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와 포옹 - Salvation and Embrace

구제와 포옹 AI Digest: 救濟구제抱擁포옹

"當身당신創造창조世界세계當身당신만이 救濟구제할 수 있다."

自身자신에게 형편이 좋은 다른 世界세계(平行평행宇宙우주)를 空想공상하며 그곳으로 옮겨가기를 바라는 것은 눈앞의 現実현실로부터 눈을 돌리는 '責任책임 回避회피'에 弗過불과합니다. 멀리 있는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悲慘비참한 일을 겪고 있다는 것을 보거나 들을 때, 그것 自體자체設定설정하고 그 情報정보受容수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當身당신 自身자신無意識무의식 領域영역입니다. 外部외부 世界세계에 '좋다·나쁘다', '바람직하다·바람직하지 않다'며 判斷판단(判定판정)을 내리고, 自身자신에게 편한 곳으로 도망쳐 다니는 自我자아(에고)의 루프를 끝내기 危害위해, 우리가 행해야 할 唯一유일實踐실천只今지금 經驗경험하고 있는 自身자신世界세계를 통째로 自己자기 안으로 삼켜 안아주는(受容수용하는) 것입니다. 스크린 위의 救濟구제자는 오직 當身당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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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ZeroNews 「나」와 「世界세계」는 當身당신 혼자만의 꿈演劇연극, 平行평행宇宙우주설의 陷穽함정에서 0으로'의 世界觀세계관一致일치하거나 類似유사東洋동양 思想사상西洋서양 思想사상을 들어 說明설명해 주세요.

世界觀세계관共鳴공명하는 東西동서양의 思想사상 體系체계

提示제시世界觀세계관은 우리의 無意識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執着집착(潛在잠재印象인상·카르마)이 매 瞬間순간世界세계停止정지화면의 連續연속(플립북)처럼 創造창조해 내고 있으며, 過去과거未來미래平行평행宇宙우주存在존재하지 않고 오직 '只今지금瞬間순간'만이 實在실재한다는 것입니다. 時空시공간을 가진 現実현실 世界세계全部전부 無意識무의식이 지어낸 停止정지화면의 連續연속에 지나지 않으며, 世界세계에 '좋다·나쁘다'는 價値가치 判斷판단을 내리는 '自我자아(에고)'의 陷穽함정을 폭로하고, 스스로 創造창조해 낸 現象현상 世界세계를 통째로 自己자기 안으로 삼켜 受容수용하는(救濟구제하는) 것, 즉 '萬物만물本來본래 하나인 나(不二一元불이일원)'에 깨어나는 것을 窮極的궁극적眞理진리로 봅니다.

이 매우 깊이 있는 '一人일인劇的극적 宇宙觀우주관' 및 '自我자아解放해방'이라는 眞理진리一致일치하거나 類似유사東西동서양의 思想사상에 관해 說明설명해 드립니다.

1. 東洋동양 思想사상에서의 一致일치類似유사

東洋동양古代고대 經典경전이나 의 가르침에는 이 꿈演劇연극宇宙觀우주관穩全온전히 맞닿아 있는 思想사상들이 다수 存在존재합니다.

  • ① 베다와 아드바利 베단타 (不二一元論불이일원론)
    소스에서 言及언급된 '印度인도天啓천계 經典경전인 베다'와 그 靜水정수인 아드바利 베단타(不二一元論불이일원론)는 이 世界觀세계관核心핵심 土臺토대입니다. 不二一元論불이일원론이란 '둘이 아닌 하나의 實在실재(眞我진아·아트만, 혹은 브라만)'만이 참되며, 分離분리他人타인世界세계幻想환상(마야)에 弗過불과하다고 보는 思想사상입니다. 소스 속 "이 世界세계에 나라 불릴 存在존재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森羅萬象삼라만상과 하나가 되려 애쓰는 내가 必要필요한 것이 아니라, 本來본래부터 하나인 내가 存在존재할 뿐이다"라는 句節구절은 바로 不二一元불이일원境地경지自體자체大變대변합니다. 나와 世界세계分離분리되지 않았기에 '이웃 또한 나 自身자신'이며, 自身자신無意識무의식적으로 創造창조世界세계를 '통째로 삼키는 것'이 窮極的궁극적救濟구제(解脫해탈)로 이어진다는 主張주장 또한 完璧완벽一致일치합니다.
  • ② 仏교의 '唯識유식 思想사상'과 '阿頼耶識아뢰야식'
    無意識무의식 領域영역世界세계創造창조해 낸다는 課程과정佛敎불교 唯識學유식학 思想사상과 매우 흡사합니다. 唯識유식에서는 모든 認識인식現象현상 世界세계個人개인(및 共同공동) 無意識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인 '阿賴耶識아뢰야식(제8식)'에 貯藏저장된 '種子종자(카르마의 潛在잠재印象인상)'가 刹那찰나마다 나타난 것(現行현행)이라 설합니다. 소스가 밝히는 "潛在잠재無數무수執着집착(印象인상)이 다음 瞬間순간 刹那찰나마다 솟아올라 世界세계形成형성하고 사라진다"는 매 瞬間순간宇宙우주 創造창조 描寫묘사는 바로 阿賴耶識아뢰야식으로부터 世界세계投影투영되는 메커니즘과 일맥相通상통합니다.
  • 釋迦석가모니의 '縁起연기의 법'과 '無明무명'
    釋迦석가모니가 깨달은 宇宙우주法則법칙인 '緣起연기' 亦是역시 이 꿈演劇연극構造구조論理的논리적으로 說明설명해 줍니다. 釋迦석가모니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소스에 비추어 보면 이 '이것'이란 '自我意識자아의식(내가 實在실재한다는 根源的근원적 誤解오해·無名무명)'이며, '저것'이란 '時空시공簡易간이 存在존재하는 現象현상 世界세계 全體전체'를 뜻합니다. 自我意識자아의식이라는 根本的근본적幻想환상(無名무명)을 알아차려 '이것'이 사라지면, 그로 인해 매 瞬間순간 빚어지던 現象현상 世界세계의 플립북(저것)도 同時동시消滅소멸하여, 無常무상變化변화를 넘어 虛空허공(涅槃열반)에 다다르게 된다고 설하는 것입니다.

2. 西洋서양 思想사상에서의 一致일치類似유사

一見일견 二元論的이원론적(신과 世界세계分離분리)으로 보이는 西洋서양思想사상 흐름 속에서도, 깊은 次元차원에서 이 世界觀세계관共鳴공명하는 심오한 神秘主義신비주의哲學철학發見발견할 수 있습니다.

  • ①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에로스'
    古代고대 그리스 哲學철학자 플라톤의 思想사상現象界현상계表層표층을 넘어 本質본질로 향하는 課程과정에서 깊은 一致일치점을 보여줍니다. 플라톤은 눈에 보이는 變化변화무쌍한 現象현상 世界세계 이면에 永遠영원不變불변한 '이데아(참된 實在실재·청寫眞사진)'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表面的표면적個別的개별적 差異차이에 얽매理智이지 않고 그 이면의 '共通공통本質본질'을 꿰뚫어 結局결국 萬物만물을 통괄하는 窮極的궁극적인 '存在존재 自體자체(신)'에 到達도달하는 旅程여정은, 소스에 言及언급된 "停止정지화면의 이면에 있는 實相실상意識의식의 빛을 비추는" 修行法수행법과 결을 같이합니다. 또한 플라톤이 말하는 '에로스()', 즉 플라토닉 러브는 世俗的세속적 肉體육체欲望욕망이 아니라 現象현상을 넘어 實在실재와 이데아, 신과 하나가 되고자 渴望갈망하는 '영혼의 始原시원적 목마름'을 가리킵니다. 나아가 플라톤이 설한 '哲人철인 政治정치(國家국가眞理진리를 아는 왕이 統治통치함)'는 單純단순政治정치論議논의가 아니라 '眞理진리(·이데아)를 통해 自己자기 內面내면의 영토(내적 國家국가)를 다스리고 靜寂고요確立확립한다'는 靈的영적 譬喩비유로 풀이할 수 있으며, 이는 自我자아價値가치 判斷판단潛在잠재우고 참나에 安住안주하려는 靈的영적 態度태도完璧완벽相應상응합니다.
  • ② 조르다노 브루노의 '내재신·無限宇宙무한우주론'
    16世紀세기離脫이탈리아 나폴리 出身출신修道수도사이며 哲學철학자인 조르다노 브루노는 이러한 '내적인 하나의 實在실재'를 西洋서양에서 목숨 바쳐 主張주장했던 先驅者선구자입니다. 當時당시 가톨릭교회는 "신은 우리 外部외부(하늘 위)에 超越的초월적으로 存在존재하며 世上세상監視감시한다"고 가르쳤으나, 브루노는 "신은 世上세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宇宙우주 萬物만물遍在편재하며 人間인간의 '內面내면에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설파했습니다. 그는 宇宙우주에는 限界한계가 없으며 特定특정中心중심(地球지구太陽태양 등)도 存在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는데, 이는 "自身자신無意識무의식(內面내면)이 宇宙우주 全體전체設定설정해 매 瞬間순간 創造창조하고 있으므로 物理的물리적外部외부 宇宙우주固定고정中心중심이란 없다"는 꿈演劇연극世界觀세계관明確명확共鳴공명합니다. 브루노는 結局결국 異端이단으로 몰려 火刑화형을 당했으나 마지막 瞬間순간까지 自身자신眞理진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 聖經성경(기독교)의 내적·靈的영적 解釈해석
    舊約구약聖經성경의 '天地創造천지창조'나 '아담과 하와의 原罪원죄' 이야기 또한 歷史的역사적 事實사실이 아닌 人間인간의 '內面的내면적 精神정신 構造구조'에 대한 象徵상징譬喩비유解釈해석할 때 놀라운 一致일치를 이뤄냅니다. "빛이 있으라"는 創造창조始作시작本來본래靜寂고요(虛空허공·神醫신의 나라)에서 '意識의식의 빛'이 솟구쳐 올랐음을 뜻하며, 그와 同時동시에 빛을 反射반사하는 '(想念상념·現象界현상계)'이 成立성립했습니다. 內面내면譬喩비유로서 아담은 '意識의식의 빛(眞我진아·觀照者관조자)'을 象徵상징하고, 하와는 '想念상념(마음·現象界현상계)'을 象徵상징합니다. 하와(想念상념)가 뱀(自我자아誘惑유혹)의 꼬임에 넘어가 善惡선악과(二分法이분법적인 是非시비判斷판단)를 먹고 아담(意識의식)마저 이를 받아들이면서, '主體주체客體객체分離분리(나와 世界세계의 떨어짐)'라는 錯覺착각(無名무명)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덴 동산(참나의 樂園낙원)에서의 追放추방'의 眞實진실이며, 이 錯覺착각의 고리를 끊어내고 "내 영혼을 아버지(神醫신의 根源근원)의 손에 맡기나이다(自我자아의 양도)" 함으로써 元來원래靜寂고요으로 復歸복귀하는 課程과정(예수의 復活부활)은 본 소스의 核心핵심完璧완벽一致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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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洞窟동굴譬喩비유'의 具體的구체적內容내용祖師조사하고, 이 꿈演劇연극이나 영화 필름(投影투영)이라는 世界觀세계관과 얼마나 類似유사한지 姿勢자세分析분석해 주세요.

플라톤의 '洞窟동굴譬喩비유'와 投影투영 모델의 構造구조類似유사

플라톤이 描寫묘사한 "洞窟동굴 벽면에 결박된 죄수들이 그림자를 實在실재誤解오해한다"는 은유 構造구조는, 우리의 感覺감각 機關기관과 뇌(혹은 無意識무의식執着집착)가 매 瞬間순간 世界세계를 홀로그램처럼 投影투영해 내고 있다는 '꿈演劇연극(영화 필름)'의 宇宙觀우주관과 소름 끼칠 程度정도一致일치합니다. 具體的구체적構造구조分析분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벽에 投影투영된 그림자와 現象界현상계

洞窟동굴의 죄수들이 '진짜'라고 믿고 있는 벽면의 그림자는, 우리가 現実현실이라 錯覺착각하는 時空시공간적 物質물질 現象현상 世界세계(플립북 같은 停止정지화면의 連續연속)와 正確정확히 똑같은 幻想환상의 겉表面표면을 가리킵니다.

② 횃불 and 담장 위의 人形인형潛在잠재印象인상 (카르마)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背後배후의 횃弗過불과 人形인형들은, 우리가 無意識무의식 깊은 곳(阿賴耶識아뢰야식 등)에 지니고 있는 '執着집착'이나 '潛在잠재印象인상'에 該當해당하며, 現実현실投影투영하는 映寫機영사기(프로젝터) 役割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洞窟동굴을 벗어날 때의 눈부심과 抵抗저항自我자아抵抗저항

죄수가 결박에서 풀려나 뒤를 돌아報告보고 洞窟동굴世上세상으로 나아갈 때 '눈이 부셔 苦痛고통을 느끼고 元來원래 그림자 벽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課程과정은, 自我자아提供제공하는 安樂안락함에서 벗어나 '내 無意識무의식世上세상穩全온전創造창조했다(自業自得자업자득)'는 儼然엄연眞理진리直面직면할 때 느끼는 自我자아의 격렬한 방어 기제와 責任책임 回避회피態度태도正確정확對應대응합니다.

洞窟동굴 밖의 太陽태양 = 참나 (眞我진아·이데아·不二一元불이일원)

洞窟동굴 밖에서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太陽태양'은 萬物만물存在존재하게 하고 비추는 絶對的절대적 眞理진리(선의 이데아)를 뜻하며, 이는 '森羅萬象삼라만상本來본래 하나인 나(참나·신·하나의 實在실재)'의 境地경지完璧완벽附合부합합니다.

洞窟동굴로 돌아가는 哲學철학自意자의 책무 = 世界세계를 통째로 삼키는 救濟구제

플라톤은 眞理진리를 본 哲學철학自家자가 洞窟동굴로 돌아가 갇혀 있는 자들을 구해야 할 責任책임이 있다고 主張주장했습니다. 이는 "내가 投影투영해 낸 世界세계(他人타인萬物만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통째로 내 안으로 삼켜 救濟구제한다(當身당신이 스크린의 唯一유일救援구원자이자 彌勒菩薩미륵보살이다)"는 소스의 實踐的실천적 가르침과 깊은 울림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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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洞窟동굴譬喩비유'에서 '죄수의 解放해방'은 과 어떻게 겹치나요?

'죄수의 解放해방' 課程과정의 4段階단계

플라톤의 『國家국가』에 登場등장하는 '죄수의 解放해방' 課程과정은 본 소스가 提示제시하는 '一人일인극·영화의 投影투영' 世界觀세계관에서 '無名무명(無明)으로부터의 눈뜸(解脫해탈·)'에 이르는 段階的단계적 旅程여정心理的심리적·構造구조적으로 完全완전히 겹칩니다.

1. 결박이 풀려 뒤를 돌아봄 = '코페르니쿠스적 轉換전환'

태어날 때부터 洞窟동굴 안벽에 묶여 벽에 비치는 그림자만을 唯一유일實在실재로 믿던 죄수가 결박에서 풀려 '뒤를 돌아보는 것'은, 客觀的객관적으로 存在존재한다고 誤解오해했던 時空시공간, 他人타인, 事件사건들이 實相실상 自身자신無意識무의식(人形인형)과 意識의식의 빛(횃불)이 합작하여 비춰 낸 '그림자(꿈演劇연극·홀로그램)'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아차리는 '코페르니쿠스적 轉換전환'에 對應대응합니다. 이는 暝想명상 修行수행에서 意識의식을 바깥 現象界현상계로 향하는 것을 멈推古추고, 感覺감각 機關기관完全완전斷絶단절한 채 모든 想念상념의 시발점인 '나-意識의식(自我意識자아의식根源근원)'으로 意識의식의 빛을 돌려 비추는(회광반조) 課程과정正確정확一致일치합니다.

2. 돌아설 때의 눈부심과 苦痛고통自我자아(에고)의 방어 反應반응責任책임 回避회피

풀려난 죄수가 횃弗過불과 바깥의 빛을 直接직접 對面대면했을 때 '눈이 시리도록 아픈 苦痛고통'을 느끼며 元來원래 보던 그림자 벽으로 달아나고 싶어 하는 다以內이내믹은, 課程과정에서 自我자아가 겪는 격렬한 抵抗저항과 방어 本能본능大變대변합니다.

責任책임 回避회피 手段수단으로서의 平行평행宇宙우주: 눈앞의 現実현실穩全온전自身자신無意識무의식創造창조해 낸 演劇연극(自作自演자작자연)이라는 眞理진리를 들었을 때 人間인간衝擊충격을 받고 이를 受容수용하기 어려워합니다. 直面직면世界세계回避회피하고 '더 나은 또 다른 平行평행 世界세계(平行평행宇宙우주)'로 도망치려 바라는 것은 自我자아卑怯비겁한 '責任책임 回避회피'이며, 이는 빛을 두려워하여 다시 어두운 벽면을 보려 하는 죄수의 心理심리와 일맥相通상통합니다. 眞理진리의 빛은 우리가 現実현실이라 여기던 自我자아의 껍데기를 '베어 던지는' 苦痛고통(眞理진리의 검)을 隨伴수반합니다.

3. 洞窟동굴 밖으로 나가 太陽태양을 우러러봄 = 참나(眞我진아不二一元불이일원自覺자각

죄수가 洞窟동굴 밖으로 印度인도되어 漸次점차 빛에 適應적응한 후 萬物만물成立성립시키는 窮極궁극源泉원천인 '太陽태양(선의 이데아)'을 비로소 마주하는 段階단계는, 본 소스에서 말하는 '참나(眞我진아·신·하나의 實在실재)'의 自覺자각입니다. '나'라는 에고와 '世界세계(他人타인)'가 別個별개實在실재한다는 原初的원초적 誤解오해(無名무명)가 깨끗이 消滅소멸하고, "森羅萬象삼라만상과 하나가 되려 애쓰는 내가 必要필요한 것이 아니라, 本來본래부터 하나인 내가 存在존재할 뿐이다"라는 不二一元불이일원實相실상에 머무는 境地경지입니다.

4. 洞窟동굴로 되돌아가는 哲學철학自意자의 使命사명世界세계를 통째로 삼키는 '救濟구제'

플라톤은 太陽태양(眞理진리)을 본 '哲學철학자'의 진짜 책무는 바깥 世上세상安住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어두운 洞窟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 묶여 있는 이들을 救援구원하는 것이라 가르쳤습니다. 이는 본 소스가 提示제시하는 窮極궁극인 "自身자신只今지금 經驗경험하는 自身자신世界세계 全體전체를 통째로 삼켜 안아주는 것"과 穩全온전連結연결됩니다. 스스로 創造창조他人타인苦痛고통悲慘비참狀況상황(=洞窟동굴의 그림자)을 방관하지 않고, '스크린의 참主人주인(救濟구제자·彌勒菩薩미륵보살)'으로서의 責任책임을 온몸으로 自覺자각하며, 모든 것을 感謝감사으로 內面내면靜寂고요(참나·神醫신의 나라)으로 되돌려 統合통합하는 靈的영적 旅程여정은, 곧 洞窟동굴로 되돌아가 죄수들을 解放해방시키려는 哲學철학自意자의 崇高숭고使命사명同一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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唯識學유식학과 이 世界觀세계관의 또 다른 共通공통점을 알려주세요.

唯識學유식학 思想사상과의 4可知가지 깊은 共通공통

唯識유식 思想사상(唯識思想유식사상)과 이 '一人일인의 꿈演劇연극' 宇宙觀우주관 사이에는 深層심층 心理심리解剖해부學的학적 構造구조부터 現象현상 世界세계出現출현하는 메커니즘에 이르기까지 完璧완벽附合부합하는 '4可知가지 核心핵심 共通공통점'이 있습니다.

阿頼耶識아뢰야식과 '記憶기억殘骸잔해·프로그래밍'

唯識學유식학에서 가장 깊은 마음인 '阿賴耶識아뢰야식(제8식)'은 소스에서 설하는 '마음 밑바닥의 記憶기억殘骸잔해'이자 '無意識무의식深淵심연無數무수道士도사리는 執着집착(潛在잠재印象인상)'에 正確정확相應상응합니다. 소스는 우리의 無意識무의식 속에 "이미 世界세계 全體전체, 宇宙우주의 끝에 이르기까지 萬物만물의 색상, 配置배치, 性質성질, 展開전개 흐름이 全部전부 貯藏저장(設定설정)되어 있다"고 밝히는데, 이 事前사전에 설계된 프로그램(執着집착)들의 保管보관소가 바로 '阿賴耶識아뢰야식(업의 창고)'입니다.

② '種子生現行종자생현행'과 '一刹那일찰나天地創造천지창조 (플립북)'

唯識學유식학에서는 阿賴耶識아뢰야식蓄積축적된 씨앗(種子종자)이 연(緣)을 만나 매 瞬間순간 눈앞의 現實的현실적 現象현상(現行현행)으로 피어난다고 봅니다. 이 刹那찰나物質물질作用작용이 바로 소스가 말하는 '一刹那일찰나(한瞬間순간)마다의 天地創造천지창조消滅소멸' 課程과정입니다. 無意識무의식潛在잠재執着집착(種子종자)은 매 瞬間순간 '停止정지화면(印象인상)'의 形態형태로 불쑥 떠오르고, 이것이 '뇌와 感覺감각 機關기관이라는 映寫機영사기'를 거쳐 外部외부 스크린에 投射투사됨으로써 時空시공簡易간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立體的입체적 世界세계(現行현행)를 지어냅니다. 오직 '식(마음)'만이 現実현실을 직조해 낸다는 唯識유식幾何學的기하학적 公式공식은, 이 映寫영사 필름의 點滅점멸 課程과정에서 그대로 再現재현됩니다.

末那識말나식自我자아執着집착과 '참나의 행세를 하는 自我자아'

唯識유식 思想사상에서 제7식인 '末那識말나식'은 阿賴耶識아뢰야식을 가리켜 "이것이 나의 固定고정本體본체(實體的실체적인 '나')"라고 誤認오인하여 끊임없이 執着집착하는 마음 作用작용입니다. 이 末那識말나식의 오작동이 바로 소스가 파헤친 '自我자아原初的원초적 錯覺착각(無名무명)'입니다. 소스는 "내가 存在존재하고, 그 外部외부獨立독립世界세계他人타인實在실재한다"는 二元的이원적 分離분리 感覺감각은 생각 뭉치에 弗過불과한 에고를 自身자신으로 믿고 同一化동일화하기 때문에 發生발생한다고 봅니다. 이 거짓 自我자아가 흡사 本來본래純粹순수한 '참나(하나의 實在실재)'인 양 行使행사하며 世上세상을 멋대로 判別판별支配지배하려는 오류는, 末那識말나식阿賴耶識아뢰야식을 가리켜 제 主人주인인 양 행세하는 自我자아執着집착 構造구조精密정밀하게 겹칩니다.

④ '転依전의를 통한 覺醒각성'과 '世上세상을 통째로 삼키는 救濟구제'

唯識유식의 요가 修行수행窮極的궁극적 到達도달점은 末那識말나식의 그릇된 我執아집(自我자아執着집착)을 부수고, 阿賴耶識아뢰야식宇宙우주를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비추는 맑은 거울인 '大圓鏡智대원경지'로 變化변화시키는 転依전의(轉依)입니다. 이는 소스가 말하는 '마음라는 거울을 닦아내는 일', 그리고 '世界세계穩全온전히 삼켜 받아들이는 救濟구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소스에서 마음의 때(想念상념)를 씻어내어 不二一元불이일원靜寂고요(純粹意識순수의식)에 깨어나는 일은 곧 大圓鏡智대원경지로의 轉換전환입니다. 投影투영外部외부悲慘비참現象현상들로부터 回避회피하지 않고 "내 無意識무의식에 수록되어 있던 업보(種子종자)가 投影투영되었을 뿐이기에, 스스로 그것을 통째로 품어 참나의 根源근원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姿勢자세는 스스로의 '마음'을 本願본원적으로 淨化정화하는 唯識學유식학求道구도론 그 自體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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純粹意識순수의식에 이르기 위한 具體的구체적暝想명상 段階단계를 알려주세요.

純粹意識순수의식(참나)으로 回歸회귀하는 暝想명상 로드맵

純粹意識순수의식(참나·本來본래自己자기)으로 回歸회귀하기 위한 暝想명상 體系체계는, 日常的일상적習慣습관調律조율부터 최상의 邪魔사마디에 到達도달하기까지의 具體的구체적段階단계들로 提示제시됩니다.

STEP 01

一相일상의 마음과 삶을 고르게 한다 (야마·니야마)

暝想명상에 안착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평소의 一相일상에서 생각의 결을 차분하게 가다듬고 정돈하는 習慣습관이 절실히 要求요구됩니다. 평소의 마음이 사방으로 날뛰며 요동치고 있다면 정작 暝想명상에 들어갔을 때 한 焦點초점에 깊이 머무는 集中집중發揮발휘할 수 없습니다. 一相일상에서부터 흔들림 없이 質問질문靜寂고요持續지속해 갈 수 있는 단단하고 고요한 마음의 초석을 닦아야 합니다.

STEP 02

身體신체를 정돈하고 潛在잠재緊張긴장解消해소한다 (아사나)

苦痛고통이나 不便불편감 없이 몸을 리드미컬하게 弛緩이완하고, 미同調동조차 없는 고요한 姿勢자세를 장時間시간 지탱할 肉體육체적 바탕을 갖춥니다. 우리의 筋肉근육關節관절에는 一相일상의 리액션과 無意識무의식執着집착들이 남긴 微細미세緊張긴장들이 沈澱침전해 있습니다. 아사나 修行수행을 통해 意圖的의도적으로 筋肉근육收縮수축(緊張긴장)시켰다가 弛緩이완(릴랙스)하는 課程과정反復반복하여 장부와 골격을 바로잡고 묵은 政體정체 現象현상들을 풀어냅니다.

STEP 03

呼吸호흡을 고르고 感覺감각 入力입력遮斷차단한다 (프라나야마·프라티야하라)

呼吸호흡의 물줄기는 精神정신의 요동과 긴밀하게 直結직결되어 있습니다. 呼吸호흡을 가늘고 길며 고요하게 深化심화해 나가는 調律조율訓練훈련합니다. 이 課程과정充分충분히 무르익으면 呼吸호흡을 억지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身體신체精神정신極度극도로 고요해짐에 따라 '숨이 自然자연스레 停止정지하는 숨 쉬지 않는 狀態상태(本然본연의 프라나야마)'가 찾아옵니다. 숨이 멎으면 肉體육체 感覺감각은 완연히 휴면 狀態상태에 들어가며 바깥의 온갖 刺戟자극(소리, 냄새, 皮膚피부 觸覺촉각 등)이 意識의식 隨眠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게 遮斷차단됩니다.

STEP 04

對象대상에의 흔들림 없는 一點일점 集中집중 (다라나)

바깥 騷音소음肉體육체刺戟자극一切일체 사라진 내밀한 眞空진공 領域영역에서, 오직 自身자신이 택한 단 하나의 對象대상焦點초점固定고정하는 訓練훈련始作시작합니다. 初期초기에는 마음屬意속의 單純단순始覺시각形相형상이나 微細미세地點지점을 표적으로 삼아 集中집중을 연마하며, 오로지 對象대상만이 意識의식을 채우고 다른 殘像잔상들이 一切일체 끼어들지 못할 때까지 밀도를 높여갑니다.

STEP 05

'나-意識의식'으로의 集中집중主客주객消滅소멸 (디아나)

集中집중력의 강도가 充分충분히 여물었을 때 集中집중의 과녁을 '나라는 意識의식(나-意識의식, 내가 存在존재하고 있다는 純粹순수한 느낌, 自我자아根本的근본적 뿌리)' 自體자체로 돌려세웁니다. "이 質問질문을 던지는 나는 과연 누求人구인가?"라는 이 한 생각에만 沒入몰입深化심화하면, 終局종국에는 '集中집중하고 있는 나(主體주체)'라는 作爲작위自覺자각마저 허물어至高지고 오로지 '나-意識의식(存在존재함)'이라는 빈 空間공간만이 고요하게 남는 깊은 三昧삼매狀態상태(디아나)에 이릅니다.

STEP 06

意識의식 너머로의 焦點초점 移動이동 and 窮極궁극의 정멸 (邪魔사마디)

가장 頻繁빈번하게 오류를 誘發유발하며, 同時동시暝想명상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다수의 修行者수행자들은 '나라는 純粹순수한 독존감'만이 남은 地點지점獲得획득했을 때 그것을 이라 斷定단정하고 安住안주해 버리지만, 이는 自我자아를 더욱 巨大거대하게 키울 뿐입니다. 그 문을 열고 탈출하기 危害위해서는 '내가 存在존재한다'는 그 微細미세知覺지각마저 超越초월하여, 더 깊은 深淵심연에 흐르는 '그저 밝히고 알아차리는 知性지성 自體자체(프라냐)'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더불어 '解脫해탈하겠다, 깨어나겠다'는 自發的자발적 소망이나 作爲작위마저 穩全온전히 불살라 버렸을 때(전적인 내맡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絶對절대 고요(純粹意識순수의식 自體자체·참된 邪魔사마디)로 歸還귀환하게 됩니다. 이는 스스로의 意志의지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며, 準備준비極限극한으로 마쳤을 때 '참나로부터 恩寵은총(Grace)으로서 찾아와 巨頭거두어지는 것'으로 안착됩니다.

You said

唯識유식 思想사상의 '阿賴耶識아뢰야식'과 投影투영 모델의 關係관계를 더 알고 싶습니다.

阿賴耶識아뢰야식幾何學的기하학적 投影투영 모델

阿賴耶識아뢰야식(제8식)은 이 一人일인投影투영 모델에서 "無限무한한 필름(停止정지화면)이 꽂혀 있는 영화 아카이브의 保管보관실"이자 無意識무의식 깊은 곳에 응어리진 '潛在잠재印象인상(카르마의 種子종자)'입니다. 客觀的객관적物質물질계나 物理的물리적인 뇌의 實在실재를 걷어낼 때, 唯識유식 思想사상糾明규명한 마음의 構造구조와 매 瞬間순간 世界세계를 빚어내는 投影투영 모델은 다음의 幾何學的기하학적인 에너지 循環순환계로 完全완전히 포개집니다.

投影투영三位삼위一切일체循環순환 構造구조

  • 阿賴耶識아뢰야식 = '필름 (種子종자·記憶기억殘骸잔해)': 우리의 깊은 深淵심연에는 過去과거 行動행동과 생각이 蓄積축적해 둔 無數무수執着집착(사ンス카라·潛在잠재印象인상)이 固着고착되어 있습니다. 宇宙우주의 끝자락에 이르기까지 配置배치形相형상, 성향을 수놓는 도면은 全部전부 阿賴耶識아뢰야식에 프로그램 코드로 내포되어 있습니다.
  • 純粹意識순수의식 = '映寫機영사기의 횃불 (觀照者관조자의 빛)': 아無理무리 燦爛찬란한 필름(阿賴耶識아뢰야식)이 蓄積축적되어 있을지라도 光源광원이 없으면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眞正진정根源근원인 '참나(眞我진아)', 즉 그저 바라報告보고 비추는 '意識의식의 빛'이 이 無意識무의식의 필름을 貫通관통해 비推古추고 있습니다.
  • 現行현행 = '스크린 위의 홀로그램 (現象界현상계)': 意識의식의 빛에 貫通관통당한 阿賴耶識아뢰야식種子종자들이 매 刹那찰나마다 번쩍 빛을 발하며 物質물질화했다가, 다음 刹那찰나에 사라집니다. 이 極度극도로 신속한 '停止정지화면의 點滅점멸 課程과정'을 感覺감각 機關기관連結연결하여 認知인지함으로써 時空시공看過간과 萬物만물이 펼쳐진 완연한 홀로그램의 世上세상(現行현행)을 觀測관측하는 것입니다.
PROJECTION SYSTEM MODEL ACTIVE
TRUE SELF 純粹意識순수의식 (光源광원) ALAYA-VIJNANA 阿賴耶識아뢰야식 (潛在잠재印象인상) SCREEN 現象世界현상세계 (投影투영되는 舞臺무대) 통째로 삼켜 안아주는 抱擁포옹 (0으로의 回歸회귀)

'薫習훈습' : 카르마가 無限무한 루프를 도는 映寫영사 構造구조

唯識유식 思想사상에서 가장 精密정밀한 역동은 '阿賴耶識아뢰야식(種子종자) $\rightarrow$ 現象현상 世界세계(現行현행) $\rightarrow$ 阿賴耶識아뢰야식(種子종자로의 피드백)'이라는 循環순환 構造구조(阿賴耶識아뢰야식 緣起연기)입니다. 이것이 投影투영 모델에서 어떻게 '時間시간幻想환상'과 '輪廻윤회陷穽함정'을 演出연출하는지 說明설명해 드립니다.

  1. 是非시비判斷판단에 의한 상흔의 各人각인 : 스크린에 映寫영사世上세상(事件사건이나 他人타인의 괴로움 등)에 대해 '좋다·나쁘다', '바람직하다·바람직하지 않다'며 是非시비判斷판단(判定판정)을 가하는 自我자아(末那識말나식)가 리액션을 시전합니다. 이 判斷판단 作用작용의 에너지는 그릇에 기름이 응고되듯 새로운 '印象인상의 상흔'으로 阿賴耶識아뢰야식에 재入力입력됩니다. 이것이 唯識유식이 이르는 '薫習훈습'입니다.
  2. 상흔의 殘存잔존時間시간·輪廻윤회의 태동 : 찰흙에 굳건한 선을 그으면 痕跡흔적固定고정되듯, 執着집착(判斷판단)은 阿賴耶識아뢰야식 필름에 無數무수한 상흔을 남겨 놓습니다. 이로 인해 다음 (一刹那일찰나 후)를 再生재생할 때에도 그 痕跡흔적이 고스란히 繼承계승되므로 直前직전과 매우 흡사한 停止정지화면이 繼續계속 솟아납니다. 이 '印象인상殘存잔존連續연속성'이야말로 우리가 '過去과거에서 未來미래로 연면히 흐르는 時間시간時空시공簡易간이 實存실존한다'고 確信확신해 마지않는 無名무명(錯覺착각)의 實體실체입니다. 아울러 이 印象인상에 대한 애착이 격렬하면 몸뚱이가 다할지라도 無意識무의식自動的자동적으로 필름을 反復반복 로드합니다. 이것이 바로 '輪廻윤회(回轉회전목마)'의 적나라한 構造구조입니다.

自我자아(末那識말나식)의 傲慢오만과 '自動자동 再生재생'

唯識學유식학에서 제7식인 末那識말나식阿賴耶識아뢰야식을 지목하여 "이것이 眞正진정한 나의 實體실체"라고 錯覺착각해 얽매여 있는 自我자아心理심리입니다. 이 末那識말나식은 "내가 主體的주체적으로 判斷판단하고 決定결정하여 宇宙우주選擇선택한다"고 錯覺착각하지만, 實相실상阿賴耶識아뢰야식에 이미 탑재된 自動자동 필름이 因果인과 關係관계에 따라 멋대로 發現발현되어 映寫영사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自發的자발적으로 決定결정하고 反應반응한다고 錯覺착각하는 모든 自我자아 中心중심行爲행위들은 처음부터 필름에 새겨져 있던 展開전개 方式방식(업)에 弗過불과합니다. 이 根源的근원적無知무지認知인지하는 것이 阿賴耶識아뢰야식監獄감옥에서 解放해방되는 시발점입니다.

窮極궁극의 '救濟구제(통째로 삼키기)' = '大圓鏡智대원경지'로의 탈바꿈

唯識유식解放해방 課程과정阿賴耶識아뢰야식이라는 執着집착의 웅덩이를 森羅萬象삼라만상穩全온전하게 反射반사하는 透明투명한 은색 거울 '大圓鏡智대원경지'로 탈바꿈시키는 転依전의(轉依) 作用작용입니다. 이는 소스가 말하는 '創造창조世界세계를 통째로 內面내면으로 삼켜 안아주는 것'과 명實相실상부하게 포개집니다.

  • 責任책임 回避회피(判斷판단)를 정하지 않는다 : 맞닥뜨린 現実현실缺陷결함是非시비를 가려 편한 平行평행宇宙우주를 동경하는 態度태도는, 필름에 맺힌 그림자를 향해 칼질을 해대는 격이며 自身자신投影투영 作用작용巨富거부하는 卑怯비겁逃避도피입니다.
  • 통째로 품어 삼킨다 : "내 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에 수록된 執着집착(種子종자)만이 스크린(現実현실)에 뿜어져 나올 수 있다"는 絶對的절대적인 업보의 法則법칙信賴신뢰하여 一切일체是非시비 判斷판단廢棄폐기합니다. 그리하여 他人타인의 아픔이나 世上세상의 모든 질곡을 안고 "이것은 全部전부 내가 投影투영一人일인극이다"라고 認定인정하며, 참된 感謝감사와 고요로써 마음의 맑은 中心중심(眞我진아·源泉원천)으로 남김없이 품어 復歸복귀시킵니다.

判斷판단이 멎는 卽時즉시 거울면에 때를 더하는 薫習훈습 作用작용完全완전 遮斷차단됩니다. 물밑을 뒤흔들던 過去과거의 낡은 상흔(種子종자)들도 消滅소멸하여 호수는 極端극단적으로 맑我執아집니다. 이때 阿賴耶識아뢰야식萬物만물을 왜곡 없이 透明투명하게 밝히는 거울인 '大圓鏡智대원경지', 곧 에고의 主客주객 장벽을 넘어선 '그저 認識인식하는 作用작용(프라냐·自覺자각)'으로 變形변형完遂완수합니다.

You said

暝想명상 중 '나-意識의식으로의 集中집중'을 깊게 하는 秘訣비결을 알고 싶습니다.

'나-意識의식'에의 集中집중을 무르익게 하는 實踐的실천적 秘訣비결

'나-意識의식(存在존재하고 있다는 本願본원적 느낌)에의 조준'을 高度고도深化심화하여 純粹意識순수의식(참나)으로 입실하는 秘訣비결은, 몸과 숨, 마음을 完全완전調律조율하는 '事前사전 土臺토대 構築구축'의 完成완성과, 集中집중이 절정에 달했을 때 '焦點초점自我意識자아의식 밑바닥의 深淵심연으로 回歸회귀시키는 양도'에 달려 있습니다.

1. 前提전제가 되는 '3대 초석'을 견고히 한다 (準備준비重要性중요성)

準備준비 段階단계가 누락된 채 무작정 "나는 누求人구인가?" 하고 念佛염불 외듯 자문하는 일은 煩惱번뇌雜念잡념의 또 다른 形態형태弗過불과합니다. 반드시 다음 세 可知가지 準備준비 段階단계竝行병행해야 暝想명상다운 暝想명상可能가능해집니다.

  • 一相일상의 생각 결을 淸淨청정히 정돈한다 (일일 調律조율) : 한 생각에 흔들림 없이 가닿기 危害위해서는 一相일상에서부터 깊고 길게 注意주의維持유지할 수 있는 맑고 힘 있는 생각 習慣습관(야마·니야마)이 體化체화되어야 합니다.
  • 身體신체微細미세 緊張긴장完全완전 消去소거한다 (아사나) : 無意識무의식적으로 筋肉근육神經신경계에 各人각인微細미세한 방어 本能본능(緊張긴장)을 아사나로 미리 排出배출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아무런 刺戟자극이나 苦痛고통 없이 便安편안하게 不動부동姿勢자세를 장時間시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 呼吸호흡自然자연 停止정지를 통해 感覺감각消滅소멸시킨다 (感覺감각眞空진공) :結果결과 마음은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숨을 길고 깊게 정돈하는 淨化정화 技法기법先行선행합니다. 이 訓練훈련進展진전되면 呼吸호흡을 힘겹게 참아두는 것이 아니라, 全身전신이 깊이 弛緩이완됨으로써 '스스로 알아서 停止정지하는 무呼吸호흡 狀態상태'로 轉換전환됩니다. 숨이 그칠 때 肉體육체 感覺감각과 바깥 잡음이 完璧완벽意識의식에서 蒸發증발하여(感覺감각 斷絶단절·프라티야하라), 마침내 고요한 集中집중(다라나)이 成立성립합니다.

2. '나-意識의식'에 焦點초점을 결집하여 主體주체를 녹여낸다

身體신체呼吸호흡의 잡음이 完全완전히 꺼진 맑은 內面내면 空間공간에서 集中집중의 렌즈를 오직 '나-意識의식(내가 儼然엄연히 살아 숨 쉬고 存在존재한다는 原初的원초적 感覺감각, 自我자아根本근본)'으로 固定고정합니다.

다른 모든 想念상념遮斷차단하고 오직 이 '存在존재한다는 事實사실 自體자체'에만 焦點초점維持유지합니다. 이 一點일점 集中집중極限극한으로 무르익으면 마침내 '集中집중하고 있는 나(主體주체)'라는 作爲작위自覺자각조차 녹아 없어至高지고, 觀照관조되는 '나-意識의식(存在존재領域영역)'만이 透明투명하게 흐르는 디아나 狀態상태出現출현합니다.

3. 【最高최고秘訣비결】나-意識의식의 '이태'로 焦點초점還元환원시킨다 (識別식별과 양도)

暝想家명상가들이 가장 頻繁빈번하게 가로막히는 병목 地點지점이자 核心핵심 열쇠입니다.

  • '참나의 행세를 하는 自我자아'에 속지 않는다 : 暝想명상高度고도深化심화되어 '存在존재한다는 느낌'만이 홀로 맑게 남았을 때, 이것을 이라 看做간주하고 同一化동일화하여 자만하기 쉽지만 이것은 여전히 에고(末那識말나식)의 가장 微細미세觸受촉수입니다.
  • 焦點초점移動이동한다 : 暝想명상核心핵심殘存잔존한 나-意識의식 自體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存在존재감을 '그저 알고 비추는 自覺자각作用작용(般若반야·프라냐)'을 예리하게 看破간파하여 意識의식의 조준경을 그 너머로 깊게 還元환원시키는 일입니다.
  • 方法방법론마저 털어낸다 (전적인 양도) : 끝단에 이르러서는 평소 意志의지했던 '修行수행 테크닉'이나 '經典경전 知識지식', 나아가 '解脫해탈해야겠다'는 自發的자발적 決意결의마저 모調理조리 廢棄폐기하고 오직 밤하늘의 고요한 호수 같은 透明투명함만을 維持유지하여 기다릴 뿐입니다. 이처럼 전적인 양도(窮極궁극謙虛겸허함)를 지킬 때 비로소 참나가 主體주체恩寵은총으로 삼켜 解脫해탈(邪魔사마디)을 수립합니다.
You said

'나-意識의식'의 이면에 있는 '認識인식하는 作用작용'을 識別식별하는 秘訣비결은 무엇認可인가요?

'그저 認識인식하는 作用작용 (프라냐)' 識別식별의 4대 要諦요체

'나-意識의식(내가 實在실재하고 있다는 느낌)' 너머에 儼然엄연作用작용하는 '알아차림의 本願본원機能기능(知性지성·프라냐)'을 判別판별하여 그곳으로 합류하기 위한 秘訣비결은, '참나 행세를 하는 에고'의 欺瞞기만을 깨뜨리고, 呼吸호흡完全완전히 멎은 狀態상태의 깊은 정멸을 基盤기반으로 삼아, 結局결국 모든 人爲的인위적 制御제어를 놓아버리는 '대양도'에 있습니다. 具體的구체적인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참나 행세를 하는 自我자아'의 欺瞞기만을 알아차린다

온갖 煩惱번뇌가 사라至高지고 '存在존재한다는 맑은 독존감(나-意識의식)'만이 독보적으로 서는 狀態상태는 매우 고요하고 恍惚황홀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참나라 錯覺착각하여 닻을 내리면 안 됩니다. 이 '存在존재감'은 참나가 아니라 에고와 對象대상이 갈라知機지기 直前직전微細미세自我자아原初的원초적 씨앗임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그 恍惚황홀함에 滿足만족定着정착하지 않고 그 너머로 조준을 전진시켜야 합니다.

2. 숨결이 멎은 '感覺감각完全완전 消滅소멸'을 디딤돌로 쓴다

'認識인식하는 純粹순수 作用작용'이라는 極度극도로 은밀한 領域영역을 조망하려면身心의 物理的물리적 騷音소음全面전면 遮斷차단되어야 합니다. 呼吸호흡強制강제로 조여 멈추는 것이 아니라, 信念신념神經신경망이 깊게 쉬어 呼吸호흡自然자연 정멸하는 곳으로 印度인도합니다. 呼吸호흡의 멈춤은 身體신체刺戟자극源泉원천 斷絶단절하여 意識의식의 안테나를 내부 深淵심연으로 完璧완벽히 구부려 놓습니다.

3. 과녁을 '存在존재감'에서 '觀照관조하는 自覺자각 自體자체'로 밀어 넣는다

생각과 몸의 刺戟자극斷絶단절된 공터에서 焦點초점을 슬며시 移動이동시킵니다. "내가 存在존재한다"는 고요한 存在존재自體자체觀測관측 對象대상으로 보던 시선에서, 그 存在존재감마저 '그저 비추어 認識인식하는 作用작용自體자체(純粹순수 自覺자각·知性지성)'로 焦點초점의 눈금을 슥 밀어 놓는 것입니다. 이는 기교나 指摘지적 分析분석이 아니며, 오직 觀照관조하는 自覺자각 自體자체主體주체融合융합시켜 들어가는 細密세밀靈的영적 흐름입니다.

4. 終局종국에는 無記무기를 내려놓고 내맡긴다 (恩寵은총)

人間인간自發的자발적 동력으로 到達도달할 수 없는 最後최후臨界임계각입니다. 識別식별이 최상에 到達도달하면 修行수행했던 '暝想명상 技法기법'도, 所有소유했던 '靈的영적 敎理교리'도, '을 얻겠다'는 염원마저 모調理조리 廢棄폐기하고 宇宙우주虛空허공이 됩니다. 호隨眠수면의 물결(想念상념)을 뉘일 뿐만 아니라 물밑에 꿈틀대던 카르마의 殘骸잔해마저 完全완전 停止정지하여 그저 맑은 거울면처럼 對機대기할 뿐입니다. 이 窮極궁극의 비움과 自我자아 消滅소멸(謙虛겸허함)이 가득 찰 때 眞正진정한 참나가 主體주체를 수렴하여(恩寵은총) 純粹意識순수의식으로의 解脫해탈終結종결됩니다.

You said

暝想명상 課程과정의 가장 깊은 곳에 나타나는 '그저 認識인식하는 作用작용(프라냐)'의 메커니즘을 唯識學유식학의 '大圓鏡智대원경지'로의 轉換전환과 관련지어 더 姿勢자세히 풀어주세요.

프라냐의 發現발현大圓鏡智대원경지로의 轉換전환

暝想명상 노드맵의 절頂部정부에 피어나는 '그저 認識인식하는 作用작용(프라냐·般若반야·반조)'의 메커니즘은 自我자아微細미세한 사슬을 부수고, 혼탁한 阿賴耶識아뢰야식을 맑은 거울(大圓鏡智대원경지)로 탈바꿈시켜 最終的최종적으로 '不二一元불이일원(하나의 實在실재)'으로 함落下락하精密정밀變容변용 體系체계입니다. 이 變容변용力學역학唯識學유식학 思想사상과 다음과 같이 精巧정교하게 連動연동됩니다.

1. '참나 행세하는 自我자아 (나-意識의식)'의 識別식별離脫이탈

暝想명상이 깊어져 呼吸호흡이 그치고 感覺감각 入力입력로 수렴하면, 오직 '내가 存在존재하고 있다'는 本願본원적인 나-意識의식(存在존재空間공간)만이 남습니다. 大部分대부분修行者수행자들은 이 壓倒的압도적淸淨청정함에 속아 이를 참나로 믿고 執着집착하지만, 이 亦是역시 '나'와 '世上세상'이라는 微細미세主客주객分割분할誘導유도하는 末那識말나식의 가장 깊은 장난입니다.

여기서 核心핵심 要諦요체는 '存在존재하는 느낌'을 애호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存在존재감을 '그저 알아채고 비추는 自覺자각의 흐름(프라냐·叡智)'으로 意識의식의 안테나를 슥 還元환원시키는 것입니다. 프라냐는 어떤 自我性자아성이나 價値가치 잣대도 틈입하지 않는 가장 날것의 透明투명認識인식의 횃불입니다.

2. '호수(마음)'의 정멸 : 阿賴耶識아뢰야식(업의 貯藏庫저장고)의 消滅소멸

唯識유식 思想사상에서 阿賴耶識아뢰야식은 우리가 지은 모든 痕跡흔적과 업의 잔여물이 씨앗(種子종자) 形態형태로 수록된 無意識무의식의 물웅덩이입니다. 이 웅덩이가 출렁이고 탁한 狀態상태維持유지하는 한, 스크린에는 일러진 홀로그램이 繼續계속 나타납니다.

마음을 '호수'로 看做간주하여 이 原理원리說明설명해 드립니다. 호隨眠수면의 물결(생각)이 출렁이면 물속 깊은 곳을 비출 수 없습니다. 물결을 가라앉혔을지라도 호수 自體자체에 탁한 진흙(無意識무의식執着집착·阿賴耶識아뢰야식種子종자)이 가득하다면 빛은 貫通관통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흔히 매 瞬間순간 經驗경험하는 世上세상에 대해 '좋다·나쁘다'며 自我자아(末那識말나식)의 判斷판단을 들이댐으로써 맑은 거울면에 繼續계속해서 새로운 때(種子종자)를 各人각인시킵니다(薫習훈습의 악循環순환). 이 判斷판단 作用작용을 멈推古추고 直面직면他人타인苦樂고락 全體전체를 "내 無意識무의식이 빚어낸 一人일인極意극의 그림자일 뿐"이라 承認승인하여, 참된 感謝감사抱擁포옹으로 삼켜 참나의 深淵심연으로 回歸회귀시킬 때에만 비로소 때가 쌓이는 課程과정이 끝이 납니다. 마음의 거울에 눌어붙은 我執아집을 털어내어 호수의 물밑까지 透明투명하게 가라앉힐 때, 阿賴耶識아뢰야식萬物만물一切일체의 왜곡 없이 反射반사하는 大圓鏡智대원경지性格성격을 바꿉니다.

3. 프라냐의 마지막 境界線경계선

大圓鏡智대원경지性格성격을 바꾸어 一切일체를 있는 그대로 비추는 純粹순수 自覺자각인 프라냐理智이지만, 이 亦是역시 穩全온전意味의미終着종착지는 아닙니다. 프라냐의 狀態상태極度극도로 고운 知性지성理智이지만, 여전히 '비推古추고 비춰지는' 極微극미二元的이원적 隙間틈새(主體주체客體객체의 마지막 臨界임계선)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거울면(마음)이 온존하는 異狀이상, 거울에 담긴 太陽태양(眞我진아)과 하늘의 太陽태양을 가르는 매질의 境界경계가 완고하여 물 自體자체太陽태양이 될 수 없는 理致이치와 같습니다. 이 微細미세最後최후監獄감옥을 부수고 永遠영원한 '하나의 實在실재'로 還元환원하려면 自發的자발적 修行수행 동력 自體자체穩全온전히 내려놓는 대포기가 일어나야 합니다.

4. 대양도(恩寵은총)와 하나의 實在실재로의 回歸회귀

大圓鏡智대원경지의 적막 속에서 修行者수행자는 마지막으로 修行수행苦集고집하던 '主體的주체적 意志의지'도, 獲得획득한 '의 표식'도, '解脫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염원'마저 모調理조리 廢棄폐기하고 眞空진공(虛空허공)의 영토로 離脫이탈합니다. 호隨眠수면의 생각 물결뿐만 아니라 물밑에 서식하던 無意識무의식傾向경향성조차 永遠영원히 얼어붙어 맑은 평면으로 消滅소멸해 기다릴 뿐입니다. 이 내맡김이 차오를 때, 거울에 맺혀 있던 太陽태양(自我자아)과 하늘의 진짜 太陽태양隔離격리하던 거울면(大圓鏡智대원경지)이라는 벽이 허물語集어집니다. 이는 人間인간 에고의 힘으로 탈환하는 고지가 아니며, 있는 힘껏 自身자신을 내던졌을 때 참나가 다가와 巨頭거두어 가는 恩寵은총作用작용입니다. 그 卽時즉시 "森羅萬象삼라만상과 하나가 되려 하던 나"가 아니라 "本來본래 萬物만물과 하나인 참나만이 홀로 흐르고 있을 뿐"이라는 時空시공간을 超越초월窮極궁극邪魔사마디를 成就성취합니다.

You said

이 '大圓鏡智대원경지(巨大거대한 거울)에 이르는 課程과정'을 바탕으로, 마음속에 쌓이는 常識상식과 카르마의 먼지를 每日매일 어떻게 털어내고 意識의식을 닦아나가야 하는지, 具體的구체적인 '거울을 닦는 日常的일상적 意識의식 變形변형 워크'에 대해 더 깊이 다뤄주세요.

거울을 닦는 日常的일상적 意識의식 變形변형 워크

마음속에 每日매일 쌓이는 社會的사회적 常識상식, 카르마, 그리고 想念상념이라는 '먼지와 그늘'을 털어내어 마음을 한 점 티끌 없는 大圓대원경으로 닦아내기 危害위해 一相일상에서 즉각 實踐실천할 수 있는 '4可知가지 意識의식 變形변형 워크'를 提示제시합니다. 이는 思索사색이나 理論的이론적 工夫공부가 아니라 一相일상의 몸, 숨,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精巧정교觀察관찰反復반복 實踐실천을 통해 無意識무의식構造구조再編재편하는 作業작업입니다.

워크 1: 刺戟자극에 대한 '自動자동 反應반응 觀察관찰解釈해석轉換전환'

우리의 日常的일상적 삶은 外部외부 刺戟자극情報정보에 대해 無意識무의식적으로 리액션을 발동하고, 이를 身體신체와 내장 機能기능微細미세緊張긴장(收縮수축)으로 적립해 가는 루프입니다. 이것이 거울에 새로운 카르마의 먼지를 매 瞬間순간 누적시키는 核心핵심 原因원인입니다.

어떤 事件사건, 他人타인의 거친 언사, 衝擊的충격적消息소식 등의 刺戟자극이 나에게 인입되는 바로 그 '刹那찰나'에 내 마음이 어떻게 機械的기계적으로 리액션을 하려 드는지 매섭게 '觀察관찰'합니다. 反應반응經路경로를 타고 身體신체緊張긴장(不快불쾌한 저림이나 어깨 뭉침 등)이 뻗어나가는 것을 事前사전遮斷차단하고, 緊張긴장生起생기지 않을 다른 次元차원價値가치 解釈해석發掘발굴하여 內面내면에 주입합니다. 이 觀察관찰意識的의식적 解體해체反復반복하는 일은 無意識무의식의 낡은 回路회로를 끊어 거울에 새로운 때가 굳어지는 것을 未然미연防止방지하는 豫防예방주사입니다.

워크 2: 判斷판단 中指중지와 '통째로 삼켜 안아주는 抱擁포옹'

마주치는 一相일상人間關係인간관계나 뉴스 現象현상들을 두고 '옳다·그르다', '바람직하다·아니다'며 잣대를 가하는 作用작용全部전부 에고가 소장한 記號기호품에 弗過불과합니다. 是非시비를 논하고 더 편한 平行평행宇宙우주를 동경하는 마음의 요동이 에고에 기름진 먹이를 提供제공하여 執着집착을 배가시킵니다.

一相일상의 온갖 現象현상들에 가하는 一切일체是非시비判斷판단을 즉각 中指중지합니다. 他人타인의 아픔이나 不快불쾌狀況상황을 만났을 때, 그것을 바깥에 實存실존하는 나와 無關무관한 일로 보아 改善개선하려 들거나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責任책임 回避회피完全완전 중단합니다. "내 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에 수록되어 있던 업보(潛在잠재印象인상)만이 스크린(現実현실)에 뿜어져 나올 수 있다"는 지엄한 法則법칙信賴신뢰하여 一切일체是非시비 判斷판단廢棄폐기합니다. 그리하여 他人타인의 시련이나 世上세상의 모든 질곡을 안고 "이것은 全部전부 내가 投影투영一人일인극이다"라고 認定인정하며, 영혼 깊은 感謝감사와 깊은 으로써 마음의 참된 深遠심원(眞我진아)으로 통째로 삼켜 還元환원시킵니다. 이 無條件무조건抱擁포옹을徹底히 移行이행할 때 無意識무의식의 묵은 카르마가 淨化정화되고 거울 같은 마음의 沈默침묵이 돌아옵니다.

워크 3: 意圖的의도적인 '緊張긴장弛緩이완'의 反復반복

이미 수십 년간 無意識무의식적으로 肉體육체(특히 微細미세 筋肉근육, 關節관절, 깊은 곳 長期장기)에 응고된 感情감정執着집착의 묵은 緊張긴장들은 單純단순히 "힘을 빼자"고 意識의식하는 程度정도로는 解消해소되지 않습니다.

아사나 修行수행을 빌려 몸의 特定특정 부위 혹은 全身전신 筋肉근육限界한계까지 強制강제收縮수축시켜 極端극단적인 緊張긴장(100%의 압력)을 만듭니다. 그 收縮수축이 절정에 달했을 때, 一時일시에 끈을 끊듯 完全완전弛緩이완(릴랙스·샤바사나)을 誘導유도합니다. 이 收縮수축弛緩이완波動파동每日매일 성실히 持續지속합니다. 이 强烈강렬한 대조를 통해 나조차 認知인지하지 못했던 깊은 深淵심연의 방어 緊張긴장(먼지)이 거울면에서 박리되어 暝想명상適合적합한 몸의 정缺陷결함이 수립됩니다.

워크 4: 所知소지한 '좋은 것들의 전적인 나눔'

自我자아本能본능적으로 "내가 먼저 받고 넉넉해진 뒤에 他人타인에게 콩 한 조각이라도 나누겠다"고 計算계산하며 自身자신保護보호하려 들지만, 이 나 먼저라는 움켜쥠이야말로 主客주객監獄감옥强化강화하는 最高최고의 독소입니다.

"나에게는 아직 不足부족하다"는 自我자아幻想환상(無名무명)을 廢棄폐기합니다. 只今지금刹那찰나 나의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것(健康건강한 에너지, 아프지 않은 부위, 平和평화로운 마음 등)에 눈을 돌려 그것을 他人타인에게 穩全온전히 보낸다는 다짐을 每日매일 深化심화합니다. 움켜쥐고 있던 大切소중한 것들을 他人타인에게 퍼부어 離脫이탈시킬 때, 비로소 自我자아의 장막에 봉쇄되어 보理智이지 않던 거울 저편의 無限무한恩寵은총의 옹달샘(참나)이 용솟음치기 始作시작합니다.

이 4대 워크를 每日매일 뼈를 깎는 듯한 寄世기세一相일상徹底철저히 세공해 갈 때 거울의 먼지는 날마다 털어지며, 窮極궁극에는 觀照관조하는 自我자아의 잔영마저 지워져 森羅萬象삼라만상透明투명하게 품는 大圓鏡智대원경지(純粹意識순수의식) 그 自體자체로 귀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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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賴耶識아뢰야식大圓鏡智대원경지關係관계에 대해 더 알고 싶습니다.

阿賴耶識아뢰야식大圓鏡智대원경지關係관계

阿賴耶識아뢰야식(제8식)과 大圓鏡智대원경지關係관계는, 우리의 마음이 '카르마의 씨앗이 요동치는 탁한 空間공간'에서 '森羅萬象삼라만상一切일체의 왜곡 없이 穩全온전히 비추는 透明투명한 거울(프라냐)'로 거듭나는 転依전의(轉依)의 力學역학 關係관계說明설명해 줍니다. 이 둘의 變容변용 力學역학과 참다운 邪魔사마디에 이르는 길은 다음의 順序순서精密정밀하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1. 阿賴耶識아뢰야식 (通常통상의 마음) : 탁한 호수와 '一人일인극'의 投影투영

佛敎불교糾明규명阿賴耶識아뢰야식이란 無意識무의식 깊은 물밑에 쌓인 '潛在잠재印象인상(사ンス카라·카르마의 씨앗)'이 가득 찬 貯藏庫저장고입니다.

마음을 '호수'로 代入대입하면, 隨眠수면에 일렁이는 想念상념(생각)뿐만 아니라 호수 밑바닥에서 無數무수한 업의 씨앗들이 요동치며 혼탁함을 퍼트리고 있는 狀態상태通常통상阿賴耶識아뢰야식의 모습입니다.

阿賴耶識아뢰야식蓄積축적된 '執着집착(種子종자)'들이 우리의 '意識의식의 빛'에 祖師조사되어 매 瞬間순간 홀로그램처럼 스크린에 映寫영사됩니다. 우리는 이 刹那찰나停止정지화면이 超高速초고속 點滅점멸하는 現象현상을 두고 '時空시공看過간과 他人타인實在실재하는 바깥 世上세상'이라 確信확신하지만, 事實사실阿賴耶識아뢰야식이 끊임없이 방영하고 있는 '一人일인극(플립북)'의 상(像)일 뿐입니다.

2. 大圓鏡智대원경지로의 轉換전환 : 判斷판단 中指중지와 '삼켜 품어주는 抱擁포옹'

阿賴耶識아뢰야식이라는 흐린 호수를 티끌 하나 없는 은색 거울(大圓鏡智대원경지)로 개조하는 열쇠는 스크린에 비친 그림자를 향해 리액션(判斷판단)을 가하는 악循環순환閉鎖폐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普通보통 現象현상을 향해 是非시비調律조율하고, 더 便安편안平行평행宇宙우주想像상상하며 달아나려 애쓰지만, 이는 에고(末那識말나식)의 '責任책임 回避회피'일 뿐이며 阿賴耶識아뢰야식繼續계속해서 새로운 때(업)를 묻히는 薫習훈습 行爲행위입니다.

마주한 悲慘비참한 뉴스나 葛藤갈등 狀況상황을 두고 "이는 바깥의 實在실재가 아니라 내 無意識무의식(阿賴耶識아뢰야식)의 업보가 뿜어낸 殘像잔상"이라 明白명백認定인정하여, 영혼 깊은 感謝감사와 함께 內面내면根源근원으로 통째로 삼켜 受容수용합니다.

判斷판단이 멎는 卽時즉시 거울면에 때를 더하는 薫習훈습 作用작용完全완전 遮斷차단됩니다. 물밑을 뒤흔들던 過去과거의 낡은 상흔(種子종자)들도 消滅소멸하여 호수는 極端극단적으로 맑我執아집니다. 이때 阿賴耶識아뢰야식萬物만물을 왜곡 없이 透明투명하게 밝히는 거울인 '大圓鏡智대원경지', 곧 에고의 主客주객 장벽을 넘어선 '그저 認識인식하는 作用작용(프라냐·自覺자각)'으로 變形변형完遂완수합니다.

3. 大圓鏡智대원경지(프라냐)조차 超越초월한 '하나의 實在실재(眞我진아)'로의 함락

그러나 一切일체를 가감 없이 비추는 맑은 거울인 '大圓鏡智대원경지'에 머무를지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거울'이라는 은밀한 境界경계와 '비추어 알아채고 있는 한 地點지점'이라는 極微극미主客주객分離분리가 숨어 있습니다. 거울면(마음)이 存在존재하는 異狀이상, 거울에 담긴 太陽태양(眞我진아)과 하늘의 진짜 太陽태양을 매개하는 물(거울)의 장벽이 공고하여 물 自體자체太陽태양으로 화할 수 없는 理致이치와 같습니다.

最終최종 臨界임계각을 넘어 完全완전一切일체還元환원하기 危害위해, 暝想명상자는 修行수행해 온 暝想명상 方法방법도, 지니고 있는 靈的영적 公式공식도, '解脫해탈成就성취하겠다'는 自發的자발적 決意결의조차 虛空허공 속으로 던져 버립니다.

이 대양도(謙虛겸허함)가 호수에 채워질 때, 비추는 매질이었던 거울면(大圓鏡智대원경지) 自體자체痕跡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그 刹那찰나 우리는 "森羅萬象삼라만상과 하나가 되려 하던 나"라는 微細미세한 에고의 錯覺착각에서 깨어나, 本來본래부터 存在존재하고 있던 '森羅萬象삼라만상과 하나인 참나(하나의 實在실재·眞我진아·太陽태양)만이 홀로 흐르고 있을 뿐'이라는 絶對절대三昧삼매(邪魔사마디)로 恩寵은총에 의해 穩全온전巨頭거두어져 永久영구 정박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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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Verbatim Transcript (녹취록)

오리지널 講義강의 映像영상 "ZeroNews '나'와 '世界세계'는 當身당신 혼자만의 꿈演劇연극, 平行평행宇宙우주설의 陷穽함정에서 0으로"의 忠實충실한 노컷 녹취록 텍스트입니다. 가독성을 危害위해 중간 제목을 追加추가하여 整理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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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行평행宇宙우주라는 槪念개념과 그 源泉원천

그러면 虛空허공의 문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러면 虛空허공의 문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虛空허공의 문으로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입니다.
安寧안녕하십니까. 이번에는 選擇선택에 의한 世界세계 혹은 次元차원可能性가능성, 그리고 平行평행宇宙우주에 대해서도 조금 言及언급하며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于先우선 平行평행宇宙우주라는 이 空想공상槪念개념에 대해 一般的일반적으로 어떤 意味의미, 世界觀세계관으로 쓰이고 있는지 簡單간단히 짚어報告보고자 합니다만, 只今지금 經驗경험하고 있는 이 世界세계, 宇宙우주 以外이외에 다른 世界세계 혹은 宇宙우주同時동시平行평행하게 存在존재한다는 可能性가능성 혹은 가설, 혹은 設定설정입니다. 또한 이처럼 믿는 것, 一種일종信仰신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이는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만화, SF나 판타지 같은 作品작품들의 世界觀세계관 基礎기초가 되거나, 혹은 그 作品작품一部일부로 차용되거나 組合조합되어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科學과학 分野분야, 특히 論理的논리적 物理學물리학이나 量子力學양자역학 같은 곳에서 世界세계宇宙우주解釈해석할 때, 가설이나 이 平行평행宇宙우주에 관한 論議논의가 있기도 합니다. 나아가 스피리추얼이나 精神정신世界세계 같은 장르에서 여러 作家작가多樣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분들이 이 平行평행宇宙우주라는 槪念개념使用사용하거나 結合결합自身자신들의 설, 世界觀세계관表現표현하고 傳達전달함으로써 나름대로 널리 알려지게 된 模樣모양입니다. 애초에 이 平行평행宇宙우주라는 槪念개념最近최근에 갑自己자기 始作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存在존재했던 科學과학자들의 가설이나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의 影響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存在존재했던 그 가설이나 論文논문, 作品작품들 또한 그 移轉이전存在존재했던 것들로부터 影響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도대체 무엇이 그 源泉원천이었는가 하면, 印度인도 古代고대天啓천계經典경전인 베다를 비롯한 여러 經典경전들, 그리고 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聖者성자들의 가르침입니다. 이것들을 듣거나 읽은 科學과학자나 作家작가들, 그리고 이러한 分野분야關心관심을 가진 이들이 그 가르침을 充分충분理解이해하지 못하고 불充分충분理解이해에 머무른 狀態상태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다만 그 가르침에 靈感영감을 받고 인스퍼레이션을 얻어, 科學과학자라면 自身자신理論이론展開전개하는 아이디어의 바탕으로 삼고, 作家작가라면 作品작품 구상의 아이디어로 活用활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거기서 이미 眞理진리와 어긋나게 된 셈理智이지요. 只今지금 우리가 그러한 槪念개념들을 접할 때, 元來원래 그것이 도대체 어떤 것이었는지, 무엇을 傳達전달하고자 했는지 그 圓形원형까지 파고들 必要필요가 있습니다.

世界세계實相실상創造창조, 그리고 '時間시간'의 政體정체

이는 世界세계實相실상創造창조에 관한 元來원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ZeroNews의 다른 映像영상을 통해 이미 整理정리하여 방송하고 전해 드린 바 있습니다만, 世界세계가 한瞬間순간에 만들어至高지고 다음 瞬間순간全部전부 사라지며, 다시 다음 瞬間순간全部전부 創造창조되는 一連일련課程과정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으며, 게다가 그것을 自己자기 안의 無意識무의식 領域영역에서 행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말씀드린 記憶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簡單간단히 짚어報告보고자 합니다. 一般的일반적으로 우리가 意識의식할 수 있는 部分부분은 지극히 적으며, 아주 一部일부弗過불과하다는 事實사실記憶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意識의식하지 못한 部分부분에서는 도대체 무슨 一理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意識의식의 빛을 表面표면 부위에만 바라보는 것은 無名무명(無明) 狀態상태, 즉 一般的일반적狀態상태입니다만, 그 意識의식의 빛을 넓히고 깊게 하기 위한 修行수행을 쌓아감으로써 보다 깊은 意識의식 次元차원에서 어떤 一理일이 펼쳐至高지고 있는지 보이기 始作시작합니다. 우리의 無意識무의식 깊은 곳에는 엄청나게 뿌리 깊은 執着집착들이 無數무수潛在잠재되어 있습니다. 이 潛在잠재된 것들에 의해 문득 떠오르는 것이 바로 '印象인상'입니다. 이는 停止정지화면(스틸 이未知미지)의 形態형태로 솟아오릅니다. 달리 表現표현何者하자면, 自身자신無意識무의식 次元차원에서 그 印象인상停止정지화면으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할 修道수도 있습니다. 意識의식의 빛을 表面표면 부위에만 비추며 그것만이 存在존재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狀態상태에서는 얼핏 不可能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自身자신無意識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實際실제로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즉, 이 世界세계의 모든 것, 宇宙우주의 끝에 이르기까지 온갖 存在존재와 색상, 配置배치, 그리고 그 性質성질 등 모든 것을 設定설정하고 있는 것은 無意識무의식執着집착이며, 印象인상으로서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執着집착을 바탕으로 문득 떠오르는 印象인상, 스스로 만들어내는 停止정지화면의 世界세계인 셈이죠. 다만 이는 印象인상弗過불과한 것이기에 다음 瞬間순간에는 全部전부 痕跡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물거품 같고 꿈과 같은 것입니다. 빛의 點滅점멸을 떠올려 布施보시理解이해하기 쉽습니다. 번쩍 켜졌다가 다음 瞬間순간全部전부 꺼져 버리는 식입니다. 그런데 그 印象인상에 대한 執着집착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다음 瞬間순간에 또다시 번쩍 떠오르게 됩니다. 강하게 各人각인印象인상은 사라지더라도 反復반복해서 다시 솟아오릅니다. 다만 方今방금 사라진 印象인상과는 아주 微細미세하게 다른 要素요소가 더해지거나 빠져서, 약간 다른 停止정지화면으로서 다음 瞬間순간에 나타납니다. 다른 말로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理智이지요. 비록 그렇게 만들어진 印象인상意識의식 次元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추악한 것, 혹은 悲慘비참事件사건一地일지라도 無意識무의식領域영역에서 그것을 원했거나 무언가를 傳達전달하려 했기에 그처럼 스스로 創造창조하고, 이를 끝없이 되풀理解이해 온 것입니다. 表面的표면적인 부위로만 보면 마치 플립북(파라파라 만화)처럼, 애니메이션처럼 동映像영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한 變化변화와 움직임을 通常통상 '時間시간'이라는 槪念개념으로 믿고 살아可知가지만, 實際실제로는 時間시간空間공간을 가진 世界세계客觀的객관적으로 存在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無意識무의식 속에 있는 執着집착에 따른 印象인상 停止정지화면의 連續연속弗過불과합니다. 이것이 바로 世界세계 創造창조實相실상입니다. 이는 널리 알려진 事例사례舊約구약聖經성경創世記창세기(天地創造천지창조)에서도 象徵상징적으로 描寫묘사되어 있으며, 釋迦석가모니 亦是역시 다른 表現표현으로 이 眞理진리를 설했습니다. 여러 聖者성자들과 古代고대多樣다양經典경전들이 서로 表現표현은 다를지라도, 이 世界세계實相실상眞理진리冒頭모두 '내적인 것'이라는 점에서는 完璧완벽一致일치합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 보겠습니다. 이 모든 宇宙우주世界세계는 매 瞬間순간, 刹那찰나마다 消滅소멸하고 있으므로 實際실제로는 '그 瞬間순간'밖에 存在존재하지 않습니다. 只今지금 이야幾何기하는 모든 次元차원包含포함해 모든 世界세계宇宙우주가 그러합니다.

自身자신創造창조世界세계를 통째로 삼켜 안아주기 (救濟구제)

어쨌든 무언가 認知인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全部전부瞬間순간에만 있는 것입니다. 오직 그 瞬間순간에만 存在존재합니다. 認知인지할 수 있다는 것, 즉 어떤 次元차원의 몸을 통해서든 어떤 道具도구를 통해서든 무언가 認知인지하고 있다면, 그 世界세계는 매 瞬間순간瞬間순간에만 存在존재합니다. 그 瞬間순간 以外이외世界세계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自身자신 안에서 印象인상으로서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스스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그 瞬間순간에 태어난 것조차 實際실제로는 印象인상弗過불과한 것이기에 實際실제로는 없다고 할 修道수도 있습니다. 앞도 뒤도 옆도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過去과거未來미래도, 平行평행하여 存在존재하는 世界세계도 없다는 뜻입니다. 굳이 表面표면 부위에만 意識의식焦點초점을 맞推古추고 있는 狀態상태에서 바라보아 굳이 말何者하자면, 過去과거未來미래平行평행 世界세계가 만약 存在존재한다면 그것은 오직 머릿속에만 存在존재할 뿐입니다. 實際실제로는 存在존재하지 않는다는 事實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釋迦석가모니도 같은 趣旨취지의 말을 했을 것입니다. 이 世界세계創造창조하는 創造神창조신으로서 經典경전들에 象徵상징적으로 描寫묘사된 것을 自己자기 自身자신無意識무의식 次元차원에서 행하고 있다는 이 眞理진리,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意識의식表面的표면적部分부분만 바라보며 그것만을 믿는 習慣습관에 길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執着집착은 너무나 뿌리가 깊어서, 비록 意識의식 次元차원에서 이 眞理진리를 듣고 '아, 그럴指導지도 모르겠네' 하고 首肯수긍하거나 믿을 수 있을지언정, 潛在意識잠재의식無意識무의식包含포함全人格的전인격적次元차원에서 이를 完全완전受容수용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受容수용의 어려움에 대해, 요기이기도 했던 예수의 가르침 중에 다음과 같은 句節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平和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라는 句節구절입니다. 飜譯번역에 따라 表現표현差異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趣旨취지로 전해至高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靈的영적으로 여러 解釈해석可能가능하겠지만, 여기서 引用인용何者하자면 다음과 같은 意味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意識의식의 빛을 表面표면 부위에만 비추며 그것을 믿고 살아가는 一般的일반적狀態상태의 사람들이 취하는 行動행동이나 말에 同調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眞理진리의 날카로운 검으로 그러한 것들을 베어내어 끊어버리기 危害위해 只今지금 여기에 存在존재한다는 뜻으로 理解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譬喩비유를 들어 이 眞理진리를 조금 더 理解이해하기 쉽게 說明설명해 보겠습니다. 가령 제가 저 먼 나라의 전혀 모르는 사람,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느 地域지역에 살고 있다고 해봅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큰 어려움, 즉 '悲慘비참狀況상황'에 처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을 제가 媒體매체를 통해 보거나 듣게 되었다면, 그것은 바로 제가 創造창조해 낸 一理일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제 責任책임이라는 말입니다. 꼭 '責任책임'이라는 單語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어쨌든 제가 만들었기에 그러한 地域지역存在존재하고, 그러한 사람이 있으며, 그러한 事件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情報정보傳達전달하는 手段수단 또한 스스로 만들어 낸 것에 弗過불과하지만, 어쨌든 그 情報정보를 제가 受容수용하게 되는 것理智이지요. 이러한 맥락을 짚어보면 발밑이 쑥 꺼지는 듯한 衝擊충격을 받으실 修道수도 있겠지만, 一旦일단 便安편안하게 들어布施보시기 바랍니다. 只今지금 自身자신報告보고 있는 世界세계와 다른 것을 渴望갈망하며 그쪽으로 도망치려 하는 것은 責任책임 回避회피라 할 수 있으며, 自身자신이 이 世界세계創造창조하고 있다는 眞理진리로부터 눈을 돌리는 行爲행위이자 報告보고도 못 본 척하는 방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自我자아價値가치 判斷판단平行평행宇宙우주陷穽함정

'내가 어떤 選擇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랬을 텐데'라든지, 自身자신에게 혹은 世界세계에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쪽으로—이 '바람직함' 亦是역시 自我자아의 잣대로 判斷판단한 것에 弗過불과하지만—어쨌든 自身자신世界세계에 더 좋다고 여겨지는 方向방향으로 옮겨가고 싶어 하는 열망과 그를 危害위해 에너지를 쏟는 마음의 이면에는 結局결국 '自我자아(에고)의 執着집착'이 道士도사리고 있습니다. 自我자아에 갇혀 있는 것理智이지요. 흔히 精神정신世界세계靈的영적인 가르침을 설하는 課程과정에서 平行평행宇宙우주次元차원移動이동 같은 槪念개념導入도입해 사람들을 이끌거나, 기묘한 이야기들을 지어내고 修行法수행법이나 워크숍을 가르치기도 합니다만, 그 속에서 누락된 致命的치명적인 맹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러한 흐름에서는 于先우선 自身자신直面직면世界세계事件사건觀察관찰하고는 그에 대해 價値가치 判斷판단을 내립니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 '이것은 肯定的긍정적이고 저것은 否定的부정적이다', '이것은 가볍고 저것은 무겁다', '이것은 내려놓는 편이 낫다' 등 온갖 시是非시비비를 가리고 判斷판단을 내리며, 陰謀음모론이나 世上세상背後배후에 숨겨진 眞實진실 따위를 쫓는 등 世上세상人間關係인간관계森羅萬象삼라만상判斷판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自身자신이 더 便安편안해지거나 本人본인 基準기준에서 世界세계에 더 이롭다고 믿는 最適최적狀態상태想像상상하고 設定설정합니다. 그리고 그 本人본인에게 형편이 좋은 狀態상태로 나아가기 危害위해, 혹은 그에 周波數주파수波動파동을 맞추기 危害위해 무언가 行動행동을 취합니다. 그러나 眞正진정으로 虛空허공의 문으로 향하고자 하는 이들이—實際실제 虛空허공은 오직 內面내면에만 存在존재합니다만—결코 看過간과해서는 안 될 엄중한 事實사실이 있습니다. 굳이 되풀이할 必要필요는 없겠지만 다시 한번 想起상기해 봅시다. 그 對象대상이 되는 人間關係인간관계, 世界세계, 宇宙우주의 여러 現象현상들에 대해 '바람직하다', '더 낫다', '안 좋다', '나쁘다', '내려놓아야 한다', '가볍다', '편하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하며 是非시비를 가리고 選擇선택하며 渴望갈망하고 있는 '그 나'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이 根源的근원적인 물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나'를 알아차리고 質問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 '나'는 참된 내가 아니라 自我자아弗過불과하며, 是非시비를 가리고 選擇선택하며 바라는 主體주체 亦是역시 結局결국 自我자아(에고)입니다. 들으시는 분에 따라 信念신념이나 理解이해하기 쉬운 觀點관점이 다를 것이기에 여러 表現표현을 섞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側面측면에서도 說明설명할 수 있습니다. 世界세계에 대해 그러한 是非시비判斷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結局결국 신에게, 혹은 참나(眞我)에게 불평을 터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더 직설적으로 表現표현何者하자自身자신創造창조해 낸 世界세계事件사건에 대해 스스로 不滿불만을 제幾何기하는 꼴입니다. 世上세상의 모든 事物사물, 사람, 事件사건, 흐름 自體자체에는 本來본래 좋고 나쁨도, 아름답고 추함도, 悲慘비참함도 存在존재하지 않습니다. 現象현상 自體자체次元차원, 宇宙우주 自體자체에 어떤 價値가치 척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自我자아가 제멋대로 判斷판단을 내려 그렇게 바라報告보고 있을 뿐이며, 自身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도망치려 渴望갈망하는 行爲행위結局결국 自我자아執着집착을 더 견고히 하여 自我자아에게 먹이를 주는 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靈的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이 가장 注意주의해야 할 大目대목입니다. 自身자신에게 바람직하다고 判斷판단하여 그곳으로 옮겨가려 하는 마음의 움직임과 行動행동自我자아에 대한 執着집착基盤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自我자아自身자신이라 錯覺착각하고 행하는 모든 修行수행이나 워크숍은 그것이 설령 어떤 대단한 形態형태를 지녔을지라도 結局결국 自我자아의 먹이로 轉落전락하고 맙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찌 眞正진정自我性자아성찰의 態度태도라 할 수 있겠습니까?

참나에 대해, 혹은 신에 대해 그런 불평을 던지는 것이 靈的영적次元차원에서 眞情性진정성 있는 態度태도라 할 수 있겠습니까? 信仰心신앙심은 어디로 가버린 것입니까? 眞正진정淨化정화와 치유, 참된 平和평화, 그리고 참나에 머무는 삶을 온 마음으로 眞知진지하게 追求추구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치유와 幸福행복, 靈的영적 解脫해탈을 '바라지 않는 態度태도'가 核心핵심이 됩니다. 즉, 解脫해탈하고자 하는 조급한 열망을 내려놓는 一理일이 깊은 次元차원에서 必要필요합니다. 解脫해탈解脫해탈되기를 渴望갈망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實現실현되는 것입니다. 解脫해탈하지 못한 나라는 에고의 固着고착을 먼저 깨뜨려야 합니다.

自身자신創造창조世界세계를 통째로 삼켜 안아주기 (救濟구제)

自業自得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亦是역시 本來본래 靈的영적意味의미를 품고 있었던 낱말입니다만, 自身자신無意識무의식 次元차원에서 떠올려 만든 것은 어차피 自身자신뿐이기에 스스로 巨頭거두어들인다는 뜻입니다. 오직 그 일만이 매 瞬間순간 일어나고 있을 뿐입니다. 自身자신執着집착, 無意識무의식 깊은 곳에 깊이 박힌 傾向경향성, 즉 自身자신 全體전체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매 瞬間순간 無意識무의식적으로 지어내어 經驗경험하는 이 世界세계 全體전체에 고스란히 投影투영되어 나타납니다. 自身자신執着집착이 지어낸 상(像)에 弗過불과합니다. 自身자신이 만든 상(像) 以外이외世界세계란 결코 存在존재하지 않습니다. 自身자신創造창조한 것 以外이외에는 아무것도 存在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 明確명확하게 말씀드립니다. 다른 世界세계나 다른 次元차원, 다른 可能性가능성 같은 空想공상을 쫓을 것이 아니라, 只今지금瞬間순간 마주한 그 世界세계를 어떻게 바라報告보고 受容수용하며, 그로부터 무엇을 發見발견하고 깨달을 것認可인가意識의식焦點초점을 맞추는 편이 훨씬 重要중요本質본질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虛空허공의 문 周邊주변에 모이신 분들께 確認확인 삼아 전해 드려야 할 더 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世界세계를 그 自體자체實在실재한다고 믿고 바라보는 것 自體자체가 이미 '無名무명(無明)'이라는 錯覺착각 위에 세워진 現象현상입니다. 潛在意識잠재의식無意識무의식 속에 있는 수많은 執着집착보다 더 原初的원초적根源的근원적 誤解오해는 바로 이 無名무명이며, '自我자아自身자신이라 誤解오해하는 것'에서 始作시작됩니다. 이 分離분리自我자아가 홀로 存在존재한다고 錯覺착각함으로써 自己자기 以外이외의 다른 事物사물, 世界세계, 宇宙우주가 바깥에 實在실재한다는 잘못된 認識인식이 싹트게 됩니다. 自我자아와 혼연切가 되어 버렸기에 自己자기 以外이외他人타인, 事物사물, 宇宙우주 등이 別個별개로 펼쳐져 있다고 確信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原初的원초적 無名무명입니다. 바깥의 現象현상에 옳고 그름을 논하거나 또 다른 平行평행 世界세계渴望갈망하며 아까운 에너지를 浪費낭비할 것이 아니라, 오직 이 根源的근원적인 물음으로 回歸회귀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다 冷徹냉철하게 짚어보자면, '내가 只今지금까지 選擇선택해 왔고, 只今지금選擇선택하고 있으며, 選擇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 亦是역시 自我자아傲慢오만이자 錯覺착각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想念상념, 選擇선택, 行動행동은 애초에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그것을 하고 있으며 그 主體주체는 누求人구인가 하면, 바로 自我자아(에고)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次元차원世界세계이든 選擇선택을 가하는 主體주체는 결코 참나가 아닙니다. 自我자아에 대한 執着집착이 너무나도 뿌리 깊기 때문에 '自身자신의 생각과 行爲행위本人본인이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 眞理진리全人格的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앞서 말씀드린 世界세계 創造창조眞理진리를 믿는 것보다 훨씬 험난한 課程과정일 것입니다. 自我자아의 족쇄가 너무나 强力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自身자신이라 믿는 그 '나'는 實相실상 想念상념의 파편들이 뭉쳐진 假想가상執着집착물에 지나지 않음에도 그곳에 꽁꽁 묶여 있기에, 바깥에 對象化대상화世界세계가 따로 存在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時間시간空間공간錯覺착각 속을 헤매는 것입니다. 意識의식의 빛을 表面표면 부위에만 비출 수밖에 없어 그 좁은 監獄감옥에 갇혀 있을 때는 當然당연히 바깥 世界세계獨立독립하여 흘러가며 時間시간空間공간變化변화一喜一憂일희일비하고, 本人본인에게 더 安樂안락世上세상을 동경하며 헛된 에너지를 허비하는 것도 無理무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法問법문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이 眞正진정淨化정화平和평화, 고요, 神醫신의 나라로의 回歸회귀, 解脫해탈, 참나에 머무는 삶을 온 마음으로 眞知진지하게 追求추구한다면, 그리고 '나'와 '他人타인·世界세계'가 分離분리되어 있다는 그 錯覺착각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면, 그 自我자아로서 經驗경험하는 自身자신世界세계 全體전체를 '통째로 삼켜 안아主語주어야(受容수용해야)' 합니다. 이는 모든 存在존재元來원래源泉원천(眞我진아)으로 돌려놓는 일입니다. 온 世上세상은 여러분이 지어낸 상(像)이기에, 그것들을 眞正진정으로 치유하고 解放해방시키며 救濟구제할 수 있는 救援구원자는 오직 스스로뿐입니다. 여러분이 創造창조世界세계는 오직 여러분 自身자신만이 救援구원할 수 있습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가슴속 깊이 各人각인해야 할 眞實진실은, 이 스크린 위에 存在존재하는 唯一유일九歲구세주이자 彌勒菩薩미륵보살은 바로 當身당신이라는 事實사실입니다. 오직 當身당신뿐입니다.

積極的적극적인 체념과 感謝감사, 그리고 하나의 實在실재

만약 매 瞬間순간 끊임없이 새롭게 마주하는 只今지금世界세계自身자신에 대해 무언가 不滿불만을 토로하고, 感謝감사함으로 受容수용하지 못한다면, 설령 本人본인이 머릿속으로 渴望갈망하던 完璧완벽世上세상을 손에 넣는다 할지라도 또다시 그 속에서 不滿불만을 찾아내는 習慣습관反復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보다 窮極的궁극적眞理진리依據의거해 말씀드리자면, 世界세계自身자신觀照관조하는 나, 그에 대해 是非시비를 가리는 나, 選擇선택을 가하는 나, 무언가를 내려놓으려는 나, 내려놓은 뒤의 나 등은 冒頭모두 自我자아幻想환상일 뿐 결코 참나가 아닙니다. 따라서 스스로 참나에 到達도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自我자아의 쳇바퀴만을 굴리게 됩니다. 어떤 對象대상凝視응시하는 나, 다른 平行평행 世界세계를 넘보는 나, 修行수행 전후의 나, 내려놓기 전후의 나는 全部전부 에고이며 本來본래自我자아가 아닙니다. 現象현상이 설령 어떻게 변할지라도, 그것에 滿足만족하든 不滿불만족하든 참다운 平和평화(虛空허공의 문)에는 단 한 걸음도 가까워지지 못합니다. 人間인간이 도대체 어디까지 겸손해져야 하는가, 그 眞正진정한 겸손의 意味의미를 오늘날 온갖 넘쳐나는 情報정보 속에서 다시 한번 깊이 熟考숙고해야 할 때입니다. 흔히 기도 文句문구로 쓰이는 '뜻대로 하소서'나 '아멘' 같은 告白고백들의 깊이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심오합니다. 뿌리 깊은 업과 執着집착, 無名무명이 쉼 없이 回轉회전시키는 이 세파 속에서 中心중심을 잡고 참나와 하나 되어 머무르기 危害위해서는 형언할 수 없는 겸손함(내려놓음)이 要求요구됩니다. 宇宙우주 森羅萬象삼라만상과 굳이 하나가 되려고 애쓰는 '나'가 必要필요한 것이 아니라, 本來본래부터 森羅萬象삼라만상과 하나인 '나'가 이미 存在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직 그 本來본래의 나만이 存在존재합니다. 그러므로 分離분리自我자아로서는 그저 가슴 깊은 感謝감사함으로 現象현상을 받아들이는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 전적인 受容수용과 내맡김 속에 眞正진정淨化정화와 치유, 平和평화, 그리고 神醫신의 나라가 存在존재합니다. 부디 이 原理원리를 모든 修行수행과 믿음의 確固확고한 초석으로 삼아 나아가時期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虛空허공의 문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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