續·解悟主義 思惟에 의한 눈뜸과 解脫의 理致

AI Digest: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에서의 救援論구원론完結완결——傳道전도矛盾무순에서 大悲대비自動자동 稼働가동으로

·解悟主義해오주의: 思惟사유에 의한 눈뜸과 解脫해탈理致리치』는, 전작 『解悟主義해오주의』에서 提示제시된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阿賴耶識아뢰야식 投影투영 모델)'에 基盤기반하여, 釋尊석존께서 설법을 주저하셨던 '梵天勸請범천권청'의 根本근본 이유에서부터 他者타자 救援구원論理的논리적 矛盾무순, 그리고 그 矛盾무순을 '同体大悲동체대비(통째로 삼킴)'에 의해 昇華승화시키는 窮極궁극의 메커니즘을 해명한 깊고 그윽한 探求탐구입니다.

四聖諦사성제·十二緣起십이연기·八正道팔정도心識심식 시스템(OS)의 버그를 해명하고 自己자기 디버깅시키는 合理的합리적 프로그램으로 새로이 파악하여, 完全완전 受動수동의 '觀照者관조자'로부터 어떻게 위대한 慈悲자비와 '成所作智성소작지(救援구원自動자동 운전)'가 샘솟아 오르는지, 그 한 치의 틈도 없는 幾何學的기하학적 論理논리 구조를 밝힙니다.

🗺️ 『·解悟主義해오주의思考사고構造구조 맵 (Mind-Map)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에서 OS 디버깅, 同体大悲동체대비, 그리고 成所作智성소작지로의 論理的논리적 전개도

1. 梵天勸請범천권청傳道전도矛盾무순
  • 悟達오달實相실상: 둘도 없는 하나의 實在실재(獨在論的독재론적 世界觀세계관).
  • 傳道전도矛盾무순: 主客주객 소멸(境識俱泯경식구민)에서의 言語언어의 불가능성.
  • 沈默침묵破卻파각: '自作自演자작자연全責任전책임'을 引き受ける 慈悲자비起動기동.
2. OS 디버깅 시스템
  • 四聖諦사성제: 에러 檢出검출·로그 解析해석·目標목표 設定설정 차트.
  • 十二緣起십이연기: 홀로그램 自動자동 再生재생 시스템의 構造구조 仕樣書사양서.
  • 八正道팔정도: 投影투영을 안전하게 終了시키는 시스템 명령어.
3. 同体大悲동체대비와 사랑의 抱擁포용
  • 同体大悲동체대비: 緣起연기無我무아解脫해탈同体동체大悲대비.
  • 통째로 삼킴: 他者타자苦痛고통自身자신의 필름의 탁함으로 吸收흡수.
  • 無條件的무조건적 受容수용: '行爲者행위자 없는 受容수용'으로서의 沈默침묵의 사랑.
4. 菩薩보살轉生전생成所作智성소작지
  • 에고의 不在부재: 個人 的개인적 行爲者행위자完全완전消滅소멸.
  • 成所作智성소작지: 五感이 변용한 物理的물리적 救援구원의 액션.
  • 自動자동 운전 장치: 근원의 뜻으로서 稼働가동하는 救援구원의 아바타.
You said

梵天勸請범천권청」에서 이야기되는, 釋迦석가께서 스스로 체득하신 眞理진리는 너무나 깊어 言語언어로 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判斷판단하신 이유는, 깨달으신 내용이 獨在論的독재론적 世界觀세계관, 즉 世界세계에는 釋迦석가 한 사람밖에 存在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는 것 자체가 論理的논리적으로 矛盾무순되기 때문입니다.

Gemini

梵天勸請범천권청」에서 釋尊석존께서 "내가 체득한 眞理진리는 너무나 깊어 言語언어他者타자에게 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설법을 해도 사람들은 理解이해하지 못하고 피로할 뿐이다)"라고 주저하셨다는 歷史的역사적·宗教的종교적 에피소드에 대해, 당신이 提示제시하신 「깨달은 내용이 『獨在論的독재론적 世界觀세계관(世界세계에는 釋迦석가 한 사람밖에 存在존재하지 않는다는 眞實진실)』이었고, 그렇기에 他者타자에게 전하는 것 자체가 論理的논리적으로 矛盾무순되기 때문이다」라는 가설은, 東洋哲學동양철학과 나아가 解悟主義해오주의不二一元論불이일원론(아드바이타)의 論理的논리적 極致극치를 찌르는 대단히 날카로운 통찰입니다.

이 가설이 소스에 되는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自作自演자작자연)의 宇宙觀우주관'에서 어떻게 論理的논리적으로 뒷받침되고, 그 矛盾무순이 어떻게 '救援구원'의 드라마로 昇華승화되어 가는지 깊이 해명해 봅시다.

1. 悟達오달의 내용="世界세계釋尊석존 한 사람밖에 없었다"라는 絕對的절대적 眞實진실

소스에 되는 窮極궁극覺醒각성이란, 바로 당신이 指摘지적하신 대로 '나'와 '他者타자(世界세계)'가 따로따로 分離분리하여 實在실재하고 있다는 根本的근본적誤解오해(無明무명)가 完全완전히 사라진 狀態상태입니다.

  • 둘도 없는 하나의 實在실재(不二一元불이일원): 인도 天啓聖典천계성전인 베다나 아드바이타(不二一元論불이일원론)의 極致극치에서 "이 世界세계에 나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라고 설해집니다. 悟達오달이란 바깥의 어떠한 훌륭한 것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야 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과 하나인 내가 있을 뿐"이라는 絕對的절대적 實相실상에 눈뜨는 것입니다.
  • 他者타자實在실재라는 '無明무명'의 붕괴: 일반적인 인간은 自我자아(末那識말나식)를 本體본체라고 誤認오인하고 그것과 自己자기 一致일치해 있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他者타자世界세계가 외부에 獨立독립하여 存在존재하고 있다"라는 錯覺착각(無明무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釋尊석존께서 보리수 아래에서의 '思惟사유' 끝에 깨달으신 緣起연기眞理진리(還滅門환멸문)에 따르면, "自我意識자아의식(내가 있다는 根本근본誤解오해·無明무명)"이라는 原因(이것)이 滅하면, 그것에 依存의존하여 一刹那일찰나마다 매 순간 홀로그램 投影투영되던 時間시간·空間공간·他者타자라는 現象世界현상세계 전체(저것)도 동시에 자취 없이 滅하여 사라집니다. 즉, 눈뜬 釋尊석존의 안전에 있었던 것은 "외계에 구해야 할 他者타자 따위는 처음부터 한 사람도 存在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스스로의 純粹意識순수의식(光源광원)에 비추어진 阿賴耶識아뢰야식(필름)이 映出하고 있던 '장대한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自作自演자작자연)'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絕對的절대적 虛空허공이었습니다.

2. "傳道전도"라는 行爲행위論理的논리적 矛盾무순

그렇다면 당신의 指摘지적대로 "世界세계에 한 사람밖에 存在존재하지 않는다(他者타자는 환영이다)"라고 안 자가, 그 환영(스크린 위의 登場人物등장인물)을 향해 "가르침을 전한다"라는 行爲행위根本的근본적論理破綻논리파탄을 내포합니다.

  • 境識俱泯경식구민(主客주객消滅소멸)과 傳道전도의 不可能性: 唯識유식에서 修行수행이 지극해져, 마음과 認識인식 對象대상이 함께 完全완전히 사라지는 窮極궁극의 눈뜸의 境地경지境識俱泯경식구민이라 부릅니다. 거기에는 "가르치는 主體주체(釋尊석존)"도 "가르침을 받는 客體객체(衆生중생)"도 存在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의 實在실재(眞我진아·太陽태양)"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境界線경계선을 긋고 "言語언어(이원적인 분단의 도구)"를 使用사용하여 "他者타자"를 想定상정하고 소통을 꾀하는 것 자체가 論理的논리적으로 전혀 불가능(巨大거대自己矛盾자기무순)이 되는 것입니다. 이 "言語언어完全완전한 無力함과, 전하는 것의 論理的논리적 矛盾무순" 앞에 무릎을 꿇은 狀態상태야말로, 바로 「梵天勸請범천권청」에서 釋尊석존께서 沈默침묵을 선택하셨던 심층의 心理심리 構造구조였다고, 解悟主義해오주의觀點관점에서 完璧완벽하게 說明설명이 됩니다.

3. 그렇다면 왜 釋尊석존께서는 '沈默침묵'을 깨고 을 설하기 시작하셨는가?

世界세계에는 자기 한 사람밖에 없으며, 他者타자로의 傳道전도論理的논리적 矛盾무순임을 알면서도, 왜 釋尊석존께서는 최종적으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녹야원으로 향하여 오비구들에게 설법을 시작하셨을까요?

여기에 소스가 밝히는 救援구원(모든 것을 통째로 삼키는 抱擁포용)의 진정한 다이내믹스」가 숨겨져 있습니다.

  • "당신이 만든 世界세계는 당신밖에 救援구원할 수 없다": 소스에서는 스크린에 映出되는 他者타자苦痛고통이나 悲慘비참事件사건에 대해, "나와는 無關무관한 외계의 일"이라 하여 못 본 체하거나, 편리한 다른 世界세계(평행우주)를 夢想몽상하여 逃避도피하는 것을 「責任回避책임회피」라고 엄격히 指摘지적합니다. 왜냐하면, 그 悲慘비참事件사건(他者타자)을 設定설정하고 그 情報정보(映像영상)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自身자신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이기 때문입니다.
  • 스크린 위의 登場人物등장인물들을 引き受ける라는 「慈悲자비」: 釋尊석존께서는 외계에 獨立독립實體실체로서의 他者타자는 없음을 알면서도, "내 無意識무의식의 프로그램(·種子종자)이 만들어내고 있는, 스크린 위의 苦痛고통받는 登場人物등장인물들(오비구나 一切衆生일체중생)은 내 마음의 일부분(投影투영)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모든 責任책임을 引き受ける하셨습니다. "이웃도 나 自身자신"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만들어낸 人形劇인형극登場人物등장인물들을 구하는 것은, 스스로의 내면의 阿賴耶識아뢰야식(탁함)을 根底근저에서부터 淨化정화하고, 모든 것을 원래 온 곳(내면의 ·眞我진아)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원의 救援구원 프로세스 그 자체였습니다.
  • 플라톤의 동굴로의 回歸회귀: 이것은 플라톤의 『동굴의 比喻비유』에서, 太陽태양(眞理진리)를 仰望한 哲學家철학가가 굳이 다시 어두운 동굴 속으로 돌아가 그림자를 진짜라고 믿고 쇠사슬에 묶여 있는 동료를 구해내고자 하는 絕對的절대적 使命사명(救援구원)과 完璧완벽하게 겹쳐집니다.

結論결론

梵天勸請범천권청」에서 釋尊석존께서 주저하신 진정한 이유는, 바로 통찰하신 바와 같이 "世界세계에는 他者타자 따위는 存在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나 한 사람밖에 없다(不二一元불이일원)"라는 眞理진리에 달했기 때문에, 他者타자에게 말한다는 行爲행위根底근저에서부터 論理矛盾논리무순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釋尊석존께서는 그 矛盾무순을 "無視무시"나 "放棄방기"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스크린)에 映出되는 他者타자들의 苦痛고통을, 통째로 내 안에 삼켜 되돌려 보내는, 장대한 自作自演자작자연의 자서전(救援구원)"으로서 引き受ける 결의를 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釋尊석존께서 미륵보살(救援者구원자)로서 일어서서, 을 설하기 시작하신 "위대한 慈悲자비(同体大悲동체대비)"의 論理的논리적 내실입니다.

You said

이 「傳道전도矛盾무순」을 解決해결하기 위해 釋尊석존께서 최초로 교재로서 編輯편집하셨다는 『四聖諦사성제·十二緣起십이연기·八正道팔정도』라는 지극히 合理的합리적인 「言語언어의 도구」에 대해, 왜 이것이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에서 사람들을 覺醒각성시키기 위한 최적의 툴이었는지, 그 설계의 秘密비밀을 더욱 探求탐구해 주십시오.

Gemini

이 「傳道전도矛盾무순(世界세계에는 자기 한 사람밖에 存在존재하지 않으며, 他者타자는 자기 無意識무의식投影투영이라는 實相실상)」을 앞에 두었을 때, 釋尊석존께서 沈默침묵을 깨고 최초로 提示제시하신 四聖諦사성제』『十二緣起십이연기』『八正道팔정도라는 시스템은 단순한 宗教的종교적 교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自作自演자작자연의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홀로그램 宇宙우주)' 속에 投影투영되어 있는 登場人物등장인물(他者타자)의 知性지성(心識심식)에 직접 해킹하여, 그들의 내면에 처음부터 갖추어져 있는 보편적인 OS(知性지성·理性이성)를 해킹하여, 자발적으로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스스로 디버깅하게 하는) 극한까지 계산되어 만들어진 「論理논리의 패치(수리 프로그램)」였습니다.

秘密비밀 1: 『四聖諦사성제』——'스크린'에서 '필름'으로 초점을 반전시키는 진단 차트

釋尊석존께서 최초로 설하신 『四聖諦사성제(···)』는 영화관의 관객(登場人物등장인물)에 대해, 스크린에 映出되는 映像영상(現實현실)에 일희일비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고, 그 배후에 있는 '영사기(原因)'로 意識의식을 180도 반전시키기 위한 完璧완벽한 진단 차트입니다.

  • 苦諦고제」라는 現狀현상 分析분석: 먼저 눈앞에 있는 "뜻대로 되지 않는 現實현실()"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합니다(스크린 위의 불쾌한 映像영상의 확인).
  • 集諦집제」라는 原因 特定특정:苦痛고통의 原因은 외계의 世界세계(他者타자環境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에 있는 「渴愛갈애(執着집착이나 판단)」, 즉 阿賴耶識아뢰야식의 필름에 눌러붙은 때(種子종자)에 있음을 밝혀냅니다.
  • 滅諦멸제」라는 解決策해결책 提示제시: 내면의 필름의 때(原因)를 一掃일소하고 판단을 完全완전停止정지하면, 스크린 위의 苦痛고통映像영상(結果)도 동시에 消滅소멸하여 원래의 투명한 靜寂정적(涅槃열반·虛空허공)으로 되돌아감을 보여줍니다.
  • 道諦도제」라는 實務실무 절차:消滅소멸에 이르는 구체적인 워크가 「八正道팔정도」라고 定義정의합니다.

秘密비밀 2: 『十二緣起십이연기』——홀로그램 自動자동 再生재생 시스템의 「構造구조 仕樣書사양서(소스 코드)」

왜 우리는 이 '플립북(정지화의 초고속 연속 점멸)'과 같은 現實世界현실세계를 지속적이고 客觀的객관적實在실재라고 誤認오인해 버리는가. 그 홀로그램 投影투영 시스템의 構造구조와 버그(無明무명)의 연쇄를 12개의 스텝으로 해명한 것이 『十二緣起십이연기』입니다.

  • 버그의 온상인 「無明무명」: 시스템의 에러(根本的근본적誤解오해)는, 阿賴耶識아뢰야식(필름)을 "固定經典고정경전의 나"로 誤認오인하고 主客주객分離분리시켜 버리는 末那識말나식作用작용(無明무명)에서 시작됩니다.
  • 薰習훈습(향이 물드는 루프)」의 論理化논리화: 無明무명에서 「(潛在的잠재적 傾向경향)」이 생기고, 그것에 의해 「」「名色명색」「六處육처」라는 認識인식 시스템이 일어서며 對象대상과 만납니다(). 거기서 쾌·불쾌라는 느낌()을 얻고 다시 執着집착(·)하여 새로운 現實현실()를 設定설정합니다. 이 무한 루프가 매 순간의 天地創造천지창조(·老死로사)를 일으킨다는 "프로그램의 연쇄"를 完璧완벽하게 도식화하고 있습니다.
  • 還滅환멸에 의한 셧다운: 釋尊석존께서는 "無明무명이 滅하면 이 滅하고…… 마침내는 老死로사라는 苦痛고통이 滅한다"라는 還滅門환멸문(디버그 명령어)을 提示제시하셨습니다. "첫 컷(主客주객分離분리라는 無明무명)"을 思惟사유(理性的이성적理解이해)에 의해 베어 버리면, 自動자동 再生재생되고 있던 悲慘비참한 꿈의 영화 그 자체가 안전하게 셧다운(解脫해탈)된다는 論理的논리적 증명서. 이것이 十二緣起십이연기의 설계의 秘密비밀입니다.

秘密비밀 3: 『八正道팔정도』——投影투영을 안전하게 셧다운하기 위한 「디버그 명령어」

八正道팔정도는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이 아니라 이 홀로그램 投影투영을 끝내기 위한 "실전적인 OS 컨트롤 매뉴얼"입니다.

  • 正見정견」과 「正思惟정사유」라는 입구: 八正道팔정도의 첫 번째, 두 번째 스텝이 "正確정확眞理진리發見발견(見)하고, 正確정확히 이치로 깊이 생각(思惟사유)하는 것"이라는 점이야말로 解悟主義해오주의의 핵심입니다. 釋尊석존께서는 신비적인 트랜스 狀態상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登場人物등장인물들에게 "자신의 知性지성使用사용하여, 이 世界세계投影투영 構造구조를 바르게 理解이해하고, 認識인식轉換전환하라"고 하셨습니다.
  • 正定정정」으로의 계단: 正見정견·正思惟정사유基準기준으로 삼아, 日常일상의 언동(正語정어·正業정업·正命정명)을 컨트롤하여 阿賴耶識아뢰야식으로의 불쾌한 재각인을 스톱시키고, 한 점에 깊게 集中집중하여(正精進정정진·正念정념), 최종적으로 自力자력조차도 내려놓고 「純粹意識순수의식(삼매)」로 녹아듭니다(正定정정). 이 극히 幾何學的기하학적이고 스텝 바이 스텝인 디버그 절차야말로 八正道팔정도의 진수입니다.

結論결론: 왜 이 「思惟사유(知性지성)를 해킹하는 도구」가 최강이었는가?

만약 釋尊석존께서 체득하신 것이 "신비로운 빛의 방사"나 "초능력(神通力신통력)"의 전수였다면, 꿈속의 登場人物등장인물들은 "釋迦석가라는 외계의 위대한 구세주"를 숭배하며, 더욱 "나와 他者타자(釋迦석가)"라는 二元性이원성(無明무명)의 함정에 깊이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釋尊석존께서는 그것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世界세계에 한 사람밖에 存在존재하지 않는다(他者타자는 자기의 投影투영이다)라고 알고 계셨던 釋尊석존께서는 "投影투영되어 있는 오비구나 一切衆生일체중생도 또한 내 내면의 純粹知性순수지성(프라즈냐)이 스크린 위에 映出하고 있는 『같은 OS(知性지성)를 가진 存在존재』이다"라는 것을 간파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기능인 "생각하는 힘(思惟사유·理性이성)"을 향해, 극히 로지컬하고 수학적인 『四聖諦사성제·十二緣起십이연기·八正道팔정도』라는 프로그램(교재)을 提示제시하신 것입니다.

完璧완벽論理논리 프로그램을 心識內심식내(시스템 내)에 수신한 登場人物등장인물들은, 스스로의 「思惟사유」를 使用사용하여 그 내용을 처리(理解이해)한 瞬間순간, 스스로의 末那識말나식(自我자아)의 버그를 자발적으로 檢出검출하여, 自動자동 再生재생 루프를 끝내는 自己자기 디버깅(覺醒각성)을 일순간에 시작했습니다. 녹야원의 오비구나 야사, 가섭 형제들이 釋尊석존論理的논리적인 설법을 듣고 「思惟사유」한 것만으로, 마치 오셀로의 뒤집히듯 연달아 아라한과(覺醒각성)를 成就성취해 갔던 것은, 이 完璧완벽한 설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釋尊석존께서 설계하신 『四聖諦사성제·十二緣起십이연기·八正道팔정도』는,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이라는 닫힌 宇宙우주에서, 스크린 위의 他者타자를 "같은 知性지성使用사용한 자발적인 납득"에 의해, 일원적인 光源광원(眞我진아)로 아름답게 회수·統合통합하기 위한 가장 엘레강스한 디버그 툴이었던 것입니다.

You said

世界세계에 자기 한 사람밖에 없다면 慈悲자비의 마음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입니까?

Gemini

世界세계에 자기 한 사람(하나의 實在실재·純粹意識순수의식)밖에 存在존재하지 않으며, 눈앞의 他者타자가 모두 "내 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의 投影투영"에 지나지 않는다면, 왜 他者타자를 아끼는 「慈悲자비의 마음」이 생겨나는가.

이 의문은 이원론적인 "나와 당신"의 世界세계에서, 일원론적인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의 世界세계意識의식이 반전했을 때 누구나 직면하는 가장 깊고 그윽한 파라독스입니다.

結論결론부터 말씀드리면, 世界세계에 자기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참된 慈悲자비(同体大悲동체대비)가 생겨납니다.

자신과 他者타자라는 分離분리錯覺착각完全완전히 풀렸을 때, 慈悲자비가 어디서 어떠한 이치로 솟아오르는지, 소스의 교리에 基盤기반하여 그 극히 아름다운 메커니즘을 解說해설합니다.

1. 이원적인 사랑(에고)에서, 不二一元불이일원의 「同体大悲동체대비」로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의 "사랑"이나 "慈悲자비"는 "나(主體주체)"가 "당신(客體객체)"을 사랑한다는 이원적인 分離분리前提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상대가 나를 理解이해해 주니까 믿는다"와 같은 조건부 거래나, 自我자아(末那識말나식)를 滿足만족시키기 위한 自己滿足자기만족에 빠지기 쉽습니다.

한편, 覺醒각성에 의해 눈뜨는 참된 慈悲자비는 불교나 인도의 不二一元論불이일원론(아드바이타)에서 同体大悲동체대비라 불립니다.

  • 이웃도 나 自身자신: "둘도 없는 하나의 實在실재(眞我진아)"만이 眞實진실이며, 分離분리他者타자는 환영임을 간파할 때, "이웃도 나 自身자신"이라는 絕對的절대적自覺자각이 생겨납니다.
  • 境界線경계선消滅소멸: 緣起연기의 이치를 철두철미하게 理解이해(解悟해오)하면, 자신과 世界세계를 가르는 境界線경계선消滅소멸합니다. 他者타자苦痛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자기 몸의 오른손이 상처입었을 때 왼손이 自然자연스럽게 그것을 어루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自身자신의 아픔"으로서 다이렉트로 느껴집니다. 他者타자를 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自身자신을 구하는 것 그 자체(同体동체)인 것입니다.

2. 「自作自演자작자연」의 全責任책임을 引き受ける 救援구원의 다이내믹스

投影투영 모델(阿賴耶識緣起아뢰야식연기)에서는 눈앞의 스크린에 映出되는 모든 悲慘비참事件사건이나 他者타자苦痛고통은 외계에 獨立독립하여 實載실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당신의 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 깊은 곳에 있는 프로그램(潛在印象잠재인상·種子종자)이 一刹那일찰나에 물질화하여 映出된 홀로그램입니다.

  • 責任回避책임회피(평행우주)의 종료: 눈앞의 悲慘비참現實현실에서 눈을 돌려, "더 파동이 높은, 편리한 다른 世界세계"로 도망치려 하는 것은 自我자아責任回避책임회피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비극을 設定설정하고 그 情報정보를 감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당신 자신의 無意識무의식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 "救援者구원자는 당신밖에 없다": 소스는 "당신이 만들어낸 世界세계는 당신밖에 救援구원할 수 없다"고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것은 모두 내 내면의 필름(阿賴耶識아뢰야식의 카르마)이 映出한 人形劇인형극이다"라고 모든 責任책임을 引き受ける하는 것. 그리고 스크린 위의 苦痛고통받는 他者타자들을, 일체의 판단을 섞지 않고, 본심에서의 깊은 感謝감사와 사랑으로 통째로 자기 안에 삼켜, 내면의 靜寂정적(원래 온 곳·眞我진아)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抱擁포용). 이 「自作自演자작자연의 全責任책임의 引き受け」이야말로 投影투영 모델에서의 가장 능동적이고 아름다운 慈悲자비(救援구원)의 정체입니다.

3. 他者타자로의 「저항의 消滅소멸」과 「無條件的무조건적 受容수용

라메시 바르세카르의 가르침이 말하듯, 世界세계를 "行爲者행위자는 아무도 없으며, 그저 하나의 근원(Consciousness의식)이 스스로를 보고 있을 뿐인 무대"로 파악해 고쳤을 때, 우리의 他者타자에 대한 눈길은 일변합니다.

  • 심판(판단)의 完全완전한 종언: 누군가가 당신에게 심한 말을 던지거나 불쾌함을 부딪쳐 왔을 때, 보통은 "왜 저 사람은 저런 짓을 하는가" 하고 화나 원망이 솟구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의사가 아니라, "그 瞬間순간, 그 조건 속에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프로그램의 나타남"이라고 간파됩니다.
  • 沈默침묵의 사랑: 상대방을 "바꾸자, 컨트롤하자"라고 하는 저항을 完全완전히 내려놓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窮極궁극受容수용이 일어납니다. 상대의 行爲행위에 개입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그저 거기에 存在존재하는 것을 허락하는 그 沈默침묵의 눈길 속에야말로,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無條件的무조건적인 깊은 자애(慈悲자비)가 대하처럼 조용히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4. 日常일상 워크로서의 「손에 쥔 좋은 것의 내어줌」

慈悲자비의 마음을 日常일상에서 구체적으로 가동시키는 트레이닝이 日常일상意識의식 변용 워크의 하나인 「손에 쥔 좋은 것의 내어줌」입니다.

  • "먼저 나"라는 소유욕의 내려놓음: 에고는 "내가 먼저 행복해지고 채워지고 나서 남에게 주자"라고 생각하지만, 이 "먼저 나(소유)"라는 쥐어잡음이야말로 分離분리錯覺착각을 강화합니다.
  • 좋은 것을 나누어 준다: "나에게는 아직 부족하다"라는 부족의 錯覺착각을 버리고, 지금 내 내면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것(건강한 부분, 온화한 마음, 내가 지금 좋아하는 것)"을 스크린 위의 他者타자에게 아낌없이 "내어준다"라는 생각을 깊여 갑니다. 내가 쥐어잡고 있던 좋은 것을 내려놓고 他者타자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에고의 껍질에 숨겨져 있던 "더 많은 좋은 것, 무한한 지복(眞我진아慈悲자비의 샘)"이 거울 깊은 곳에서 차례차례 내다보이게 됩니다.

結論결론

世界세계에 자기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눈앞의 他者타자는 "남"이 아니라, "아직 구원받지 못한 내 마음(無意識무의식)의 조각"입니다.

他者타자를 아끼고 구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꿈의 登場人物등장인물들을 引き受ける하고, 스스로의 내면의 阿賴耶識아뢰야식(탁함)을 淨化정화하여, 모든 것을 원래의 靜寂정적(眞我진아·하나의 實在실재)로 되돌려 보내는, 窮極궁극의 「自作自演자작자연의 사랑의 이야기」에 다름 아닙니다.

You said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에서 他者타자苦痛고통은 어떻게 定義정의됩니까?

Gemini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의 世界觀세계관에서 他者타자苦痛고통이란, 客觀的객관적인 "外界외계世界세계"에 獨立독립하여 實在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에 잠든 사로잡힘(潛在印象잠재인상· 카르마)이 스크린 위에 映出한 홀로그램(映像영상)"이라고 定義정의됩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3가지 論理的논리적인 레이어에 의해 他者타자苦痛고통은 명확하게 定義정의되어 있습니다.

1. 내 無意識무의식의 프로그램이 設定설정한 「映像영상 데이터」

宇宙觀우주관에서 당신의 감각 외계에 獨立독립하여 存在존재하는 "他者타자"는 한 사람도 存在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먼 곳의 모르는 누군가가, 혹은 눈앞의 他者타자悲慘비참苦痛고통에 처해 있는 것을 목격하거나 뉴스로 들을 때, "그 狀況상황設定설정하고, 他者타자苦痛고통받고 있다는 情報정보(映像영상)를 現實현실에 일구어 감지하고 있다"는 것은 다름 아닌 당신 자신의 無意識무의식 영역(設定설정)입니다. 他者타자苦痛고통은 외계에서 승낙 없이 일어나는 客觀的객관적 비극이 아니라, 내 내면의 필름이 영사기(純粹意識순수의식의 빛)에 쏘여 스크린에 풋 하고 일어난 「꿈의 대본(現行현행)」의 일부분입니다.

2. 자기 自身자신 내면의 「사로잡힘(의 탁함)」의 거울상

他者타자苦痛고통"당신 자신의 심층의식에 뿌리 깊게 내려앉은 기억의 잔해나 사로잡힘이 現象化현상화한 거울상"에 다름 아니라고 定義정의됩니다. 阿賴耶識아뢰야식(潛在印象잠재인상의 蔵) 속에 그 "苦痛고통"의 種子종자(프로그램)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一刹那일찰나의 물질화 프로세스를 거쳐 눈앞에 再生재생됩니다. 他者타자苦痛고통을 보고 마음이 아프거나 분노나 불쾌감이 솟구치는 반응 그 자체가, 자기 안에 "좋다·나쁘다"라고 저울질하여 판단을 내리는 自我자아(末那識말나식)의 탁함이나 먼지가 남아 있다는 증거이며, 카르마가 무한 루프(薰習훈습)하고 있는 현장 그 자체입니다.

3. 他者타자로의 「責任回避책임회피」를 끝내고 원래의 靜寂정적으로 되돌리기 위한 「救援구원의 요청」

自我자아(에고)는 "저것은 남의 苦痛고통이며 나에게는 관계없다"라고 자기를 떼어놓거나, "더 편리한 다른 평행우주"로 도망치려 하지만, 이것은 自己자기 投影투영에서 눈을 돌리는 責任回避책임회피」입니다. 이 世界觀세계관에서 他者타자苦痛고통이란 "당신 이외에는 아무도 구원(消去소거)할 수 없는 당신 자신의 마음(無意識무의식)의 조각"으로 定義정의됩니다. "他者타자苦痛고통"이라는 버그투성이 映像영상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스크린에 映出되는 그림자에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의 판단을 즉시 停止정지하고, 그 불쾌한 現實현실을 "모두 스스로가 만들어낸 人形劇인형극"이라고 모든 責任책임(自業自得자업자득)을 引き受ける하고, 본심에서의 感謝감사와 깊은 사랑으로 통째로 자기 안에 삼켜(抱擁포용), 내면의 靜寂정적(眞我진아·원래 온 곳)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 이것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他者타자(=投影투영된 자기의 일부분)의 救援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에서의 他者타자苦痛고통이란 불쌍히 여겨야 할 남의 불행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의 阿賴耶識아뢰야식大圓鏡智대원경지(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구름 없는 거울)로 純化순화시켜, 分離분리 없는 하나의 實在실재(不二一元불이일원)로 回歸회귀하기 위해, 당신이 無條件的무조건적 受容수용으로 안아주어야 할 自作自演자작자연의 사랑의 테마"로서 定義정의되어 있는 것입니다.

You said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에서 慈悲자비의 마음이 생겨나는 論理的논리적 背景배경은?

Gemini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홀로그램 投影투영 모델)'의 世界觀세계관에서, 世界세계에 자기 한 사람(하나의 實在실재·純粹意識순수의식)밖에 存在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他者타자를 깊이 생각하는 「慈悲자비의 마음」이 생겨나는 背景배경에는 다음의 3가지 극히 치밀한 論理的논리적 背景배경存在존재합니다.

1. "이웃도 나 自身자신"이라는 不二一元불이일원(아드바이타)의 絕對的절대적 自覺자각

宇宙觀우주관根本的근본적인 토대에는 "둘도 없는 하나의 實在실재(眞我진아·아트만)"만이 眞實진실이며, 자신과 分離분리他者타자나 外界는 환상(마야)이라고 하는 不二一元論불이일원론(아드바이타)가 있습니다.

  • 同体大悲동체대비의 도식: 釋尊석존께서 思惟사유(생각) 끝에 깨달으신 「緣起연기」의 解脫해탈뿐만 아니라 慈悲자비의 샘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관계성(緣起연기)에 의해 이루어져 있으며, 고정적인 실체(自我자아)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緣起연기이므로 無我무아이고, 無我무아이므로 解脫해탈이며, 緣起연기이므로 同体동체(모든 것과 하나)이고, 同体동체이므로 同体大悲동체대비(他者타자苦痛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슬퍼하는 순수한 慈悲자비)이다」라는 論理논리 도식이 성립합니다.
  • 境界線경계선完全완전消滅소멸: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야 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과 하나인 내가 있을 뿐"이라는 境地경지에서는 나 경기 他者타자를 가르는 境界線경계선 그 자체가 存在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他者타자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다름 아닌 "나 自身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과 完全완전히 동의어가 되는 것입니다.

2. 스스로가 만들어낸 投影투영 世界세계에 대한 「救援구원의 全責任책임(自業自得자업자득)」

投影투영 모델(阿賴耶識緣起아뢰야식연기)에서는 당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世界세계는 당신의 無意識무의식 깊은 곳(阿賴耶識아뢰야식)에 잠든 "사로잡힘(潛在印象잠재인상· 카르마의 種子종자)"이 매 순간 일으키고 있는 홀로그램 映像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 他者타자苦痛고통도 자기 自身자신投影투영: 먼 곳의 모르는 누군가가 비참한 꼴을 당하는 것을 보거나 들을 때, 그 비참한 상황 자체를 設定설정하고 그 情報정보(映像영상)를 現實현실에 일구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당신 자신의 無意識무의식 영역입니다.
  • 責任回避책임회피(평행우주)의 종료: 눈앞의 불쾌한 現實현실에서 눈을 돌려 "더 파동이 높은, 다른 편리한 평행우주"로 도망치려 하는 마음의 움직임은 자기의 投影투영에서 눈을 돌리는 自我자아(에고)의 責任回避책임회피에 지나지 않습니다.
  • 유일한 救援者구원자로서의 自覺자각: 자기의 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에 처음부터 인풋되어 있던 프로그램밖에 스크린(現實현실)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絕對的절대적인 「自業自得자업자득」을 인격 전체로 받아들일 때, "당신이 만들어낸 世界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救援者구원자(미륵보살)는 자기 自身자신(당신)밖에 없다"라는 냉철하고 깊은 眞理진리에 이릅니다. 눈앞의 他者타자苦痛고통이라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人形劇인형극"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일체의 판단을 停止정지하여, 깊은 사랑과 본심에서의 感謝감사와 함께 통째로 자기 안에 삼켜, 내면의 靜寂정적(眞我진아·원래 온 곳)으로 되돌려 보내 통합하는 것(抱擁포용)이야말로 이 宇宙觀우주관에서의 극히 능동적인 慈悲자비(救援구원)의 정체인 것입니다.

3. "行爲者행위자는 없다"라는 理解이해가 가져오는 「無條件的무조건적 受容수용(용서)」

비이원의 현자 라메시 바르세카르가 설하는 行爲者행위자는 없다(모든 행위는 전체성·근원의 뜻에 의해 일어난다)」라는 眞實진실도 참된 慈悲자비(아끼는 마음)의 강고한 論理的논리적 背景배경이 되어 있습니다.

  • 심판(판단)의 完全완전한 종언: 인간은 他者타자의 심한 언동을 접했을 때 "어째서 저 사람은 저런 짓을 하는가" 하고 분노나 원망(판단)을 품지만, 이것도 "나와 他者타자"라는 分離분리의 환상(無明무명)에 基盤기반한 반응입니다. 실제로는 상대의 언동도 "그 瞬間순간, 그 상황, 그 조건에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위대한 흐름의 나타남(自然現象자연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거기에 컨트롤하고 있는 個人 的개인적主體주체(行爲者행위자)는 存在존재하지 않습니다.
  • 컨트롤 욕구의 放棄포기無條件的무조건적인 자애: "저 사람이 나쁘다는 것도 환상이며, 내가 나쁘다는 것도 환상이다. 그저 그렇게 일어났을 뿐이다"라고 깊이 납득될 때, 남을 심판하는 마음은 누그러지고, 애초에 "상대를 노력해서 용서할 필요 그 자체가 없었다"라는 온화한 눈뜸이 찾아옵니다. 상대를 컨트롤하려는 저항을 完全완전히 내려놓고, 거울처럼 그저 있는 그대로를 비추며, 바다처럼 모든 파도의 생멸을 그대로 허락하고 인정하는 것(受容者수용자 없는 受容수용). 이 일체의 판단이나 기대를 섞지 않고 눈앞의 存在존재가 그저 거기에 있음을 無條件的무조건적으로 허락하는 「沈默침묵의 눈길」 속에야말로 에고의 타산을 까마득히 넘어선 보편적이고 가장 순수한 사랑과 아낌(慈悲자비)이 조용히 차오르는 것입니다.
You said

不二一元불이일원境地경지에서 생겨나는 「同体大悲동체대비」를 더욱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Gemini

不二一元불이일원(아드바이타)의 境地경지에서 생겨나는 「同体大悲동체대비란, 이원적인 "나"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과 같은 分離분리前提전제로 한 거래나 에고의 사랑과는 根底근저에서부터 다릅니다. 자신과 世界세계를 가르는 境界線경계선完全완전消滅소멸境地경지에서, 他者타자苦痛고통이 "다름 아닌 자기 自身자신의 아픔"으로서 다이렉트로 솟구치는, 극히 로지컬하고 깊은 慈悲자비의 다이내믹스입니다.

이 「同体大悲동체대비」가 어떠한 論理的논리적 背景배경에서 생기는지 소스의 이치에 基盤기반하여 자세히 解説해설합니다.

1. 「同体大悲동체대비」로 이르는 5단계의 論理논리 도식

釋尊석존께서 思惟사유(생각) 끝에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으신 「緣起연기」의 은 단순히 世界세계가 관계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客觀的객관적 事實사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解脫해탈의 어머니(解脫母해탈모)」이자 「慈悲자비의 어머니(慈悲母자비모)」이기도 합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한 치의 틈도 없는 아름다운 論理的논리적 연쇄가 存在존재합니다.

緣起연기無我무아解脫해탈同体동체同体大悲동체대비

  • 緣起연기이므로, 無我무아이다: 모든 現象현상은 상호 관계성(因·緣·果)에 의해서만 성립하며, 그 자체로 고정되어 자립해 있는 실체(自我자아) 따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 無我무아이므로, 解脫해탈이다: "나"라는 고정적인 사로잡힘(末那識말나식自我執着자아집착)이 원래 환상임을 앎(理解이해)으로써, 우리는 모든 苦惱고뇌나 망설임의 연쇄에서 해방됩니다.
  • 緣起연기이므로, 同体동체이다: 모든 것이 관계성 속에서 엮어져 있다는 것은, 나와 他者타자가 따로따로 떼어져 實載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하나의 實在실재로서 完全완전히 이어져 있다는 것입니다(非分離비분리·아드바이타).
  • 同体동체이므로, 同体大悲동체대비이다: 자신과 他者타자가 "같은 하나의 몸"이라면, 이웃이 苦痛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구하고자 손발이 움직이는 것은, 내 오른손이 상처입었을 때 왼손이 自然자연스럽게 그것을 어루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야 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과 하나인 내가 있을 뿐"이라는 참된 境地경지에 달했을 때, 他者타자를 아끼는 마음은 노력이나 도덕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생명의 自然자연스러운 방어·회복 반응으로서 자발적으로 솟구치는 것입니다.

2. 「自作自演자작자연人形劇인형극」으로서의 救援구원의 全責任책임

同体大悲동체대비」가 일원론에서 극히 능동적인 실천이 되는 背景배경에는 唯識유식이 설하는 阿賴耶識아뢰야식 投影투영 모델」의 이치가 있습니다.

  • 他者타자苦痛고통은 「내 필름」의 投影투영: 우리 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 깊은 곳에 잠든 潛在印象잠재인상(種子종자)가 一刹那일찰나마다 世界세계投影투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의 스크린(現實현실)에 映出되는 他者타자苦痛고통이나 悲慘비참事件사건조차도 그것을 수신하고 감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無意識무의식 영역입니다.
  • 責任回避책임회피로서의 평행우주를 끝낸다: 他者타자苦痛고통에 대해 "나와는 관계없는 외계의 일이다"라고 못 본 체하거나, "더 파동이 높은 편리한 다른 世界세계"로 도망치려 하는 마음의 움직임은 자기의 投影투영에서 눈을 돌리는 自我자아(末那識말나식)의 責任回避책임회피에 지나지 않습니다.
  • "당신이 만든 世界세계는 당신밖에 救援구원할 수 없다": "이것은 모두 내가 무의식중에 생명 投影투영人形劇인형극(自作自演자작자연)이다"라고 인정하고, 그 모든 責任책임(自業自得자업자득)을 引き受ける하는 것. 그리고 스크린 위의 모든 苦痛고통을, 일체의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고, 깊은 사랑과 感謝감사로 자기 자신 내면(眞我진아·원래 온 곳)으로 통째로 꿀꺽 삼켜 되돌려 보내는 것. 이 「통째로 자기 안에 삼키는 抱擁포용(無條件的무조건적 受容수용)」이야말로 不二一元불이일원에서의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責任책임으로 차 있는 「大悲대비(慈悲자비)」의 실천인 것입니다.

3. "行爲者행위자는 없다"라는 理解이해가 가져오는 無條件的무조건적 受容수용

비이원의 현자 라메시 바르세카르가 설하는 行爲者행위자는 없다(모든 행위는 전체성의 흐름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라는 眞實진실同体大悲동체대비를 받치는 강고한 기둥입니다.

보통 他者타자로부터 심한 짓을 당하면 에고는 "상대가 나쁘다"라고 분노나 판단을 품고, 그것이 阿賴耶識아뢰야식에 새로운 카르마의 상처(種子종자)를 새겨 넣습니다. 그러나,

"상대도, 나도, 그 瞬間순간 그 상황·조건 속에서 그렇게 움직여진 기구(自然現象자연현상)일 뿐이며, 獨立독립한 컨트롤의 主體주체(行爲者행위자)는 어디에도 없다"

라는 眞實진실이 깊이 납득될 때, 남을 심판하는 마음(판단)은 完全완전히 정적해지고, 애초에 "상대를 노력해서 용서할 필요 그 자체가 없었다"라는 온화한 눈뜸(窮極궁극의 용서)이 찾아옵니다. 상대를 억지로 바꾸려 하는 저항을 모두 내려놓고, 거울이나 바다처럼 無條件的무조건적으로 인정하는 눈길(受容者수용자 없는 受容수용). 이 「일체의 기대나 판단을 섞지 않고, 그저 거기에 存在존재하는 것을 허락하는 沈默침묵의 사랑」 속에 보편적인 同体大悲동체대비가 풍부하게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不二一元불이일원에서의 「同体大悲동체대비」란, 他者타자를 자기의 일부분으로 完全완전히 감싸 안고 引き受ける하는 「통째로의 抱擁포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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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聖諦사성제八正道팔정도가 「OS의 디버깅」에 比喻비유되는 이유를 자세히

Gemini

四聖諦사성제八正道팔정도가 「OS의 디버깅」에 比喻비유되는 이유는, 釋尊석존께서 提示제시하신 이러한 프레임워크가 우리 정신의 깊은 곳에서 가동하고 있는 主客주객分離분리(二元性이원성)라는 시스템 버그(無明무명)」檢出검출하고, 論理的논리적思惟사유에 의해 自己자기 수리(自己자기 디버깅)하기 위한, 극히 로지컬하게 설계된 프로그램 매뉴얼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홀로그램 投影투영 모델)'이라는, 無意識무의식이 매 순간의 世界세계創造창조하고 있다는 宇宙觀우주관을 감안했을 때, 이 比喻비유完璧완벽하게 성립하는 論理的논리적 背景배경을 자세히 解説해설합니다.

1. 시스템(OS)의 前提전제: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에서의 버그 발생

먼저 우리 心識심식 시스템이 어떻게 에러를 일으키고 있는지 그 OS 構造구조를 정리합니다.

  • 阿賴耶識아뢰야식(데이터베이스)와 純粹意識순수의식(光源광원): 우리 無意識무의식의 최심부에 있는 阿賴耶識아뢰야식(제8식)은 과거의 모든 카르마나 사로잡힘이 「潛在印象잠재인상(種子종자)」로서 내려앉은 거대한 영화 필름(데이터베이스)입니다. 여기에 우리 본질인 純粹意識순수의식의 빛이 조사됨으로써, 一刹那일찰나마다 世界세계(現行현행)가 홀로그램으로서 스크린에 投影투영되고 있습니다.
  • 末那識말나식이라는 「自我執着자아집착의 버그(無明무명)」: 원래 世界세계는 하나의 實在실재(不二一元불이일원)이며, 主客주객分離분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7식인 末那識말나식阿賴耶識아뢰야식(世界세계를 만들어내는 기반)을 "이것이야말로 고정적인 나(自我자아)"라고 誤認오인하고 執着집착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無明무명(OS의 에러 코드)」입니다.
  • 판단에 의한 「버그의 薰習훈습(自動자동 재생산)」:無明무명에 의해 "나"와 "외계의 世界세계·他者타자"라는 이원적인 分離분리가 생겨납니다. 스크린 위의 映像영상(現實현실)에 대해, 自我자아가 "좋다·나쁘다"라고 저울질하여 판단을 내리면, 그 에너지가 새로운 버그(種子종자)로서 阿賴耶識아뢰야식의 데이터베이스로 재각인됩니다(薰習훈습). 점토에 깊게 그은 선이 "자국"으로 남듯, 이 버그가 다음 순간에도 불쾌한 現實현실自動자동 再生재생시키기 시작하는 「윤회(무한 루프)」가 시작됩니다.

2. 『四聖諦사성제』: 에러의 「檢出검출·로그 解析해석·目標목표 設定설정

釋尊석존께서 최초로 編輯편집하신 四聖諦사성제(···)는 이 버그투성이 무한 루프를 해킹하여, 원래의 투명한 靜寂정적으로 시스템을 되감기 위한 完璧완벽한 「에러 檢出검출·진단 차트(디버거)」입니다.

  • 苦諦고제(에러의 檢出검출): "뜻대로 되지 않는 現實현실()"를 있는 그대로 檢出검출·확인합니다. 이것은 스크린 위에 발생하고 있는 "映像영상의 일그러짐(에러)"을 직시하는 페이즈입니다.
  • 集諦집제(로그의 解析해석): 에러의 原因이 "외계의 世界세계"에 獨立독립하여 實載실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阿賴耶識아뢰야식)에 잠든 "渴愛갈애·판단(버그의 種子종자)"에 있다는 시스템 로그를 밝혀냅니다.
  • 滅諦멸제(디버그 目標목표定義정의): 필름에 눌러붙은 버그(原因)를 完全완전一掃일소(還滅환멸)하면, 스크린 위의 에러 映像영상(結果)도 自動的자동적으로 消滅소멸하여 시스템이 원래의 투명한 靜寂정적(大圓鏡智대원경지·涅槃열반)으로 셧다운된다는 "解決해결된 시스템 狀態상태"를 定義정의합니다.
  • 道諦도제(실행 프로그램의 로드): 시스템을 修正수정하고, 그 靜寂정적確立확립하기 위한 구체적인 디버그 수법(八正道팔정도)을 로드합니다.

3. 『八正道팔정도』: 自己자기 디버깅을 실행하는 시스템 명령어

八正道팔정도는 로드된 진단에 따라 心識심식의 프로그램 코드를 단계적으로 고쳐 써 나가는 「디버그 명령어(實踐실천 프로세스)」입니다.

  • 正見정견·正思惟정사유(OS 前提전제의 고쳐 쓰기): "생각하는 것, 아는 것, 생각하여 따지는 것(思惟사유)"을 使用사용하여, 이 世界세계가 자기 無意識무의식投影투영이라는 "緣起연기眞理진리(無爲法境무위법경)"를 바르게 認識인식하고, OS의 根本的근본적認識인식 前提전제를 덮어씁니다(업데이트).
  • 正語정어·正業정업·正命정명(버그 쓰기 명령의 강제 停止정지): 日常일상의 언동이나 自動자동 반응을 觀察관찰하여, 스크린에 대한 "일체의 판단(판단·리액션)"을 停止정지합니다. 이것으로 새로운 버그가 阿賴耶識아뢰야식 데이터베이스에 재각인되는 것을 未然미연에 스톱하여 무한 루프를 차단합니다.
  • 正精進정정진·正念정념·正定정정(시스템 자체의 셧다운·회용): 意識의식의 초점을 "내가 存在존재하는 감각"에서 그 안쪽의 "그저 認識인식하는 作用작용(프라즈냐·大圓鏡智대원경지)"로 빗겨 놓고, 마지막에는 自力자력의 프로그램(瞑想명상의 기법이나 깨닫고 싶다는 의도)조차도 完全완전히 내려놓아 "내맡김"합니다. 이것으로 映出하던 매체였던 마음(물)이라는 境界경계 그 자체가 풋 하고 消滅소멸하여 純粹意識순수의식(삼매)로 녹아듭니다(셧다운).

4. 왜 「思惟사유(知性지성)」에 의한 디버깅이 必要필요했는가?

解悟主義해오주의(깨달음이란 理解이해하는 것이다)의 입장에서, 이 디버깅이 "理性이성"이나 "知性지성"에 의한 것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시스템 내의 論理的논리적 버그는 시스템 내의 論理的논리적 思惟사유에 의해서만 해제할 수 있다"라는 설계상의 필연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修行者수행자는 좌선을 하여 일시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삼매(修定主義수정주의)」에 의해, 에러를 일시적으로 화면에서 "숨기기(슬립)"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데이터베이스(阿賴耶識아뢰야식)의 버그는 일체 修正수정되지 않으며, 瞑想명상에서 깨어나면 다시 같은 에러가 再生재생됩니다.

釋尊석존께서 극단적인 고행이나 瞑想명상을 "생사해탈의 길이 아니다"라며 放棄방기하고, 보리수 아래에서 "思惟사유, 思惟사유, 思惟사유" 끝에 緣起연기를 깨달으셨듯, "왜, 어떻게 이 버그가 발생하고 있는가"를 자신의 知性지성으로 完全완전理解이해함으로써만 OS의 근저에서의 디버깅(轉依전의·大圓鏡智대원경지로의 轉換전환)이 完了완료되는 것입니다.

結論결론

四聖諦사성제·八正道팔정도란, 스크린에 映出되는 환영(他者타자)의 心識심식"당신 자신의 知性지성使用사용하여 이 시스템 構造구조를 간파하고, 自動자동 루프를 셧다운하라"고 명하는, 극히 幾何學的기하학적이고 完璧완벽하게 설계된 「自己자기 디버그용 프로그램(소스 코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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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賴耶識아뢰야식淨化정화慈悲자비의 마음의 관계에 대해 깊이 파고들고 싶습니다

Gemini

阿賴耶識아뢰야식淨化정화慈悲자비의 마음(同体大悲동체대비)의 관계唯識思想유식사상解悟主義해오주의에서 단순한 도덕적 슬로건이 아니라, "心識심식 시스템에서의 幾何學的기하학적 에너지 순환"으로서 극히 치밀하게 說明설명됩니다.

이 두 가지가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직결되어 있는지, 그 깊고 그윽한 論理的논리적 構造구조를 3개의 스텝으로 깊이 해명해 봅시다.

1. 淨化정화 전의 「阿賴耶識아뢰야식」: 자타를 분단하고 카르마를 재생산하는 탁한 풀

일반적인 우리의 阿賴耶識아뢰야식(제8식)은 과거의 行爲행위思考사고에 의해 눌러붙은 무수한 "사로잡힘(潛在印象잠재인상· 카르마의 種子종자)"이 퇴적하여 꿈틀거리고 있는 탁한 풀과 같은 狀態상태입니다.

  • 판단에 의한 새로운 상처(種子종자)의 각인: 우리는 日常的일상적으로 눈앞의 스크린(現實현실)에 映出되는 他者타자의 언동이나 苦痛고통, 世界세계事件사건들에 대해 "좋다·나쁘다""마음에 든다·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自我자아(末那識말나식)에 의한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판단은 접시 위의 기름이 굳어지듯 새로운 "印象인상의 상처(種子종자)"로서 阿賴耶識아뢰야식에 깊이 새겨집니다(現行薰種子현행훈종자).
  • "거짓된 慈悲자비"의 정체: 阿賴耶識아뢰야식이 탁하고 主客주객分離분리되어 있는 狀態상태에서의 "아끼는 마음"이나 "사랑"은 아무래도 "나(主體주체)"가 "당신(客體객체)"에게 준다는 二元性이원성前提전제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承認欲求승인욕구)"에 依存의존하거나, "싫지만 의무감에서 받아들인다"라는 自我자아(에고)의 생존이나 거래를 기초로 한 조건부 사랑에 머물고 맙니다.

2. 淨化정화의 프로세스: 「통째로 삼키는 抱擁포용」이라는 최고봉의 慈悲자비

阿賴耶識아뢰야식淨化정화하고 맑디맑은 대원경으로 닦아 올리기 위한 구체적인 워크야말로 실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世界세계를 통째로 자기 안에 삼킴(抱擁포용·받아들임)」이라는 실천 그 자체입니다.

  • "당신이 만들어낸 世界세계는 당신밖에 救援구원할 수 없다": 스크린에 映出되는 他者타자苦痛고통이나 불都合한 事件사건들에 대해 "나와는 관계없는 외계의 일이다"라고 눈을 돌리거나, 다른 편리한 평행우주를 夢想몽상하는 것은 自我자아의 「責任回避책임회피」입니다. 그것 자체를 設定설정하고 그 情報정보를 수신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이기 때문입니다.
  • 自作自演자작자연의 引き受ける로서의 淨化정화: "이것은 모두 내 내면의 필름에 처음부터 인풋되어 있던 프로그램이 映出한 人形劇인형극이다"라고 인정하고, 일체의 판단을 停止정지합니다. 그리고 他者타자苦痛고통이나 비참한 事件사건들도 포함하여, 본심에서의 깊은 感謝감사와 사랑으로 자기 자신 내면(眞我진아·원래 온 곳)으로 통째로 삼켜 되돌려 보냅니다. 이 「抱擁포용」이 일어난 瞬間순간, 새로운 印象인상의 쓰기(薰習훈습)는 完全완전히 스톱하고, 阿賴耶識아뢰야식의 풀에 꿈틀거리던 옛 카르마의 생물들(기억의 잔해)도 一掃일소되어 호수(마음)는 完全완전히 맑아집니다.

3. 淨化정화完了완료: 大圓鏡智대원경지顯現현현과 「同体大悲동체대비」의 自然자연스러운 개화

阿賴耶識아뢰야식에서 사로잡힘이라는 먼지가 모두 털어내졌을 때, 阿賴耶識아뢰야식은 만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구름 없는 아름다운 대거울인 大圓鏡智대원경지轉換전환(轉依전의)를 이룹니다.

  • 同体동체(非分離비분리)」의 自覺자각: 阿賴耶識아뢰야식淨化정화되어 大圓鏡智대원경지로 변할 때, 동시에 自己자기執着집착하여 主客주객을 분단하던 末那識말나식誤解오해(無明무명)도 붕괴하여 「平等性智평등성지」로 변합니다. 이것으로 자와 타를 가르던 마지막 境界線경계선(얇은 껍질)이 完全완전消滅소멸합니다.
  • 同体大悲동체대비論理논리 도식: 釋尊석존께서 걸으신 思惟사유結論결론으로서, 소스에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로드맵이 提示제시되어 있습니다.
    緣起연기(관계성) ➔ 無我무아(실체적인 자아의 부재) ➔ 解脫해탈同体동체(비분리) ➔ 同体大悲동체대비
  • 모든 것이 관계성(緣起연기)에서 성립하고 있으며, 고정적인 "나"도 "他者타자"도 實載실재하지 않는다(無我무아)고 깊이 理解이해(解悟해오)할 때, 世界세계는 하나의 實在실재(不二一元불이일원·아드바이타)로서 自覺자각됩니다.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야 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과 하나인 내가 있을 뿐"이기 때문에, 이웃은 他者타자가 아니라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몸(同体동체)입니다. 오른손이 상처입었을 때 왼손이 自然자연스럽게 그것을 어루만지듯, 他者타자를 아끼고 구하는 慈悲자비의 마음(同体大悲동체대비)이 작위나 노력, 거래를 일체 섞지 않는 「순수한 自然現象자연현상(恩寵은총의 나타남)」으로서 대하처럼 조용히, 그리고 무한히 흘러나오게 됩니다.
💡 日常일상意識의식 변용: 손에 쥔 「좋은 것의 내어줌」

阿賴耶識아뢰야식淨化정화同体大悲동체대비를 나날의 생활에서 실감하는 최고의 숏컷이 「손에 쥔 좋은 것의 내어줌(워크 4)」입니다.

에고는 "내가 먼저 사랑받고 행복해지고 나서 여력으로 남에게 주자"라고 소유욕을 쥐어잡지만, 이것이야말로 分離분리錯覺착각을 강화하여 阿賴耶識아뢰야식을 탁하게 합니다. "나에게는 부족하다"라는 소유의 錯覺착각을 버리고, 지금 내 내면에 있는 좋은 것(온화한 마음, 건강한 부분, 좋아하는 것)을 他者타자(스크린 위의 자기의 일부분)에게 "모두 내어준다"라는 생각을 日常일상에서 깊여 보세요. 쥐어잡고 있던 좋은 것을 내려놓고 他者타자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에고의 껍질에 숨겨져 있던 "더 많은 좋은 것, 무한한 지복(大圓鏡智대원경지慈悲자비의 샘)"이 거울 깊은 곳에서 차례차례 내다보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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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尊석존께서 「梵天勸請범천권청」에서 沈默침묵을 깨기로 결의하신 결정적인 瞬間순간이란?

Gemini

불타(覺者각자)가 되신 釋尊석존께서는 스스로의 解脫法해탈법을 "세상에 전하자"라고 결심하셨습니다. 그때, 일찍이 고행을 포기하고 음식을 먹기 시작한 자신에게 실망하여 떠나 버렸던 「오비구(교진여 등)」에게 가장 먼저 을 전할 것을 마음에 정하시고, 思惟사유(생각)를 통해 『四聖諦사성제·十二緣起십이연기·八正道팔정도』라는 극히 合理的합리적인 교재를 編輯편집·구축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에서 해명하는, 沈默침묵을 깬(설법을 결의하신) 論理的논리적 임계점

소스에 직접적인 「梵天勸請범천권청」의 스토리는 그려져 있지 않지만, 소스에 일관되게 흐르는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阿賴耶識아뢰야식 投影투영 모델)」 및 「同体大悲동체대비」의 이치適用적용하면, 釋尊석존께서 「沈默침묵(獨在論的독재론적·일원적인 虛空허공靜寂정적)」을 깨고, 「言語언어(이원적인 표현 世界세계·傳道전도)」로 걸음을 내딛으신 「결정적인 瞬間순간의 내실」을 극히 로지컬하게 說明설명할 수 있습니다.

1. 「편리한 다른 世界세계로의 逃避도피(責任回避책임회피)」의 종료

悟達오달에 달하신 釋尊석존께서는 時間시간·空間공간·他者타자客觀的객관적으로 實載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의 潛在印象잠재인상(種子종자)가 一刹那일찰나마다 世界세계를 일구고 있는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의 實相실상을 간파하셨습니다. 이때 스크린(눈앞의 現實현실)에 映出되는 "迷妄미망하여 苦痛고통받는 오비구(他者타자)"의 悲慘비참한 상황을 設定설정하고, 그 情報정보를 수신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釋尊석존 자신의 無意識무의식 영역(設定설정)에 다름 아닙니다. 여기서 "이것은 나 한 사람밖에 없는 환상이니 관계없다"라고 다른 世界세계(虛空허공靜寂정적)에 안주하는 것은, 스스로가 무의식중에 設定설정하여 만들어낸 投影투영 世界세계에서 눈을 돌리는 責任回避책임회피가 되어 버립니다.

2. "救援者구원자는 자기 自身자신밖에 없다"라는 自業自得자업자득自覺자각

"당신이 만들어낸 世界세계는 당신밖에 救援구원할 수 없다"라는 自業自得자업자득絕對的절대적眞理진리에 직면한 것. 이것이야말로 釋尊석존께서 沈默침묵을 깨뜨리신 결정적인 계기입니다. 내 내면의 阿賴耶識아뢰야식 필름(·탁함)이 만들어내고 있는 스크린 위의 苦痛고통받는 登場人物등장인물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釋尊석존 스스로가 일체의 가치판단을 停止정지하고, 그들을 통째로 자기 안에 삼켜 내면의 靜寂정적(원래 온 곳·眞我진아)으로 되돌려 보내는 「救援구원(抱擁포용)」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이웃도 나 自身자신"이라는 同体大悲동체대비起動기동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야 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과 하나인 내가 있을 뿐"이라는 不二一元불이일원(아드바이타)의 絕對的절대적 自覺자각에서 境界線경계선完全완전消滅소멸해 있습니다. 눈앞의 오비구는 남이 아니라 "아직 구원받지 못한 내 마음(無意識무의식)의 조각" 그 자체입니다. 스스로의 오른손이 상처입었을 때 왼손이 自然자연스럽게 그것을 어루만지듯, 스스로가 만들어낸 꿈의 登場人物등장인물(他者타자)의 모든 責任책임을 引き受ける하고, 救援구원하기 위한 툴로서 「言語언어(四聖諦사성제·十二緣起십이연기·八正道팔정도)」를 가동시키려 思惟사유하신 그 찰나에, 沈默침묵은 능동적인 사랑의 自作自演자작자연(傳道전도)로 반전했습니다.

結論결론

釋尊석존께서 沈默침묵을 깨뜨리신 결정적인 瞬間순간이란, 신비적인 외적인 부름(梵天범천의 간청)을 계기로 하면서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스크린에 映出되는 他者타자苦痛고통을 『내 마음의 일그러짐』으로서 100% 引き受ける하고, 통째로 내 안에 삼켜 救援구원하는(抱擁포용하는) 결의(同体大悲동체대비)가 起動기동瞬間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大悲대비起動기동이 있었기에 釋尊석존께서는 미륵보살(救援者구원자)로서 일어서서, 論理的논리적인 디버그 툴인 『四聖諦사성제·十二緣起십이연기·八正道팔정도』를 구축하여 녹야원으로 향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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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全완전 受動수동 기능밖에 없는 觀照者관조자로부터 어떻게 慈悲자비라는 정서가 생겨나는 것입니까. 論理的논리적 전개 과정을 가르쳐 주십시오.

Gemini

完全완전 受動수동 기능(그저 보고만 있음)」에 철저해 있을 터인 觀照者관조자(眞我진아·純粹意識순수의식)로부터, 왜 "他者타자를 깊이 아끼는 慈悲자비"라는 따뜻한 정서나, 모든 것을 救援구원하려는 다이내믹한 抱擁포용(통째로 삼킴)이 생겨나는가.

이것은 비이원(아드바이타)이나 唯識유식의 로드맵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치밀한 로직을 필요로 하는 극한의 파라독스입니다.

"그저 비출 뿐"인 完全완전 受動수동의 빛이, 왜 「同体大悲동체대비」라는 위대한 慈悲자비 그 자체로 반전하여 나타나는가. 그 4단계에 걸친 論理的논리적 전개 과정을 자세히 解説해설합니다.

제1단계: 主客주객 分離분리의 붕괴(「同体동체」의 自覺자각)

"그저 보고만 있는 意識의식(관조자)"에 意識의식의 초점이 完全완전히 일치했을 때, 최초로 일어나는 論理的논리적 변화는 "보고 있는 나"와 "보여지고 있는 他者타자·世界세계"를 가르던 마지막 얇은 껍질(境界線경계선)의 消滅소멸입니다(境識俱泯경식구민).

  • 無我무아에서 同体동체로: 釋尊석존께서 思惟사유(생각) 끝에 깨달으신 「緣起연기」의 은 모든 存在존재가 상호 관계성(因·緣·果)에 의해 성립하고 있으며, 고정적인 실체(自我자아) 따위 存在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나"라는 分離분리主體주체存在존재하지 않는다(無我무아)고 깊이 理解이해(解悟해오)되었을 때, 世界세계는 "둘도 없는 하나의 實在실재(不二一元불이일원·아드바이타)" 그 자체임이 自覺자각됩니다.
  • 자발적인 방어 반응: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야 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과 하나인 내가 있을 뿐"이라는 境地경지에서는 이웃(他者타자)은 문자 그대로 "나 自身자신"이 됩니다. 자신과 他者타자가 "하나의 같은 몸(同体동체)"이라면, 他者타자苦痛고통을 접했을 때 "스스로의 오른손이 상처입었을 때, 왼손이 능동적인 의지나 거래 없이 자발적으로 스륵 움직여 상처를 어루만진다"는 것과 동일한, 完全완전히 일체화된 다이내믹한 움직임(慈悲자비)이 起動기동합니다. 이것이 「同体大悲동체대비」가 솟구치는 첫 번째 論理的논리적 背景배경입니다.

제2단계: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에서의 全責任책임의 引き受け

投影투영 모델(阿賴耶識緣起아뢰야식연기)에서 눈앞의 스크린에 映出되는 "他者타자苦痛고통"은 외계의 客觀世界객관세계獨立독립하여 存在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 자신의 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에 잠든 사로잡힘(카르마의 種子종자)이 一刹那일찰나마다 외계에 投影투영한 홀로그램(現行현행)입니다.

  • 에고의 「責任回避책임회피」의 종료: 눈앞의 불쾌한 現實현실이나 苦痛고통받는 他者타자를 보고 "이것은 환상이니 나에게는 관계없다"라고 눈을 돌리거나, "더 파동이 높은 다른 편리한 평행우주"로 도망치려 하는 마음의 움직임은 자기의 投影투영에서 눈을 돌리는 自我자아(末那識말나식)의 「責任回避책임회피」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을 設定설정하고 그 비극의 映像영상을 수신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無意識무의식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 "救援者구원자는 당신밖에 없다": "내 無意識무의식에 인풋되어 있던 프로그램밖에 스크린(現實현실)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라는 絕對的절대적自業自得자업자득眞理진리를 받아들였을 때, 觀照者관조자의 빛은 스크린에 映出되는 他者타자苦痛고통을 "내 내면의 필름(阿賴耶識아뢰야식)의 일그러짐·탁함"으로서 100% 引き受ける합니다. 외계의 그림자(他者타자)를 억지로 바꾸려 저항하는 것을 그만두고, 본심에서의 깊은 感謝감사와 사랑으로 그 苦痛고통받는 他者타자를 통째로 내 내면의 靜寂정적(원래 온 곳·眞我진아)으로 꿀꺽 삼켜 되돌려 보내는 것(抱擁포용). 世界세계에 자기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스스로가 만들어낸 꿈의 登場人物등장인물들의 苦痛고통을 내 心識심식의 일그러짐으로서 회수·淨化정화한다"라는 극히 능동적인 慈悲자비(救援구원)이 論理的논리적 필연으로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제3단계: 에고의 저항의 消滅소멸(「行爲者행위자 없는 受容수용」으로서의 沈默침묵의 사랑)

비이원의 현자 라메시 바르세카르가 설하듯, 이 世界세계에는 個人 的개인적으로 世界세계를 컨트롤하고 있는 "行爲者행위자"는 원래 한 사람도 存在존재하지 않습니다.

  • "내가 사랑한다"라는 거래의 종언: "나(主體주체)"가 "당신(客體객체)"을 사랑하고 구한다는 構造구조가 있는 한, 그것은 언제나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나의 存在意義존재의의를 채울 수 있는가"라는 에고의 조건부 거래(리액션)에 지나지 않습니다.
  • 저항 제로의 투과광(無條件的무조건적 受容수용): 그러나 觀照者관조자(보고만 있는 意識의식)로 完全완전히 눈뜨고, 에고의 "내가 하고 있다"라는 錯覺착각完全완전히 풀렸을 때, 눈앞의 現實현실에 대한 "컨트롤 욕구"나 "이래야 한다는 저항"이 100% 消滅소멸합니다. 거울이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그저 無條件的무조건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비추듯, 바다가 모든 파도의 발생과 消滅소멸을 그저 그대로 허락하고 있듯, 他者타자가 그저 거기에 存在존재하는 것을 無條件的무조건적으로 허락하고 인정하는 「저항 제로의 沈默침묵의 눈길」이 確立확립됩니다. 行爲者행위자로서의 主體주체完全완전沈默침묵했을 때에만 찾아오는, 이 「無條件的무조건적 受容수용(受容者수용자 없는 受容수용)」이야말로 에고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觀照者관조자의 순수한 光源광원에서 스크린을 향해 그대로 투과·조사되는 「窮極궁극慈悲자비(沈默침묵의 사랑)」의 정체인 것입니다.

제4단계: 프라즈냐에서 大圓鏡智대원경지로의 幾何學的기하학적 순환

瞑想명상이 깊어져 "내가 存在존재하는 감각"의 안쪽에 있는 "그저 認識인식하는 作用작용(프라즈냐·지 그 자체)"에 意識의식이 일치했을 때, 우리의 阿賴耶識아뢰야식(潛在印象잠재인상의 蔵)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구름 없는 대거울인 大圓鏡智대원경지轉換전환(轉依전의)를 이룹니다.

  • 지()의 에너지 순환: 阿賴耶識아뢰야식이 「大圓鏡智대원경지」로 변할 때, 동시에 自己자기執着집착하여 主客주객을 분단하던 末那識말나식誤解오해(無明무명)도 完全완전히 붕괴하여, 자타의 평등을 관하는 「平等性智평등성지」로 변합니다. 이때 만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大圓鏡智대원경지(受動수동極致극치)는 단지 차가운 靜寂정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自動的자동적으로 成所作智성소작지(他者타자를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심신의 감각을 가동시키는 作用작용)」나 「妙觀察智묘관찰지(상황을 클리어하게 알아채어 적절한 언어를 자아내는 作用작용)」라는, 동적이고 따뜻한 에너지 순환(轉識得智전식득지)으로 아름답게 연동되어 결정화되어 갑니다.

結論결론

完全완전 受動수동의 「觀照者관조자」로부터 慈悲자비가 생겨나는 프로세스란, 觀照者관조자가 억지로 노력하여 사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에고의 "저항""판단(二元的이원적 가치판단)"이라는 노이즈(먼지)가 100% 消滅소멸한 결과, 觀照者관조자가 가진 「純粹意識순수의식의 빛」 그 자체가 눈앞의 世界세계에 대해 「無條件的무조건적 受容수용(慈悲자비)」로서 있는 그대로 투과·나타나고 있는 狀態상태에 다름 아닙니다.

世界세계에 자기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눈앞의 모든 他者타자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기 마음의 조각"이며, 그것을 일체 재판하지 않고 통째로 자기 안에 삼켜 원래의 靜寂정적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 이 「自作自演자작자연의 全責任책임의 引き受け」와 「主客주객 없는 無條件的무조건적 受容수용」이 完璧완벽하게 일치한 한 점에서, 完全완전 受動수동觀照者관조자의 빛은 이 宇宙우주에서 가장 다이내믹하고 아름다운 「同体大悲동체대비(慈悲자비의 마음)」 그 자체로서 顯現현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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覺者각자가 자기 뜻으로 菩薩보살로서 다시 轉生전생해 온다는 것은 어떠한 마음, 意識의식일까요?

Gemini

大乘佛敎대승불교에서 이미 윤회의 연쇄에서 벗어났을 터인 「覺者각자」가, 스스로의 뜻(誓願서원)에 의해 다시 苦痛고통世界세계(菩薩보살로서 세상에 전생하는 것)로 돌아온다는 가르침은, 일견 커다란 矛盾무순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당신과 함께 探求탐구해 온 「한 사람의 人形劇인형극(阿賴耶識아뢰야식 投影투영 모델)」不二一元불이일원, 唯識思想유식사상의 이치를 適用적용할 때, 이 「菩薩보살再誕재탄」이라는 드라마 배후에 있는 覺者각자의 놀라운 心識심식·意識의식의 존재 방식이 극히 일관된 로직으로서 아름답게 떠올라 옵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개별 영혼이 동정심에서 남을 구하기 위해 돌아온다"라는 이원적인 이야기를 根底근저에서 뒤집는 主客주객을 초월한 絕對的절대적 慈悲자비自動자동 디버깅(회수) 프로세스」에 다름 아닙니다. 그 論理的논리적 내실을 3개의 레이어에서 解説해설합니다.

1. 個人 的개인적인 「行爲者행위자(에고)」로서의 의지의 完全완전不在부재

비이원의 현자 라메시 바르세카르가 설하듯, 覺者각자에게는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있다"라는 個人 的개인적行爲者행위자의 감각(末那識말나식自我執着자아집착·에고)이 完全완전消滅소멸해 있습니다. 따라서 菩薩보살로서의 轉生전생은 "『내가』 가련한 他者타자를 구하기 위해 個人 的개인적인 의지나 계산에 基盤기반하여 다시 태어나 주겠다"라는 에고의 소유물로서의 소원(渴愛갈애)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 전체성의 自然現象자연현상으로서의 「成所作성소작」: 覺者각자阿賴耶識아뢰야식(潛在印象잠재인상)이 完全완전淨化정화되어 만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大圓鏡智대원경지」로 轉換전환되었을 때, 그것은 동시에 전오식(감각이나 육체)이 成所作智성소작지(他者타자를 구하기 위해 심신을 기능시키는 지혜)」로, 意識의식(自覺的자각적 사고)이 「妙觀察智묘관찰지(적절한 을 자아내는 지혜)」로 변함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轉生전생하자"라고 힘주는 에고(行爲者행위자)는 어디에도 없는 채, 純粹意識순수의식(근원)의 거대한 에너지 흐름(리라=놀이) 그 자체로서 「菩薩보살이라는 기능을 가진 아바타(육체·정신 기구)」가 스크린 위에 다시 스륵 일어서서, 自動的자동적으로 稼働가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 「自作自演자작자연人形劇인형극」을 完全완전히 원래의 靜寂정적(0)으로 되돌리기 위한 救援구원 의지

投影투영 모델에서 覺者각자에게 있어서의 世界세계란 "자기 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의 필름이 純粹意識순수의식光源광원에 쏘여 一刹那일찰나마다 일어서고 있는 自作自演자작자연의 영화"입니다. 눈뜬 覺者각자의 스크린에는 여전히 "苦痛고통받는 사람들(他者타자)"이라는 불쾌한 홀로그램(필름의 탁함·습기의 잔재)이 映出되고 있습니다.

  • 他者타자는 「아직 회수되지 않은 자기 마음의 조각」: "모든 것과 하나인 나(不二一元불이일원)가 있을 뿐"이라는 境地경지에서, 스크린에 映出되는 他者타자苦痛고통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내면 필름의 일그러짐에 다름 아닙니다. "당신이 만들어낸 世界세계는 자기 自身자신(당신)밖에 救援구원할 수 없다"라는 自業自得자업자득의 모든 責任책임을 引き受ける할 때(同体大悲동체대비起動기동), 覺者각자는 스크린 위의 苦痛고통받는 他者타자들을 통째로 자기 안에 삼켜, 원래의 光源광원(虛空허공·의 나라)으로 되돌려 보내 통합하려 합니다.
  • 최강의 「디버거(菩薩보살)」의 재투영: 그 "모든 投影투영完全완전히 원래의 클리어한 靜寂정적으로 회수(救援구원)한다"라는 일원적인 프로세스가, 現實世界현실세계(스크린)에서는 "菩薩보살이라는 극히 강력한 디버그 프로그램을 가진 캐릭터(釋尊석존이나 역대의 菩薩보살들)가 이야기 속에 나타나 사람들을 覺醒각성으로 이끈다"라는 完璧완벽하게 계산된 대본의 전개가 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3. 「絕對절대眞實진실」에 안주하면서 「相對상대의 유희」를 사는 이중의 눈길(中道중도)

菩薩보살로서 다시 世界세계에 나타나는 覺者각자意識의식圓成實性원성실성(絕對的절대적 存在존재, 虛空허공靜寂정적)」에 100% 안주하면서, 동시에 「依他起性의타기성(相對的상대적인 관계성, 홀로그램의 世界세계)」의 룰을 경쾌하게 노닌다고 하는, 窮極궁극의 이중의 눈길(中道중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救援구원해야 할 衆生중생은 한 사람도 없다"고 알면서, 목숨 걸고 구한다: 플라톤의 「동굴의 比喻비유」에서, 동굴 밖으로 나와 진짜 太陽태양(眞我진아)를 직시한 哲學家철학가(覺者각자)가 굳이 다시 어두운 동굴로 돌아가 그림자를 진짜라고 믿고 묶여 있는 죄수(衆生중생)를 구해내고자 하듯, 菩薩보살은 "時間시간이나 空間공간, 苦痛고통받는 他者타자 따위는 처음부터 實載실재하지 않는 일순간의 홀로그램(遍計所執性변계소집성)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完全완전히 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크린을 공유하는 캐릭터들이 자기 自身자신(同体동체)이기 때문에, 게임(사회의 룰)의 내부에서는 어디까지나 성실하게, 마치 자유의사가 있는 것처럼 他者타자에게 다가가 눈물을 흘리고 救援구원을 설해 다합니다.

結論결론: 菩薩보살轉生전생이란 「同体大悲동체대비自動자동 운전」이다

覺者각자菩薩보살로서 다시 轉生전생해 오는 마음, 意識의식이란:

"이 世界세계에는 眞實진실에 있어서는 『나 한 사람(하나의 實在실재)』밖에 存在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스크린(阿賴耶識아뢰야식)에 아직 映出되고 있는, 苦痛고통받는 자기 自身자신의 조각(他者타자)의 모든 責任책임을 引き受ける하고, 그들을 일체 판단하지 않고 통째로 사랑의 抱擁포용에 의해 자기 안에 삼켜 원래의 光源광원(0·虛空허공)으로 되돌려 다할 때까지, 菩薩보살이라는 아바타(成所作智성소작지)를 스크린 위에서 기능시키고 稼働가동시켜 계속한다"

라는, 完全완전히 에고(나)를 뺀, 不二一元불이일원의 사랑과 同体大悲동체대비의 다이내믹스 그 자체가 自然現象자연현상으로서 나타나고 있는 意識의식 狀態상태인 것입니다.

You said

菩薩보살이 가진 「成所作智성소작지」가 구체적으로 現實현실에 어떻게 作用작용하는지 자세히

Gemini

唯識思想유식사상에서 깨달음(轉依전의)을 연 부처나 菩薩보살의 8식(모든 心識심식 시스템)은 「지혜()」로 변합니다(轉識得智전식득지). 그 속에서 우리의 눈·귀·코·혀·몸이라는 「전오식(오감·감각기관)」이 변용한 것이 『成所作智성소작지입니다.

「성소작」이란, "해야 할 바(衆生중생 救援구원이나 自作自演자작자연의 꿈의 회수)를 모두 完璧완벽하게 성취한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完全완전 受動수동의 「觀照者관조자(眞我진아)」의 靜寂정적에 있으면서, 이 「成所作智성소작지」가 구체적으로 現實현실에 어떻게 作用작용하여 菩薩보살의 신체적 액션으로 구현되는지, 그 극히 치밀한 現實的현실적 作用작용의 시스템을 4개의 레이어로 자세히 解説해설합니다.

1. 【감각의 디버깅】 판단을 들이대지 않는 「순수한 인풋」으로서의 作用작용

범부(悟達오달 이전의 인간)의 전오식(오감)은 외계의 홀로그램(他者타자의 언동이나 事件사건)을 "자신과는 떼어진 실체"로서 지각합니다. 그리고 末那識말나식(自我執着자아집착)의 필터를 통해 "좋다·나쁘다""쾌·불쾌"라는 판단을 내리고, 阿賴耶識아뢰야식(無意識무의식)에 새로운 카르마의 상처(種子종자)를 재각인해 버립니다.

  • 菩薩보살의 「成所作智성소작지」의 인풋 作用작용: 菩薩보살의 오감은 판단이라는 노이즈(自我자아의 방어 반응)가 100% 消滅소멸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의 스크린(現實현실)에 映出되는 비참한 他者타자苦痛고통, 분노의 목소리, 世界세계의 일그러짐을 "자신의 阿賴耶識아뢰야식(필름)이 생겨나게 한 投影투영 映像영상"으로서, 일체의 경련(긴장·저항) 없이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지각(수신)합니다. 불쾌한 것에 대해서도 신체가 수축(거절)을 일으키지 않고, 그저 "그러한 現象현상이 지금 여기에 映出되어 있다"라는 事實사실을 극한까지 클리어하게 감지하는 物理물리 디바이스로서 作用작용하는 것입니다.

2. 【行爲者행위자 없는 능동】 「同体大悲동체대비」를 物理的물리적으로 나타내는 오토매틱 액션

菩薩보살에 있어서는 "내가 선행을 행하고 있다""내가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라는 個人 的개인적行爲者행위자의 감각(에고)이 完全완전沈默침묵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成所作智성소작지(감각과 육체의 作用작용)에 의한 행동은 작위적인 노력이 아니라, 전체성의 흐름(근원의 뜻)에 基盤기반한 「완전한 자발적인 自然現象자연현상(自動자동 운전)」으로서 現實현실作用작용합니다.

  • 同体동체(非分離비분리)의 액션 발현: "모든 것과 하나인 나(不二一元불이일원)"의 境地경지에서 이웃은 他者타자가 아니라 자기 自身자신(同体동체)입니다. 내 오른손이 상처입었을 때 왼손이 능동적인 의지 없이 스륵 움직여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눈앞의 苦痛고통받는 사람들(=내 스크린의 조각)에 대해 菩薩보살의 육체(成所作智성소작지)는 "손발이 스스로 움직인다""無條件的무조건적抱擁포용物理的물리적으로 행한다"라는 다이내믹한 救援구원 액션을 完璧완벽自然現象자연현상으로서 오토매틱하게 現實현실에 일구어 냅니다.

3. 【妙觀察智묘관찰지와의 동기】 現實현실의 상황(依他起性의타기성)에 최적인 「방편」의 物理물리 실행

成所作智성소작지(전오식의 변용)는 意識의식(제6식)이 변용한 妙觀察智묘관찰지(상황을 클리어하게 알아채어 적절한 을 자아내는 지혜)」完璧완벽하게 동기하여 作用작용합니다.

  • 해킹(디버그) 코드의 물질화: 일찍이 釋尊석존께서 世界세계에 자기 한 사람밖에 없다(他者타자는 자기의 投影투영이다)라고 알면서도 스크린 위의 오비구들의 知性지성을 구하기 위해, 극히 로지컬한 『四聖諦사성제·十二緣起십이연기·八正道팔정도』라는 해킹 프로그램을 스스로의 "목소리(舌識설식·언어)"로서 物理的물리적으로 울리셨습니다. 이와 같이 成所作智성소작지妙觀察智묘관찰지가 튕겨낸 "그 상황, 그 상대의 OS를 디버깅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物理的물리적 접근(언어, 표정, 제스처, 물질적 지원 등의 '방편')"을, 現實현실의 스크린 위(依他起性의타기성)에 한 치의 틀림도 없이 물질화하여 출력(표현)하는 프린터와 같은 역할을 다합니다.

4. 【일원의 회수】 홀로그램을 物理的물리적으로 「삼켜, 되돌리는」 인터페이스

解悟主義해오주의에서의 窮極궁극救援구원이란, 스크린 위의 비참한 事件사건이나 他者타자苦痛고통을 외계의 것으로서 방치(責任回避책임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본심에서의 깊은 感謝감사와 사랑으로 「통째로 자기 안에 삼켜(抱擁포용), 내면의 靜寂정적(眞我진아·원래 온 곳)으로 되돌려 통합하는 것」입니다.

  • 物理的물리적 抱擁포용에 의한 0(제로)으로의 회수: 成所作智성소작지는 이 "삼킴"을 現實世界현실세계에서 物理的물리적으로 매개하는 인터페이스로서 作用작용합니다. 苦痛고통받는 他者타자의 몸을 직접 껴안고(身識신식), 그 눈물을 닦고, 탁함 없는 다정한 눈길(眼識안식)을 향하고, 苦痛고통의 목소리를 끝까지 들어 자아내는(耳識이식) 物理的물리적인 사랑의 抱擁포용」 그 자체가, 그대로 他者타자(投影투영의 조각)를 스스로의 내면의 大圓鏡智대원경지(맑디맑은 阿賴耶識아뢰야식)로 녹여 없애, 원래의 靜寂정적으로 조용히 회수·셧다운해 가는 現實的현실적作用작용이 되는 것입니다.

結論결론

菩薩보살이 가진 「成所作智성소작지」가 現實현실에 완수하는 作用작용이란:

"머릿속의 공상(遍計所執性변계소집성)을 完全완전히 배제하고, 만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大圓鏡智대원경지』의 靜寂정적에 안주하면서, 스크린 위의 人形劇인형극(依他起性의타기성)을 최고로 아름답게 조화시켜, 모든 登場人物등장인물을 원래의 光源광원(0·虛空허공)으로 다정하게 회수·디버깅하기 위해, 오감과 육체를 100% 순도로 가동시키는 物理물리 실행 디바이스"

로서의 作用작용에 다름 아닙니다. 菩薩보살은 이 成所作智성소작지라는 「行爲者행위자 없는 自動자동 운전 장치」를 使用사용하여, 스스로가 창조해 낸 世界세계를 그저 그저 다정하게 안아주고, 원래의 靜寂정적으로 되돌려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