무 그 자체', '꽃 그 자체'가 전 우주로서 그곳에 존재합니다. 도겐 선사가 『정법안장』 現成公案 권에서 "자기를 날라 만법을 닦아 증득함을 미혹이라 하고, 만법이 나아가 자기를 닦아 증득함을 깨달음이라 한다"고 논한 사태 바로 그것입니다.
- 객관의 내화('만상이 마음이 됨'): 인간의 심신이 완전히 투명한 거울(대원경지 / 大圓鏡智)로 화함으로써 산천초목이라는 외계 경관 전체가 개인의 내면이 아닌 '절대적 의식(심·대광명)'의 투명한 내적 풍경으로서 포섭·투영됩니다. 도겐의 '산수 자체의 現成'이자 '유시(有時 / Uji)'의 체험입니다.
3. '일순간의 불꽃(The Click)'과 존재의 투명화
향엄지한(香嚴智閑)이 마당을 쓸던 중 빗자루에 튄 조약돌이 대나무에 부딪쳐 "딱" 하고 울린 소리를 듣고 극적으로 대오(大悟)한 고사처럼, 극도로 고양된 의식 상태(대의단 / 大疑團)에서 미세한 감각 자극이 일순간의 불꽃(The Click)이 되어 주관과 객관을 가로막던 불투명한 벽을 산산조각 냅니다.
이때 눈앞에 다시 출현한 '산'이나 '대나무'나 '조약돌'은 일상의 완고하고 불투명한 '본질(māhīyah)' 덩어리가 아닙니다. 분절화된 사물의 형태를 띠면서도 그 형태가 완전히 '투명화(transparent)'하여, 그 배후에 깃든 무분절의 절대적 존재(진공·공·여여)가 그대로 투과되어 보이는 것――이것이야말로 "산은 역시 산이다"라는 깨달음의 지평에서 사물이 지닌 참된 모습입니다.
✦ 존재의 투명화
깨달음이란 산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산이 '산'이라는 개념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무분절한 우주의 빛을 뿜어내며, 그대로 산으로서 투명하게 일어서는 것입니다.
『장자』에서의 '좌망(坐忘)'과 '심재(心齋)'에 관해, 이즈츠 토시히코 선생은 의식과 본질을 단계적으로 해체해 가는 정밀한 정신 기법으로 해독하셨습니다. 『장자』 대종사편 여우(女偊)의 가르침에 묘사된 단계적 탈락 프로세스와, 절대적 자유 '유(遊)'의 경지에 대해 상세히 해설해 주십시오.
대화 7: 노장에서의 '坐忘'의 실천 스텝과 탈락의 드라마 ―― 심재에서 절대적 자유 '遊'로
이즈츠 토시히코에 의한 『장자』 해독은 노장철학을 단순한 시적 은둔 사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구조를 뿌리부터 해체·재편성하는 냉철하리만치 치밀한 정신 기법(Spiritual Technology)'으로 부각시켰습니다.
1. 출발점: '좌치(坐馳)'에서 '심재(心齋 / 마음의 단식)'로
- 좌치(坐馳): 몸은 고요히 앉아 있어도 마음은 일상의 욕망, 개념적 분별(성심 / 成心), 가치판단에 이끌려 외계를 격렬히 치달리고 있는, 인간 일상의 비극적 심리상태입니다.
- 심재(心齋 / 마음의 단식): 좌망에 들기 위한 준비 단계로서 의식의 산란을 멈추고 지각의 채널을 심층으로 조여 가는 과정입니다. 장자는 여기서 3단계 청각 과정을 제시합니다.
- 귀로 듣는다: 감각기관에 의존하는 표층의 물리적 지각.
- 마음으로 듣는다: 개념과 이미지, 언어의 분별이 작동하는 표층의식(A층)의 지각.
- 기(순수정신)로 듣는다: 마음을 '허(虛 / 텅 빔)'하게 만듦으로써 자아를 소멸시키고, 주객의 구별 없이 존재의 동력을 직접 수용하는 차원.
2. '좌망(坐忘)'에서의 단계적 탈락 프로세스 (여우의 교리)
『장자』 대종사편에서 도를 얻은 성인 여우(女偊)가 젊은 수행자에게 전수한 '단계적 탈락 교수'는 의식이 자아와 세계(본질)를 벗겨 내는 완벽한 계단을 보여줍니다.
- [제1단계] 외천하(外天下 / 3일간): 자아로부터 가장 먼 '세계 전체·사회 질서'라는 개념적 틀을 망각·차단합니다.
- [제2단계] 외부(外物 / 7일간): 자아를 둘러싼 '구체적 사물·재산·인간관계'로의 고착·분절화를 망각·해체합니다.
- [제3단계] 외생(外生 / 9일간): 망각의 칼날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 '자기 자신의 물리적 생명·신체·에고의 존립' 그 자체를 완전히 탈락·망각시킵니다. 이는 선의 '신심탈락', 수피즘의 '파나(자아 소멸)'와 완벽히 부합합니다.
3. 개안(일루미네이션)과 '견독(見獨)'의 영역
생명마저도 밖으로 던져버린(외생) 순간, 의식의 심층이 폭발적으로 개안하며 일련의 신비적 지각이 연속해서 일어납니다.
- 조철(朝徹 / 아침 햇살 같은 투철함): 어둠이 걷히고 아침 해와 같은 투명하고 눈부신 영적 시각(명 / 明)이 돌연 열립니다.
- 견독(見獨 / 유일자를 봄): 공간적·시간적 차별을 초월한 '유일무이한 절대자(도 / Tao)'를 직접 관조합니다.
- 무고금(無古今):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분절화(크로노스)가 소멸하고, 무시간의 영원한 '지금'이 출현합니다.
- 입어불사불생(入於不死不生): 삶과 죽음이라는 이원론적 대립이 분화하기 이전의 원초적 영역(혼돈·대통) 속으로 완전히 몰입합니다.
4. 도달점: "형체는 마른 나무 같고, 마음은 식은 재 같다"와 절대적 자유 '遊'
이 좌망을 성취한 인간의 외양을 장자는 "형체는 고목(마른 나무) 같고, 마음은 사회(식은 재) 같다(形如槁木 心如死灰)"고 묘사했습니다. 표층에서 보면 일상의 사회적 에고나 욕망이 완전히 죽어 있기에 마른 나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차가운 죽음이 아니라 최고도의 생명력의 해방입니다.
고착된 '본질(이름)'과 '자아'라는 무거운 멍에에서 온전히 해방된 인간은, 만물이 끊임없이 서로 모습을 바꾸는 우주의 역동적 유전(物化)과 하나가 되어, '만물의 시원(始原)에서 逍遙한다(만물의 뿌리에서 노닌다)'라는 절대적 자유의 경지(遊)를 살아가게 됩니다.
✦ 소요유(逍遙遊)의 경지
언어와 본질의 주박을 산산이 부순 인간은 세계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변용 그 자체가 되어 경쾌하게 놉니다(遊). 이것이야말로 동양의 실존이 도달한 최고의 환희(Ecstasy)입니다.
이즈츠 토시히코 선생이 이슬람·타오이즘·불교를 종횡무진 횡단하며 구축하신 장대한 '존재론·유론·깨달음'의 체계는, 현대의 니힐리즘과 실존적 위기에 직면한 우리에게 어떤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일까요? '완성된 인간(al-Insān al-Kāmil / 성인·진인)'의 패러다임을 포함하여 전체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대화 8: 결론 ―― 동양적 예지의 현대적 의의와 '完成된 인간'의 패러다임
이즈츠 토시히코가 남긴 형이상학 체계의 현대적 의의는 단순한 고문헌의 복원이나 비교문화론이라는 아카데미즘의 울타리를 아득히 넘어섭니다. 그것은 '언어와 본질의 고정화에 의해 스스로 지어낸 감옥에 갇혀 실존적 니힐리즘과 분열에 신음하는 현대 문명을 향한 가장 근원적인 구원의 철학'입니다.
1. 사르트르적 '구토'와 허무주의(니힐리즘)의 극복
근대 서구의 실존주의(예컨대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언어의 의미 그물망이 찢어지고 말밑에서 무분절한 존재의 카오스가 노출되었을 때, 인간은 그것을 '기괴한 구토', '무의미한 부조리', '공포'로 체험했습니다. 서구 근대는 '본질(의미)'을 잃어버리는 것을 '니힐리즘(허무)'으로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 이즈츠가 해명한 동양의 형이상학(선·타오이즘·수피즘)은 언어의 그물망이 해체된 무분절의 영역(공·무·도)을 부조리한 공포로서가 아니라, '모든 생명과 의미가 그곳으로부터 솟아나는, 무한한 창조적 가능성으로 충만한 근원의 빛(진공묘유)'으로 체험했습니다. 이즈츠 철학은 현대인이 두려워하는 '의미의 붕괴' 바로 저편에 놓인 절대적 자유와 환희의 지평을 논리적으로 개척해 보였습니다.
2. '고착된 본질주의'로부터의 해방과 세계의 유연성 회복
현대 사회의 갈등, 민족·종교 간의 불관용, 개인적인 편집증과 우울의 뿌리에는 모두 '자신들이 정의한 본질(정의, 자아, 이데올로기)이야말로 유일한 절대적 객관 실재이다'라는 무자각한 '본질주의(Essentialism)'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즈츠는 언어에 의한 세계의 분절화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절대라고 굳게 믿고 있는 현실이나 본질은 언어 아뢰야식의 패턴에 의해 축조된 가구의 그림자(i'tibārī)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명쾌히 규명했습니다. 이 통찰은 자타의 굳어버린 경계선을 누그러뜨리고, 세계를 '투명하고 유연한 것(permeable and transparent)'으로 다시 수용하는 부드러움과, 타자를 향한 깊은 자비(同體大悲)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제공합니다.
3. '完成된 인간(The Perfect Man)'의 패러다임
이즈츠 토시히코가 『Sufism and Taoism』의 종장에서 동양 사상의 지고한 도달점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완성된 인간(수피즘에서의 al-Insān al-Kāmil[알 인산 알 카밀] / 노장에서의 성인·眞人 / 불교에서의 부처·각자)'의 이상상입니다.
'완성된 인간'이란 일상세계를 버리고 깊은 산속이나 신비의 세계에 틀어박히는 인간이 아닙니다.
- 두 시선의 동시 유지 (두 눈을 가진 자 / dhū al-'aynayn): '완성된 인간'은 한쪽 눈으로 '절대적 무분절의 일(wujūd / 공 / 도)'을 응시하면서, 다른 한쪽 눈으로 '다종다양한 현상세계(사 / 유 / 만물)'를 직시합니다.
- 존재의 완벽한 거울: 사적인 자아(에고)를 완벽히 소멸(신심탈락·파나)시킴으로써 스스로를 '투명한 거울'로 화하게 만든 인간입니다. 거울이 자기만의 색깔을 갖지 않기에, 온갖 만물의 모습(신의 자기현현)을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눈부시게 비추어 낼 수 있습니다.
✦ 맺음말: 언어의 극한에서 열리는 지평
우리는 언어에 의해 스스로를 얽어맨 작은 표층의 현실(A층)을 뚫고, 심층(B층)의 무분절한 존재의 바다로 언제든 열려 있습니다. 자아를 탈락시키고 주객불이의 '관조의 장'으로 눈뜰 때, 일상의 현상세계는 그대로 유일무이한 절대자가 그 일순간에 現成시킨 생생한 '妙有(빛나는 기적)'로서 다시 일어섭니다. 이즈츠 토시히코의 형이상학은 언어를 넘어선 그 진실을, 언어의 극한에서 우리에게 건네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요 참고문헌·저작
- 『의식과 본질 ―― 정신적 동양을 찾아서』 (이즈츠 토시히코 저): 언어적 분절화, 의미의 심층, 본질직관의 드라마투르기를 논한 주저.
- 『Sufism and Taoism: A Comparative Study of Key Philosophical Concepts』 (Toshihiko Izutsu,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이븐 아라비와 노장사상의 공시적 구조화를 이룩한 불후의 세계적 명저.
- 『The Concept and Reality of Existence』 (Toshihiko Izutsu, Keio Institute of Cultural and Linguistic Studies): 이슬람 존재론에서의 '존재의 근본성(aṣālat al-wujūd)'에 관한 영문 모노그래프.
- 『동양철학의 구조 ―― 에라노스 회의 강연집』 (이즈츠 토시히코 저): 주객상응, 의식의 다층구조(A층·M영역·B층), 만다라 이론의 정수.
- 『선으로 가는 길 ―― 존재론적 접근』 (이즈츠 토시히코 저): 청원유신의 3단계, 즉비의 논리, 향엄지한의 깨달음의 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