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映像영상은 日本語일본어 音聲음성으로 提供제공됩니다.

이 채널의 主人주인인 '제로' 씨의 발자취는 어떠한가요?

提供제공된 녹취록을 통해 채널 主人주인인 '제로' 씨의 발자취와 經歷경력에 대해 다음과 같은 軌跡궤적을 確認확인할 수 있습니다.
幼年期유년기~學生학생 時節시절 초등學生학생 時節시절부터 농담을 건네며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했지만, 어느 時期시기부터 마음을 닫고 그러한 行動행동을 하지 않게 된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中學중학교 時節시절에는 귀가부와 같은 生活생활을 보냈고, 고등學校학교에서는 學年학년에서 단 한 명뿐인 陸上部육상부에 所屬소속되어 있었습니다. 工夫공부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大學대학 時節시절에는 音樂음악 동아리에 들어가 音樂음악을 始作시작했으며, 러시아어, 印度인도네시아어, 韓國語한국어, 中國語중국어 등의 外國語외국어를 獨學독학으로 工夫공부하는 등 새로운 經驗경험을 즐겼습니다. 또한 그림을 그리는 것에 沒頭몰두하던 時期시기를 거쳐, 비틀즈나 밥 딜런 등에게 影響영향을 받아 音樂음악(自作자작곡이나 커버곡 錄音녹음 등)을 自己探求자기탐구의 道具도구로 삼아 다루기 始作시작했습니다.
敎育교육 關係관계 一過일과 요가와의 만남 社會사회에 나와서는 日本일본의 學校학교에서 가르치는 등 敎育교육에 종사하던 時期시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外國외국에서 生活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에 日本語일본어 강사 자격증을 取得취득하고 自願奉仕자원봉사로 가르친 적도 있었으나, 當時당시에는 좀처럼 첫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오랫동안 皮膚피부병(트러블문제)으로 苦痛고통받으며 食事療法식사요법 등을 自身자신의 몸으로 試行錯誤시행착오하기 始作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요가를 우습게 여겼으나, 實際실제로 始作시작해 보니 마음의 變化변화를 느꼈고, 漸次점차 하루에 7~8時間시간씩 쉬지 않고 行法행법(肉體육체행과 呼吸法호흡법)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이 時期시기에는 술과 肉食육식을 完全완전히 끊는 등 嚴格엄격한 生活생활을 보냈다고 합니다.
南印度남인도에서의 修行수행 요가를 깊이 파고들면서 "印度인도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決心결심하고, 觀光地化관광지화된 북印度인도가 아니라 南印度남인도의 아쉬람(修行道場수행도장)으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서 過酷가혹하면서도 自然자연에 둘러싸인 規則규칙적인 遂行수행 生活생활을 보내며 아유르베다에 基礎기초한 食事식사를 經驗경험했습니다. 印度인도에서의 環境환경 變化변화와 習慣습관 差異차이에 順應순응하는 課程과정에서, 萬物만물에 대해 흐름에 맡기는 듯한 너그러운 精神정신 狀態상태를 얻어 갔습니다.
離脫이탈리아에서의 生活생활과 料理요리의 길로 그 후 離脫이탈리아(로마 등)로 移住이주하여 數年수년간 生活생활했습니다. 그곳에서 料理요리 工夫공부를 始作시작해 職業직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印度인도에서 기른, 心理的정신적으로 고양되었다고 錯覺착각했던 狀態상태에서 벽에 부딪혔고, 心身심신의 均衡균형을 잡는 일의 重要性중요성을 痛感통감했다고 말합니다.
독일로의 移住이주와 現在현재 2020년경 팬데믹(COVID-19)의 影響영향으로 離脫이탈리아에서의 일自利자리가 維持유지되기 어려워지자, 當時당시 相對的상대적으로 狀況상황이 나았고 求人구인 수요가 있었던 독일로 移住이주했습니다. 現在현재도 독일의 다른 도시에서 居住거주하며 現地현지 레스토랑에서 초밥과 日本일본 料理요리의 퓨전 메뉴를 擔當담당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休日휴일은 거의 없으며, 社長사장의 家族가족이나 同僚동료들과 셰어하우스에서 生活생활하면서 일하는 틈틈이, 그리고 隨眠수면 時間시간을 쪼개어 映像영상 制作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YouTube 活動활동의 歷史역사 YouTube는 요가를 始作시작하기 전, 아직 사이트 規模규모가 작았던 時節시절부터 利用이용하고 있었습니다. 當時당시에는 팝송 커버 映像영상 등을 1,000곡 異狀이상 揭示게시했었으나, YouTube 收益수익화가 始作시작되고 規定규정이 嚴格엄격해지면서 채널이 한번 削除삭제된 經驗경험이 있습니다. 그 후 現在현재의 채널을 개설하여 聖典성전이나 靈的영적인 書籍서적의 朗讀낭독, 自身자신의 經驗경험과 知識지식에 基盤기반한 見解견해를 共有공유하는 活動활동을 持續지속하고 있습니다.

印度인도의 遂行수행 時節시절에 대해 姿勢자세히 알려주세요.

제로 씨는 요가 遂行수행을 깊이 다져가는 課程과정에서 "聖殿성전이나 聖者성자들이 태어난 땅의 바람을 맞으며 食事식사와 生活생활을 體驗체험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印度인도로 건너갔습니다. 當時당시 印度인도 遂行수행 時節시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詳細상세한 內容내용이 言及언급되어 있습니다.
1. 遂行수행 場所장소(南印度남인도의 아쉬람) 스피리추얼 붐으로 觀光地化관광지화와 商業化상업화가 進行진행된 북印度인도의 요가 施設시설이 아니라, **本來본래의 靈的영적인 習慣습관이 짙게 남아 있는 南印度남인도 깊은 곳의 아쉬람(修行道場수행도장)**을 選擇선택했습니다.
2. 過酷가혹하고 規則규칙적인 遂行수행 一定일정 每日매일의 一定일정은 매우 嚴格엄격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瞑想명상, 淨化法정화법, 수 時間시간 동안의 아사나(姿勢자세), 聖殿성전 工夫공부, 다시 아사나, 呼吸法호흡법, 바잔(찬가) 등의 박티(獻身헌신의 遂行수행)를 행하고 잠自利자리에 드는" 프로그램을 하루도 빠짐없이 反復반복하는** 生活생활을 보냈습니다.
3. 自然자연과 一致일치된 生活環境생활환경 日本일본의 청결하고 管理관리된 環境환경과는 크게 달라, **방에는 벌레, 뱀, 지네, 벌, 개미 등이 예사로 綺語기어드는 環境환경**이었습니다. 또한 맨발로 지내기 때문에 발바닥은 늘 새까멓게 변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自然자연스러워 氣分기분이 좋았다고 회상합니다.
4. 아유르베다에 基礎기초한 食事식사 아쉬람에서의 食事식사는 제로 씨가 **"人生인생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았다"며 感動감동할 程度정도로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 鹽分염분이 극히 적고 양파, 마늘, 고추(칠리)도 들어可知가지 않은 自然자연 향신료를 使用사용한 아유르베다식 食事식사였습니다.
  • 아쉬람에 있는 소에게서 갓 짠 新鮮신선한 우유와 수제 기(精製정제 버터), 갓 간 코코넛이 使用사용되었으며, 장작을 使用사용하는 커다란 가마솥에서 調理조리되었습니다.
  • 食事식사는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많이 먹었음에도 不拘불구하고, **消化소화 吸收흡수가 매우 잘되었기 때문에 속이 더부룩하지 않았고 排泄物배설물(大變대변)도 아주 조금밖에 나奧地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5. 精神面정신면에서의 變化변화와 '자만' 이 遂行수행을 통해 內面내면의 막힘이 解消해소되고 意識의식이 擴張확장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結果결과 移轉이전처럼 **行動행동하기 전에 이것저것 苦悶고민하며 망설이던 버릇이 줄어들고, "무슨 一理일이 일어나든 뭐 어떠랴" 하며 매사를 흐름에 맡기고 行動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고 되돌아봅니다. 한편, 心理的정신적인 업장 解消해소가 단숨에 進行진행되면서 **"나는 心理的정신적으로 고양되었다"는 자만심이나 一種일종의 不均衡불균형하고 危險위험한 狀態상태(어떻게 되든 相關상관없다는 식의 너그러운 마음이 지나친 狀態상태)에 빠知機지기도 했다**고 自己分析자기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不均衡불균형함은 이후 離脫이탈리아 生活생활에서 장벽에 부딪혔을 때 "均衡균형을 다시 잡아야 한다"고 悟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悟깨달음을 얻기에 이른 經緯경위는 무엇認可인가요?

提供제공된 녹취록 속에서 제로 씨 自身자신이 明確명확하게 "나는 悟깨달음을 얻었다"고 宣言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視聽者시청자들의 質問질문에 답하는 形態형태로 只今지금까지의 心理的정신적인 探求탐구 軌跡궤적과 現在현재의 '悟깨달음'에 관한 見解견해를 이야幾何기하고 있습니다. 그 經緯경위와 마음의 變化변화는 다음과 같이 要約요약할 수 있습니다.
1. 自身자신의 '마음'과의 葛藤갈등과 探求탐구 探求탐구에 있어 가장 큰 障礙物장애물로 느꼈던 것은 '自己자기 自身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元來원래 可知가지고 있던 성향이 굳어져 形成형성된 '나'라는 自我자아를 어떻게든 打破타파하고 싶어 强烈강렬하게 발버둥 치던 時期시기가 있었으며, 이를 危害위해 音樂음악과 시를 지어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을 客觀的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試圖시도를 거듭했습니다.
2. 요가 遂行수행과 '자만'에 대한 自覺자각 그 후 요가를 만나 印度인도의 아쉬람(修行道場수행도장)으로 건너갔습니다. 嚴格엄격한 遂行수행을 이어가는 동안 心理的정신적인 解消해소가 단번에 進行진행되어 "무슨 一理일이 일어나든 뭐 어떠랴" 하며 萬物만물을 흐름에 맡길 수 있는 狀態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意味의미에서 危險위험하고 不均衡불균형한 狀態상태였으며, "나는 心理的정신적으로 고양되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고 스스로 分析분석합니다. 이후 移住이주지인 離脫이탈리아에서 벽에 부딪히며 새삼 心身심신의 均衡균형을 다시 잡아야 할 必要性필요성을 痛感통감했습니다.
3. 遂行수행(행)의 持續지속과 聖殿성전에 의한 '確認확인' 요가의 肉體육체행과 呼吸法호흡법, 淨化法정화법 등을 日常生活일상생활 속에서 繼續계속 이어가는 동안, 現在현재 제로 씨가 채널에서 이야幾何기하는 것과 같은 '事物사물을 바라보는 觀點관점과 感覺감각'으로 自然자연스럽게 변해갔습니다. 그 뒤 "나 말高度고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더 없을까" 하고 찾아보기 始作시작했고, 聖殿성전이나 聖者성자들의 말씀에 접했을 때 "아, 亦是역시 그런 뜻이었구나" 하며 自己자기 自身자신의 感覺감각에 대한 깊은 確認확인과 共感공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4. '悟깨달음'에 대한 見解견해와 現在현재의 心境심경 제로 씨는 '悟깨달음'이나 '解脫해탈'에 대해, 어떤 劇的극적인 變容변용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며, 말로 說明설명할 수 있는 性質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報告보고 있습니다. 現在현재 自身자신의 感覺감각에 대해서는 '제로'라는 個人개인으로서 生活생활하고 活動활동하는 自身자신과 連結연결되어 있으면서도, 同時동시에 '그것을 觀照관조하고(바라報告보고) 있다'는 시선이 늘 存在존재하여 겹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제로 씨는 特別특별한 事件사건을 계기로 단숨에 悟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다, 每日매일의 經驗경험과 葛藤갈등,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친 요가 遂行수행을 통해 마음의 장벽(덮개)을 조금씩 벗겨낸 結果결과 現在현재의 自然자연스러운 觀點관점에 到達도달했다고 말합니다.

'悟깨달음'에 대한 見解견해와 現在현재의 心境심경을 姿勢자세히.

제로 씨의 '悟깨달음(解脫해탈)'에 대한 見解견해와 現在현재의 心境심경에 대해, 提供제공된 情報정보에 基礎기초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해 드립니다.
'悟깨달음(解脫해탈)'에 대한 見解견해 제로 씨는 '悟깨달음'이나 '解脫해탈'에 대해 어떤 劇的극적인 變容변용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깨달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만약 悟깨달음이나 解脫해탈에 대해 말로 說明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진짜 悟깨달음이나 解脫해탈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에, 言語언어로 表現표현할 수 있는 領域영역이 아니라고 봅니다.
또한 悟깨달음이나 解脫해탈이라는 것은 '肉體육체가 있기에 비로소 可能가능할 수 있는 것'이며, 肉體육체가 없다면 그러한 일은 일어날 수 없다高度고도 덧붙입니다. 따라서 肉體육체는 '神醫신의 聖殿성전'이므로 결코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強調강조합니다.
現在현재의 心境심경과 感覺감각 現在현재 제로 씨의 心境심경이나 感覺감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特徵的특징적인 狀態상태가 言及언급되어 있습니다.
  • '活動활동하는 自身자신'과 '바라보는 시선'의 重疊중첩 '제로'라는 個人개인으로서 生活생활하고 活動활동하는 自身자신과 連結연결되어 있으면서도, 同時동시에 그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바라報告보고 있다'는 感覺감각이 늘 겹쳐서 存在존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 自身자신의 人生인생에 대한 '한 걸음 물러선' 感覺감각 自身자신의 過去과거 또는 신상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마치 他人타인의 일을 말하는 것 같은 멀어진 距離거리감과 낯선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自身자신이 作詞작사 作曲작곡한 音樂음악조차 '내 것'이라는 自覺자각이 거의 없으며, 스스로 솟구쳐 나와 흘러가는 것을 그저 바라報告보고 있을 뿐이라는 感覺감각을 느끼고 있습니다.
  •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아무래도 좋다'는 境地경지 YouTube 活動활동이나 世上세상萬事만사에 대해 진심으로는 큰 關心관심이 없고 '어찌 되든 相關상관없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無關心무관심이나 自暴自棄자포자기를 意味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는 이루 다 表現표현할 수 없는 感覺감각이라고 덧붙합니다. 채널에서 이야幾何기하는 것 亦是역시 그저 '內面내면에서 솟아 나오기에 하고 있을 뿐'이며, 어떤 特別특별한 期待기대나 目的목적(더 많은 사람들에게 電波전파하고 싶다는 등)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 게임 같은 感覺감각과 執着집착 없음 댓글이나 채팅으로 나누는 疏通소통 亦是역시 眞知진지하게 임하는 것처럼 보理智이지만, 事實사실은 學生학생 時節시절에 닦아온 토론 技術기술을 活用활용하여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한 感覺감각'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一地일지, 어떻게 評價평가받을지 같은 점에는 개의치 않고, 그저 매 瞬間순간 솟아나는 對象대상에 集中집중하고 맡겨두는 狀態상태라고 說明설명합니다.

'모든 것은 고(苦, 두카)'라는 말의 참뜻은 무엇認可인가요?

제로 씨의 解説해설에 따르면, '모든 것은 고(苦, 두카)'라는 表現표현은 單純단순히 肉體的육체적·心理的정신적인 '苦痛고통'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의 더 깊은 참뜻은 **'常住상주하지 않는 것', 즉 '모든 것은 늘 變化변화하고 흘러가는 것'**이라는 事實사실에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얻어 優越感우월감이나 自身자신의 價値가치를 느낀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무언가에 依存의존하고 있는 한, 依存의존 對象대상 그 自體자체도 變化변화하기 때문에 結局결국에는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釋迦석가는 '두카'라는 말을 통해, **永遠영원하지 않고 늘 變化변화하는 것을 갈구해 보아야 結局결국에는 얻을 수 없으니 "그런 行動행동을 해 보았자 아무 소용없다(執着집착해도 意味의미가 없다)"**는 眞實진실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苦痛고통에서 벗어난다'는 일의 眞正진정한 意味의미는 變化변화하는 것에 대한 執着집착과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며, 그것을 걷어낼 때 비로소 '변하지 않는 것(常住상주의 것)'만이 남게 된다고 제로 씨는 전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常住상주의 것)'이란 무엇認可인가요?

제로 씨의 解説해설에 따르면, **'변하지 않는 것(常住상주의 것)'**이란 다음과 같은 性質성질을 지닌 것이라고 합니다.
  • 時間시간과 스페이스공간의 制約제약을 받지 않는 것 우리의 肉體육체와 마음은 끊임없이 變化변화하는 '永遠영원하지 않은 것'理智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時間시간과 스페이스공간이라는 틀에 얽매理智이지 않고 變化변화하지 않는 對象대상을 가리킵니다.
  • 모든 變化변화가 일어나기 위한 '土臺토대(베이스)' 世上세상 모든 萬物만물이 바뀌고 흘러간다는 變化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것도, 그 根底근저에 '변하지 않는 것'이 土臺토대로서 存在존재하기에 成立성립할 수 있는 것이라고 說明설명합니다.
  • 執着집착을 내려놓은 뒤에 남는 것 끊임없이 變化변화하는 肉體육체나 마음을 '나'라고 錯覺착각하기를 멈推古추고, 永遠영원하지 않은 것에 대한 執着집착에서 完全완전히 벗어났을 때 最終的최종적으로 남는 것이 바로 이 '永遠영원한 것(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 事實사실상 '그것밖에 없는' 것 變化변화하는 것에 대한 執着집착을 털어內面내면 常住상주의 것만 남게 되며, 말을 바꾸어 表現표현하면 실質的질적으로 世界세계에는 '변하지 않는 것(常住상주의 것)밖에 없다'고 제로 씨는 말합니다.

'常住상주의 것'을 意識의식하기 위한 日常的일상적인 遂行수행은 무엇認可인가요?

제로 씨는 '변하지 않는 것(常住상주의 것)'을 意識의식하고 그곳에 머무르기 위한 日常的일상적인 遂行수행으로, 特別특별한 意識의식이나 環境환경을 좇을 것이 아니라 每日매일의 삶 속에서 '意識의식을 두는 方向방향'과 '心身심신을 정돈하는 方法방법'이 重要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具體的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實踐실천을 꼽을 수 있습니다.
1. 行爲행위의 主體주체는 '나'가 아니라고 늘 意識의식하는 것 日常生活일상생활에서 어떤 일에 眞知진지하게 임할 때, "'나'라는 存在존재가 있어 스스로 생각하고 選擇선택해 行動행동하고 있다"고 錯覺착각할 것이 아니라, 實際실제로는 **"나의 內面내면에서 그저 솟아 나와 펼쳐至高지고 있을 뿐인 實態실태"**를 놓치지 않는 것이 重要중요합니다. 釋迦석가의 "늘 깨어 있으라(注意주의하라)"는 말씀 또한 이러한 事實사실을 忘却망각하지 않고 注意주의 깊게 繼續계속 머무르는 遂行수행을 意味의미한다고 解説해설합니다.
2. 自身자신의 마음이 일으키는 '反應반응의 課程과정'을 觀察관찰하는 것 우리는 每日매일 肉體육체를 통해 刺戟자극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反應반응하여 '슬프다', '氣分기분 좋다'와 같은 解釋해석을 내리며 이를 蓄積축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感覺감각을 受容수용하고서 마음이 反應반응하기까지의 一連일련의 흐름을 조금 한 걸음 물러선 觀點관점에서 깊이 觀察관찰하는 習慣습관을 들이는 것**을 權奬권장합니다. 이를 實踐실천함으로써 自身자신이 어디에 얽매여 있는지 알아차리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3. 大家대가를 바라지 않고 行爲행위를 '바치는' 것 日常的일상적인 業務업무나 집안일 속에서 "내가 한 一理일이니까"라며 大家대가나 他人타인의 評價평가를 期待기대하고 行動행동하면, 結果的결과적으로 "내가 하고 있다"는 自我자아(에고)에 먹이를 주게 되어 얽매임이 한층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大家대가를 생각하지 않고, 그 瞬間순간에 낼 수 있는 自身자신의 힘을 **供物공물(제물)처럼 '바친다'는 態度태도로 온 힘을 다해 임하는 것**이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길로 이語集어집니다.
4. 雜念잡념에 휩쓸릴 때는 '呼吸호흡' 등으로 意識의식을 돌리는 것 他人타인의 評價평가가 神經신경 쓰이거나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번잡하게 솟아오를 때는 '自身자신'이라는 觀念관념에 意識의식이 過度과도하게 쏠려 있는 狀態상태입니다. 그럴 때는 **自身자신의 呼吸호흡 狀態상태에 意識의식을 集中집중하거나, 마음속으로 만트라를 되풀以下이하여 암송하는 것**으로써 솟구치는 생각으로부터 意圖的의도적으로 焦點초점을 비껴가게 해 마음을 安定안정시키는 要領요령이 도움이 됩니다.
5. 土臺토대가 되는 肉體육체와 마음을 可知가지런히 정돈하는 것 常住상주의 것을 繼續계속 意識의식하기 危害위해서는 그 바탕이 되는 心身심신을 安定안정시키는 一理일이 필수적입니다. 제로 씨는 肉體육체를 **'神醫신의 聖殿성전'**이라 表現표현하며 결코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日常일상의 食事식사에 神經신경을 쓰고 요가 아사나(姿勢자세), 呼吸法호흡법 등을 통해 肉體육체 狀態상태를 淨化정화하며 마음의 傾向경향성을 온화하게 가다듬는(基礎기초를 다지는) 課程과정이 더욱 깊은 意識의식에 머물 수 있도록 이끄는 土壤토양이 됩니다.
이와 같이 日常生活일상생활에서 겪는 모든 經驗경험에 대해 **"얽매理智이지 않도록 注意주의하면서 眞知진지하게 活動활동하는 일"** 그 自體자체가 常住상주의 것을 意識의식하고 自我자아를 깎아내기 위한 훌륭한 遂行수행이 된다고 說明설명합니다.

'나'라는 主體주체를 잊고 客觀的객관적으로 自身자신을 觀察관찰하는 要領요령은 무엇認可인가요?

제로 씨는 '나'라는 主體주체에 얽매理智이지 않고 自身자신을 客觀的객관적으로 觀察관찰하기 위한 秘訣비결과 具體的구체적인 接近法접근법에 대해 自身자신의 經驗경험 및 요가 修行法수행법을 곁들여 다음과 같이 說明설명합니다.
1. 表現표현 道具도구(音樂음악 등)를 活用활용하여 솟구쳐 나오는 要素요소를 客觀객관화한다 제로 씨 本人본인은 自身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道具도구로 音樂음악(作詞작사·作曲작곡 및 錄音녹음)을 利用이용했습니다. **가급적 컨트롤통제를 가하지 않고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에서 나오는 것들을 그대로 表現표현한 뒤, 錄音녹음본을 나중에 스스로 다시 들어보는 方式방식**을 통해 평소 認知인지하지 못했던 自身자신의 깊은 면모를 客觀的객관적인 形態형태로 마주했다고 합니다. 남에게 들려주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試圖시도였습니다. 깊이 파고들다 보면 他人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무서운 면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同時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다 이와 비슷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겠구나' 하는 悟깨달음이 넓어져 他人타인을 受容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2. 日常生活일상생활에서 '마음의 反應반응 課程과정'을 觀察관찰한다 우리는 每日매일 肉體육체를 통해 刺戟자극을 받고 마음이 反應반응하여 '슬프다', '氣分기분 좋다' 등의 解釈해석을 내리고 이를 마음속에 蓄積축적해 갑니다. 이러한 **"感覺감각을 받아들이고서 마음이 反應반응하고 解釈해석하는" 一連일련의 課程과정을 조금 距離거리를 둔 視點시점에서 면밀히 觀察관찰하는 習慣습관을 기르는 일**이 重要중요합니다.
3. 單純단순한 肉體육체 움직임(아사나)을 통해 心身심신을 觀察관찰한다 觀察관찰 演習연습으로 '파완묵타 아사나'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單純단순한 움직임을 遂行수행하면서 스스로 마음속으로 어떻게 느끼고 受容수용하는지 觀察관찰할 것을 권합니다. 複雜복잡한 動作동작에서는 觀察관찰에 集中집중할 수 없으므로, **單純단순한 動作동작을 취하고 一定일정 時間시간 姿勢자세를 멈춘 채 呼吸호흡에 精神정신을 모으며 몸과 마음의 反應반응을 살펴보는 時間시간을 갖는 것**이 깊은 瞑想명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土壤토양을 일구는 데 보탬이 됩니다.
4. '느끼는 主體주체' 그 自體자체를 疑心의심한다 무언가를 느끼거나 바라볼 때 그곳에는 반드시 '그것을 느끼는 主體주체'가 實存실존합니다. 그러나 그 **"느끼고 있는 主體주체(나)"야말로 참된 自我자아가 아닐指導지도 모른다고 疑心의심하고,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努力노력하는 것**이 가장 根本的근본적이며 중대한 요점이라고 強調강조합니다.

自身자신을 '疑心의심하는 것'이 어째서 執着집착을 내려놓는 일로 이어지나요?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따르면 自身자신을 '疑心의심하는 것'이 執着집착을 내려놓는 것과 결부되는 理由이유는, **우리가 '自身자신'이라 굳게 믿어 疑心의심치 않는 對象대상의 政體정체를 파헤치고 同一視동일시를 걷어내는 課程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이 技術기술됩니다.
1. '나'라는 存在존재는 끊임없이 변한다 우리는 평소 自身자신의 肉體육체나 마음, 感情감정, 記憶기억 등을 "이것이 나다"라며 當然당연시합니다. 하지만 實際실제로는 肉體육체의 細胞세포는 매 瞬間순간 死滅사멸하고 새로이 교체되며, 마음과 感情감정 亦是역시 다음 瞬間순간에는 다른 狀態상태로 변해 버립니다. 즉 우리가 '自身자신'이라 믿는 것은 쉼 없이 變化변화를 겪는 '永遠영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2. 錯覺착각이 執着집착과 '고(苦)'를 낳는다 늘 변하는 對象대상을 '나'라 믿고 거기에 매달리는 行爲행위야말로 執着집착과 苦痛고통의 根源근원입니다. 永遠영원하지 않은 것을 自身자신이라 錯覺착각하고 있기에, 그것이 변하거나 喪失상실될 때 苦痛고통(두카)을 겪게 마련입니다.
3. '느끼고 있는 主體주체'를 疑心의심한다 그러므로 執着집착을 내려놓기 危害위해서는 "애당초 살아가고 있는 나란 무엇認可인가?", "이것을 느끼는 主體주체는 實存실존하는가?"라고 根源근원부터 물어(疑心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對象대상을 보거나 느낀 刹那찰나에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있다"고 느끼면 지체 없이 "그것이 진짜 나認可인가?" 하고 반문하는 態度태도가 要求요구됩니다.
4. 疑心의심함으로써 '自我자아의 먹이'를 끊는다 보상을 바라며 '내가' 무언가를 얻으려 하거나, '내가' 일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내가 여기에 存在존재한다"는 觀念관념(自我자아)을 한층 단단히 만들어 執着집착의 양분이 됩니다. 스스로를 疑心의심하여 "變化변화하는 것은 진짜 내가 아니다"라고 自覺자각함으로써, 自己자기 自身자신이 存在존재한다는 根本的근본적인 誤解오해(제로 씨는 이를 '偶像崇拜우상숭배'라高度고도 칭합니다)에서 비껴갈 수 있습니다.
結論的결론적으로 모든 次元차원과 經驗경험에서 **"나라고 믿고 執着집착하는 모든 對象대상"을 疑心의심하고 한 꺼풀씩 벗겨냄으로써, 永遠영원하지 않은 것에 대한 執着집착이 스러至高지고 最後최후에 '변하지 않는 것(常住상주의 것)'만이 남게 된다**고 제로 씨는 말합니다.

'常住상주의 것'만이 存在존재한다는 것은 어떠한 感覺감각認可인가요?

제로 씨의 解説해설에 따르면 '常住상주의 것만이 있다'는 感覺감각은 우리가 흔히 '現實현실'이나 '自己자기 自身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對象대상들이 實相실상은 **'實體실체 없는 緣起연기나 그림자 같은 비전(幻想환상)'에 弗過불과함을 看破간파하고, 그것들에 대한 執着집착이 完全완전히 消滅소멸한 狀態상태**를 일컫습니다.
제로 씨는 이 感覺감각을 영화나 플라톤의 '洞窟동굴의 譬喩비유'를 빌려 說明설명합니다. 우리는 평소 빛이 投射투사되어 나타나는 '그림자(끊임없이 변하는 肉體육체와 마음, 世界세계)'를 진짜 自身자신이나 現實현실로 誤認오인하고, 그 그림自意자의 양상에 따라 슬퍼하고 기뻐하며 一喜一憂일희일비하고 거기에 침잠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執着집착이나 '나'라는 我執아집(誤解오해)을 버리고 그 그림자에서 意識의식을 巨頭거두면, 繼續계속 變化변화하는 것은 결코 永遠영원할 수 없으며 結局결국에는 손에 넣을 수 없는 對象대상임이 鮮明선명히 드러납니다. 그렇게 변하는 것(幻影환영)을 털어내고 나면 그 바탕에 버티고 서 있는 '변하지 않는 것(常住상주의 것)'만이 남아, 實相실상은 **'그것밖에 存在존재하지 않는다(변하지 않는 것만이 實在실재할 뿐이다)'**라는 儼然엄연한 事實사실을 自覺자각하게 된다고 說明설명합니다.
즉 '常住상주의 것만이 存在존재한다'는 感覺감각은 世界세계나 肉體육체가 눈앞에서 사라져 없어지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펼쳐지는 모습을 '한 편의 映像영상'으로 멀찌감치서 觀照관조하게 되어 변하는 것에 期待기대거나 구하려는 마음이 消滅소멸한, 絶對的절대적인 平安평안과 靜寂정적의 境地경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繼續계속 변하는 肉體육체와 마음, 世界세계)'가 投射투사되는 메커니즘은 무엇認可인가요?

'그림자(繼續계속 변하는 肉體육체와 마음, 世界세계)'가 비치는 메커니즘은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따르면 주로 다음과 같은 課程과정과 構造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내가 存在존재한다'는 根源的근원적 誤解오해(無明무명)가 시발점 모든 世界세계와 비轉移전이 펼쳐지는 大前提대전제로서, **"나라는 存在존재(意識의식)가 여기에 實存실존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根本的근본적 誤解오해(無名무명)**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 '나'라는 核心핵심에 얽매여 있기에 비로소 時間시간과 스페이스공간, 나아가 自身자신과 關係관계를 맺는 '對象대상'으로서의 宇宙우주(世界세계)가 存在존재할 수 있는 여건이 形成형성됩니다.
2. 意識의식을 連結연결한 次元차원에 副應부응하여 펼쳐지는 世界세계 제로 씨는 우리가 '現實현실'이라 부르는 領域영역도, '꿈'이나 死後사후의 '靈界영계'도, 使用사용되는 材料재료(物質물질認可인가 想念상념認可인가)와 척도가 다를 뿐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에서 創造창조하고 있다"는 根幹근간의 메커니즘은 完全완전히 同一동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特定특정한 무언가(예를 들면 작금의 이 육신)를 '나'라고 規定규정하고 거기에 意識의식을 强力강력히 묶어두는(얽매이는) 일을 함으로써, 該當해당 次元차원의 法則법칙과 感覺감각을 隨伴수반한 世界세계가 비전으로 눈앞에 열리며 投影투영되는 것입니다.
3. 潛在잠재된 '記憶기억'과 '얽매임'을 필터로 삼은 自動자동反應반응 눈앞에 드리워진 世界세계가 '어떻게 보이는가',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느끼는가'는 外部외부 環境환경 그 自體자체에 의해 100% 決定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 瞬間순간 어떤 現象현상(振動진동)이 創造창조될 때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直視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自身자신이 여태껏 精神정신의 깊은 次元차원에서 蓄積축적해 온 '記憶기억'이나 '얽매임(마음의 傾向경향성)'을 거치며 解釈해석하고 條件反射조건반사처럼 自動자동 反應반응하는 것**입니다. 이 反應반응 課程과정을 거쳐 머릿속에서 具體的구체적인 비전을 지어내고, 그것을 '自身자신이 經驗경험하고 있는 現實현실의 敍事서사(스토리)'로 看做간주하여 바라보게 됩니다.
結論的결론적으로 그림자(世界세계)가 비치는 메커니즘이란 外部외부에 儼然엄연한 宇宙우주가 獨自的독자적으로 實存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存在존재한다"는 錯覺착각을 土臺토대로 삼고 內面내면에 蓄積축적된 記憶기억이나 얽매임을 통해 反應반응한 結果결과가 흡사 바깥의 現實현실(비전)인 양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지어乃至내지고 있는 狀態상태**를 뜻합니다.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에서 世界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感覺감각을 具體的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따르면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에서 世界세계를 創造창조하고 있다'는 感覺감각은 우리가 평소 自明자명하게 여기는 '現實현실'과 '時間시간'을 받아들이는 觀點관점을 밑바탕부터 뜯어고침으로써 理解이해하기 한결 쉬워집니다. 세부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譬喩비유나 얼개를 통해 거론됩니다.
1. '꿈'과 '現實현실'은 完全완전히 同一동일한 메커니즘 우리가 잠든 사이에 꾸는 '꿈'속에서는 自己자기 自身자신의 '꿈속 身體신체'가 있고 他人타인이 存在존재하며 여러 事件사건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나면 그것들이 죄다 自身자신의 마음(想念상념)이 안쪽에서 빚어낸 映像영상(비전)에 弗過불과했음을 認知인지하게 됩니다. 제로 씨는 **'現實현실'의 世界세계도 이와 完全완전히 똑같은 構造구조로 프로그래밍설계되어 작동한다**고 전합니다. 現實현실 世界세계는 '物質물질', 꿈의 世界세계는 '想念상념'처럼 쓰이는 原料원료나 척도, 그리고 意識의식을 連結연결하는 次元차원이 상이할 뿐 根源的근원적으로는 量子양자 冒頭모두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에서 길어 올려 그곳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狀態상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2. 記憶기억과 얽매임에 의한 '自動자동 生成생성' 그렇다면 무엇을 소스로 삼아 世界세계를 지어내는가 하면, 바로 自己자기 自身자신의 깊은 곳에 웅크린 **'記憶기억'과 '얽매임(마음의 傾向경향성)'**입니다. 외쪽에 뚜렷한 實體실체가 獨自的독자적으로 存在존재하여 그것을 여과 없이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사람마다 각자 自身자신의 내부에 내재된 記憶기억의 反應반응 樣式양식에 맞춰 現象현상을 解釈해석하고, 그 産物산물을 머릿속에서 '비전(現實현실의 世界세계)'으로 상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짚어줍니다.
3. '過去과거'도 '未來미래'도 머릿속 이야기(敍事서사)에 弗過불과하다 우리는 '過去과거·現在현재·未來미래'라는 線形선형적인 時間시간이 흐르고 世界세계가 維持유지된다고 굳게 믿지만, 제로 씨는 이 조차도 自身자신의 안에서 創造창조해 낸 觀念관념이라고 指摘지적합니다. "過去과거에 이러이러한 一理일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발돋움해 왔다"는 認識인식 亦是역시 嚴密엄밀히는 只今지금 여기에 存在존재하는 實體실체가 아니며, **오로지 只今지금 이 刹那찰나에 머릿속에서 합성해 낸 스토리(비전)**에 弗過불과합니다. 이와 마찬可知가지로 '未來미래'에 대한 근심이나 空想공상도 머릿속 假想가상 스페이스공간에만 實存실존할 뿐입니다. 즉 時間시간의 추이나 世界세계의 흐름 그 自體자체가 매 瞬間순간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으로부터 피어오르게 하여 가공해 내는 허상입니다.
4. 死後사후 世界세계(靈界영계)마저도 스스로 지어낸다 이 메커니즘은 육신을 벗어던진 후(死後사후)에도 변함없이 適用적용됩니다. 제로 씨는 숨을 거둔 뒤 당도하게 되는 '靈界영계'나 '저승' 같은 世界세계도 어디엔가 기성품처럼 마련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 **自己자기 內面내면의 想念상념과 카르마적 傾向경향성에서 自發的자발적으로 創造창조되는 스페이스공간**이라고 말합니다. '나'라는 自我자아가 存在존재하고 무언가에 얽매여 있는 한, 육神異신이 흩어지더라도 또 다른 次元차원에서 同一동일한 方式방식으로 世界세계를 構築구축하여 거기에 빠져들고, 類似유사한 행태를 되풀以下이하게(輪廻윤회하게) 됩니다.
結論的결론적으로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에서 世界세계를 지어내고 있다'는 直觀직관은 只今지금 눈앞의 現實현실도, 過去과거와 未來미래도, 他人타인도 冒頭모두 自己자기 내부의 記憶기억이나 얽매임을 投射투사한 '史的사적인 머릿속 비전'에 지나지 않음을 꿰뚫어 보는 데서 出發출발하는 感覺감각이라 하겠습니다.

瞬間瞬間순간순간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에서 피어오르게 하여 지어내고 있다는 점에 대해 더 具體的구체적으로.

우리가 '現實현실' 혹은 '自身자신의 生涯생애'로써 맛報告보고 있는 것들은 實際실제로는 **매 瞬間순간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에서 솟아올라 머릿속에서 組合조합되는 비전**일 따름입니다.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따르면 그 詳細상세한 얼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過去과거도 未來미래도 '只今지금 머릿속으로 操作조작 중인 스토리' 우리는 '過去과거·現在현재·未來미래'라는 時間시간선이 흐르고 世界세계가 穩全온전하게 이어至高지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實際실제로는 지나간 事件사건도 自身자신이 밟아온 成長성장 軌跡궤적도 現實현실에서는 只今지금 여기에 存在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只今지금 이 瞬間순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한 시나리오(비전)일 뿐입니다. 마찬可知가지로 將來장래에 대한 걱정이나 '이렇게 되겠지' 하는 妄想망상 亦是역시 머릿속에만 존속합니다. 요컨대 우리가 '時間시간' 또는 '世界세계'라 부르는 것은 實相실상 '매 瞬間순간 피어올라 급조된 創作창작물을 感想감상하는 狀態상태'인 셈입니다.
2. '記憶기억'과 '얽매임'을 여과 裝置장치로 한 비転依전의 自動자동 生成생성 그렇다면 매 瞬間순간 무엇을 資源자원 삼아 世界세계를 自我자아내고 있는가 하면, 亦是역시 自己자기 深淵심연에 蓄積축적된 '記憶기억'과 '얽매임(마음의 傾向경향성)'입니다. 刹那찰나에 어떠한 現象현상(振動진동)이 發生발생할 때 우리는 바깥 世界세계를 있는 그대로 목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自身자신이 潛在的잠재적으로 품은 記憶기억과 傾向경향성에 비추어 條件反射조건반사처럼 작동하고, 그 解釈해석을 머릿속에서 '비전'으로 現象현상하여 그것을 생생한 現實현실로 마주합니다**. 同一동일한 여건과 맞닥뜨려도 사람마다 反應반응과 受容수용 양태가 다른 까닭은 環境환경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해서가 아니라,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에 깔린 潛在的잠재적 성향(記憶기억이나 얽매임)을 거쳐 世界세계를 가공해 내기 때문입니다.
3. '나'라는 感覺감각 自體자체도 瞬間순간적인 妄想망상 우리가 "이것이 本人본인이다"라며 철석같이 믿는 肉體육체와 마음도 실은 細胞세포가 매 瞬間순간 스러至高지고 교대하듯 언제나 動的동적인 變化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 瞬間순간 변해 가는 現象현상을 붙들고 '이것이 나다'라는 錯覺착각을 놓지 못합니다. 그리고 매 瞬間순간 報告보고 듣고 體感체감하는 對象대상을 '내가 보았다', '내가 겪었다'며 記憶기억과 이未知미지로 內面내면에 쌓아두어 根本的근본적 誤解오해(無名무명)의 성벽을 더욱 단단히 둘러치고 맙니다.
4. 行爲행위 또한 '내부에서 솟구쳐 펼쳐至高지고 있을 뿐' 우리가 밤낮으로 苦悶고민하고 스스로 궁리하여 決定결정해 行動행동한다고 믿는 日常일상의 처신마저도 에센스본질은 **"나의 內面내면에서 그저 솟아 나와 작동하고 있을 뿐인 現象현상"**에 弗過불과합니다. 實際실제로는 實體실체가 전무함에도 '내가 主體的주체적으로 행하고 있다'고 억측함으로써 自我자아의 망집을 加速가속화할 따름입니다.
結論的결론적으로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世界세계는 공고한 外部외부의 實在실재가 아니라, **"나라는 實體실체가 있다"는 허상을 디딤돌 삼고 내재된 記憶기억과 얽매임이 刹那찰나마다 反應반응해 피어올라 오직 머릿속에서만 끊임없이 連續연속 상영되는 史的사적인 비전(영화나 꿈과 같은 性質성질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只今지금의 日常일상에서 '나'라는 幻想환상을 看破간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提供제공된 소스와 只今지금까지의 對話대화를 土臺토대로, 只今지금의 日常일상 속에서 '나'라는 幻想환상(錯覺착각)을 깨뜨리고 그로부터 멀어知機지기 위한 具體的구체적인 方法방법론에 대해 제로 씨는 다음과 같이 說明설명하고 있습니다.
1. 行爲행위의 主體주체는 '나'가 아님을 늘 意識의식한다(行爲행위의 서렌더내맡김) 日常일상사나 직무에 있어 우리는 主體的주체적으로 구상하고 調律조율해 行動행동에 옮긴다고 믿어 疑心의심치 않으나, 實際실제는 **"나의 內面내면에서 그저 솟아 나와 펼쳐질 뿐인 結果결과물"**에 弗過불과합니다. 따라서 어떤 일에 열性的성적으로 매달릴 때조차 '내가 主導주도하고 있다'는 我執아집을 부리지 않고 '行爲행위를 그저 行爲행위 自體자체로 遂行수행하는 態度태도'가 重要중요합니다. 만약 反對給付반대급부나 他人타인의 시선(評價평가), 혹은 '내가 救援구원받고 싶다', '내 氣分기분이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류의 바람을 안고 行動행동에 나선다면 그것이 世間세간의 基準기준에서 아無理무리 고결한 先行선행이라 한들 終局종국에는 "내가 여기에 엄존한다"는 自我자아(에고)의 樣式양식이 되어 幻想환상을 한층 견고하게 축조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2. 恒常항상 '깨어 있는 狀態상태'로 觀察관찰하며, 느끼는 主體주체를 疑心의심한다 釋迦석가가 "늘 방심하지 마라(깨어 있어라)" 하고 당부한 것은 每日매일의 삶 속에서 '내가 行爲행위의 中心點중심점이 아니다'라는 眞實진실을 잊지 말고 면밀히 주시하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어떤 對象대상을 自覺자각하거나 관람할 때 "그것을 體得체득하는 主體주체(나)"가 진짜 存在존재하는가 하고 뿌리째 흔들어 疑心의심해 보는 訓練훈련이 긴요합니다.
3. 他人타인의 시선(評價평가)을 意識의식하는 自我자아를 포착하고, 目前목전의 일에 '專念전념(専心)'한다 예를 들어 대중 앞에서 스피치를 하거나 人間關係인간관계 속에서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까'를 염려하여 緊張긴장과 조바심이 피어오를 때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제로 씨는 그 心理심리 狀態상태가 **實相실상은 他人타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自己자기 自身자신의 想念상념("나"는 과연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에 시선이 쏠려 執着집착을 부리는 것**이라 斷言단언합니다. 이 幻想환상에서 발을 빼려면 評價평가를 神經신경 쓰는 버릇을 접어 두고, 매 瞬間순간 自身자신이 發揮발휘할 수 있는 에너지를 供物공물처럼 제단에 바치듯 눈앞의 과업(對象대상)에 眞知진지하게 沒頭몰두(專心전심)해야 합니다. 沒我몰아의 지경에 빠져듦으로써 自然자연히 潛在잠재 能力능력이 發現발현되고, 結果的결과적으로 '나'라는 얽매임에서도 自然자연스럽게 빗겨갈 수 있습니다.
4. 緻密치밀어 오르는 想念상념에서 '呼吸호흡'이나 '만트라'로 注意주의를 환기한다 머릿속에서 온갖 想念상념이 無秩序무질서하게 출렁이거나 煩惱번뇌에 휩쓸릴 듯할 때는 무엇보다 그 狀態상태를 먼저 알아차리는 自覺자각이 核心핵심입니다. 이어 조금 距離거리를 둔 메타적 視野시야를 確保확보하기 위한 方便방편으로, **自身자신의 숨결에 온 感覺감각을 모으거나 심중으로 만트라("옴" 등)를 거듭 외우며 고의적으로 생각의 焦點초점을 回避회피시키는 方法방법**이 지대한 도움을 줍니다.
5. 밑거름이 되는 육신을 '神醫신의 聖殿성전'으로 大切소중히 돌본다 '나'라는 迷妄미망을 깨부手記수기 危害위해서는 心理的정신적 해법뿐 아니라 基本기본 바탕이 되는 身體신체와 심기를 정갈하게 가꾸는 物理的물리적 條件조건이 隨伴수반되어야 합니다. 제로 씨는 悟깨달음과 解脫해탈은 肉體육체가 保存보존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일어날 수 있는 事件사건이기에 **몸뚱이는 '神醫신의 聖殿성전'과 다름없으며 絶對절대로 함부로 굴려서는 안 된다**고 전합니다. 영양 섭취나 健康건강에 留意유의하며 체내외 均衡균형을 잘 지탱하는 作業작업이 迷妄미망을 打破타파하고 高次元고차원적 意識의식에 머물 수 있도록 조력하는 요긴한 基礎기초 공사입니다.
이러한 遂行수행 要領요령을 격식을 차려야 하는 瞬間순간뿐 아니라 자잘한 日常일상 屬意속의 매 瞬間순간 不斷부단히 意識의식하고 實踐실천하는 行爲행위 그 自體자체가 幻影환영을 걷어내는 참된 工夫공부가 된다고 역설합니다.

自己자기 마음의 反應반응 課程과정을 觀察관찰하는 具體的구체적인 要領요령은 무엇認可인가요?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의하면, 自己자기 마음의 反應반응 課程과정을 살피기 危害위해선 유별난 環境환경을 꾸밀 것이 아니라 **肉體육체를 活用활용하는 수월한 遂行수행(요가)**과 **生活생활 속에서의 習慣化습관화**를 竝行병행하는 방安易안이 매우 주효합니다.
具體的구체적으로는 아래의 가이드라인지침과 안목을 實踐실천에 옮기길 權奬권장하고 있습니다.
1. 觀察관찰 對象대상이 되는 '課程과정의 흐름'을 把握파악한다 우리가 日常的일상적으로 無意識무의식중에 흘려보내는 다음의 '自動的자동적 思考사고 흐름'을 距離거리를 둔 觀點관점에서 凝視응시하는 것이 觀察관찰의 첫걸음입니다.
  • 육신(感覺감각 機關기관)을 통해 外部외부 刺戟자극이나 情報정보를 受信수신한다.
  • 마음이 該當해당 刺戟자극에 條件反射조건반사적으로 應答응답한다.
  • 그 反應반응 結果결과에 대해 '슬프다', '苦痛고통스럽다', '幸福행복하다', '安樂안락하다' 등으로 解釈해석을 붙인다.
  • 該當해당 解釈해석을 記憶기억이나 殘像잔상으로 自身자신의 내부에 蓄積축적한다. 이 전 課程과정을 細密세밀히 들여다보는 作業작업을 몸에 익히는 一理일이 필수입니다.
2. 요가의 간명한 姿勢자세(아사나)를 취하며 訓練훈련한다 마음의 作用작용만을 무작정 도려내어 觀察관찰하기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于先우선은 **'몸을 놀리는 行動행동'**부터 開始개시하는 편이 명쾌하고 가벼운 진입로가 된다고 어드바이스조언합니다.
  • 파완묵타 아사나처럼 單純단순하고 垂手수수한 움직임을 實行실행합니다. 동선이 꼬이고 어려운 動作동작에선 주시하는 能力능력이 分散분산되므로 조촐한 난도가 알맞습니다.
  • 身體신체를 調律조율하며 特定특정 부위에서 포즈정지 姿勢자세를 維持유지합니다.
  • 그 멈춘 狀態상태에서 스스로의 숨통에 마음을 두고, 골격·筋肉근육의 感覺감각이나 마음의 內面내면에서 어떻게 느끼며 受容수용하는가(心理심리 反應반응)를 찬찬히 점검해 보는 時間시간을 配定배정합니다. 이와 같은 감찰을 目的목적으로 고안된 시스템체계가 바로 요가 遂行수행입니다.
3. 삶의 日常的일상적인 局面국면마다 觀察관찰을 生活생활화한다 요가를 하는 視點시점뿐만 아니라 每日매일 生活생활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萬事만사에 관해서도 自身자신의 마음이 어떤 方式방식으로 振動진동하고 對應대응하는지 確認확인하는 習慣습관을 들입니다. 우리 周邊주변에는 이런 現象현상을 實驗실험해 볼 期會기회가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觀察관찰을 持續지속했을 때 따르는 効果효과 이러한 셀프 점검을 每日매일 이어감에 따라 기존에 켜켜이 쌓인 선입견과 記憶기억에 휘둘려 條件反射조건반사적으로 튕겨 나가던 악습이 조금씩 옅語集어집니다. 더불어 日常일상의 풍파를 맞닥뜨렸을 때 對處대처하는 안목과 行爲행위도 절로 개조되며, 보다 崇高숭고한 瞑想명상에 適合적합한 心身심신 構造구조로 自然자연스레 변모한다고 전합니다.

'行爲행위를 但只단지 行爲행위 自體자체로 遂行수행한다'는 가이드라인지침을 實現실현할 具體的구체적 秘訣비결은 무엇認可인가요?

제로 씨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行爲행위를 그저 行爲행위로써 完遂완수하는' 具體的구체적 要領요령은 **"내가 處理처리하고 있다"는 自意識자의식이나 結果결과물에 대한 미련(期待기대)을 전적으로 비워내고, 당면한 對象대상에만 注意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具體的구체적인 점검 項目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나'라는 主體주체가 일을 도맡는 것이 아님을 洞察통찰한다 우리는 늘 '自身자신이 判斷판단하고 골라서 實行실행한다'고 자부하지만, 實體실체는 行爲행위 亦是역시 **"內面내면에서 저절로 우러나와 進行진행되는 現象현상"**일 따름입니다. 따라서 '내가 취사選擇선택하여 구사하고 있다'는 迷妄미망을 던져 버리고, 그 實相실상을 視野시야에서 놓치지 않은 狀態상태로 처신해야 합니다.
  • 2. 大家대가나 보상을 바라는 마음을 永遠영원히 접는다 '남들에게 칭송받고 싶다', '내가 救援구원받기를 원한다', '내 感情감정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식의 욕심과 目的목적意識의식을 품고 거동하면, 그것이 社會的사회적 規範규범에서 아無理무리 수려한 慈善자선이거나 神性신성한 遂行수행一地일지라도 結局결국 **"내가 여기에 實在실재한다"는 自我자아(에고)의 밑거름이 되어 煩惱번뇌와 얽매임을 한층 두껍게 포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보답을 바라지 않고 行動행동하는 無所得무소득의 態度태도가 鐵則철칙입니다.
  • 3. 自己자기가 가진 역량을 '供物공물'로써 제단에 올린다 남들이 내릴 평점이나 스코어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그 刹那찰나에 동원할 수 있는 自身자신의 知識지식과 노하우를 **'供物공물(바치는 제물)'로 봉헌한다는 態度태도로 당면한 과업에 熱情열정적으로 沒入몰입하는 것**을 장려합니다.
  • 4. 外部외부 시선(自意識자의식)에 연연치 않고 三昧삼매에 든다 대중연설이나 業務업무 프레젠테이션 등에서 '他人타인이 날 어떻게 채점할까' 조바심 내는 行爲행위는 本質的본질적으로 相對상대를 배려해서가 아니라 오직 '自己자기 自身자신'의 煩惱번뇌(想念상념)에 가두어져 헤매는 양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自意識자의식이 꿈틀對面대면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엉켜 本來본래 지닌 소양을 發揮발휘할 수 없습니다. 評價평가 따위는 내팽개쳐 두고, 그저 只今지금 可能가능한 課題과제에만 오롯이 專念전념하여 無我무아의 狀態상태로 實踐실천해야 합니다.
이러하듯 하루하루의 매사 行動행동에 있어서도 **'내가 한다'는 自律的자율적 地位지위를 박탈(포기)하고, 大家대가 없이 現在현재에 혼신을 쏟아내는 持續지속성**이 '行爲행위를 但只단지 行爲행위 自體자체로 遂行수행하는' 가장 뼈대 깊은 秘訣비결이라 알려줍니다.

'行爲행위를 但只단지 行爲행위 自體자체로 遂行수행하는 것'이 어째서 執着집착을 털어내게 만드나요?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비추어 보면 '行爲행위를 오직 行爲행위 自體자체로 遂行수행하는 일'이 執着집착(얽매임)을 解消해소하게 만드는 根據근거는 **'나'라는 自我자아의 固定고정 觀念관념을 견고히 쌓아 올리던 악循環순환(루프)을 斷絶단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具体的には、以下のメカニズムが働いています。
1. '내가 處理처리했다', '이득을 거둔다'는 생각은 自我자아의 먹이가 된다 우리가 一過일과 속에서나 修道수도 중에 "내가 이 成果성과를 냈으니 공로를 認定인정받아야지", "내가 救濟구제받고 싶다", "속이 후련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期待기대를 품고 처신한다고 칩시다. 그리하면 그 行動행동이 아無理무리 假想가상한 慈善자선일망정 "이 몸뚱이가 여기에 버티고 있고, 그 '나'라는 主體주체가 복락을 누린다"는 信仰신앙(傲慢오만)을 제 손으로 다지는 꼴입니다. 제로 씨는 이따위 야심을 품고 움직이는 行爲행위는 "全部전부 에고의 밥이 된다"고 단도직入寂입적으로 警告경고합니다.
2. 行爲행위의 참모습은 '내부에서 솟구쳐 펼쳐질 뿐'이다 實際실제로는 우리가 自己자기 머리로 구상하고 택해서 거동한다고 자만하는 每日매일의 자잘한 일거數日수일투족조차 에센스본질은 **"自身자신의 안에서 自然자연스레 솟구쳐 작동할 따름인 波動파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行爲행위를 오직 行爲행위로써 마친다는 要領요령은 이 實相실상(實相실상)을 놓치지 않으며 온 마음을 바쳐 임한다는 뜻입니다.
3. 얽매임이 自然자연히 消滅소멸되어 간다 '나'라는 獨自的독자적 實體실체가 프로그래밍설계해 主導주도하는 게 아니라는 眞實진실을 잊지 않고(늘 깨어 있는 채로) 삶을 영위하면, 에고에게 영양분을 공급하지 않고 活躍활약할 수 있습니다. 제로 씨는 이러한 淸淨청정한 心境심경(大家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가 成就성취했다'는 我執아집이 除去제거된 狀態상태)에서 비롯된 처신은 靈的영적인 뜻의 善業선업이 되어, **根源的근원적인 '얽매임의 淨化정화(解消해소)'를 추진하게 해 준다**고 말합니다.
結論的결론적으로 行爲행위를 但只단지 行爲행위 自體자체로 遂行수행하는 일은 "내가 이 自利자리에 存在존재한다"는 一次的일차적 誤認오인(無名무명)을 더는 공고하게 助長조장하지 않도록 가로막는 防波堤방파제이며, 同時동시에 이미 켜켜이 말라붙은 '我執아집'을 조금씩 갈아 없애는 實踐실천 遂行수행이 되므로 自然자연스레 執着집착을 비워내게 만듭니다.

'意識의식을 連結연결한 次元차원에 응하여 展開전개되는 世界세계'란 무슨 뜻認可인가요?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따르면, '意識의식을 連結연결한 次元차원에 준하여 벌어지는 世界세계'란 우리가 實感실감하는 '現實현실'과 '꿈', 혹은 '死後사후 世界세계' 등이 **저마다 상이한 격조(次元차원)에다 意識의식의 무게中心중심을 두고 그곳에 自利자리한 매個體개체를 '나'라고 속단해 사로잡힘으로써 조출된다**는 메커니즘을 명명합니다.
次元차원의 位相위상이나 소요되는 소재(物質물질認可인가 想念상념認可인가)만 다를 뿐, "自己자기 마음自利자리에서 世界세계를 엮어내어 그것을 관망하고 있다"는 核心핵심 얼개는 전적으로 同一동일하다고 덧붙입니다.
具體的구체적으로는 마음을 投射투사하는 次元차원의 段階단계에 따라 다음과 같이 視野시야가 벌語集어집니다.
1. 現實현실의 宇宙우주(物質的물질적 水準수준) 우리가 日常일상에서 '現實현실'이라 부르는 領域영역은 **物質的물질적 육신에 意識의식의 焦點초점을 맞推古추고(連結연결하고), 그것을 '나 自身자신'이라 신봉하기 때문에 돌아가고 있습니다**. 身體신체라는 조밀한 物理물리 레벨에 注意주의가 凝縮응축되어 있으므로 周圍주위에 物理的물리적 스페이스공간과 物質물질계가 生成생성되어 이를 現實현실로 認知인지합니다.
2. 꿈의 世界세계(想念상념의 水準수준) 隨眠수면에 들었을 때 意識의식의 포커스를 身體신체로부터 離脫이탈시키면 實際실제의 몸이나 社會사회는 마음自利자리에서 蒸發증발해 사라집니다. 대신 精神정신은 마음과 想念상념의 스테理智이지로 跳躍도약하며, 想念상념이라는 고운 소재로 지어진 '꿈속 유체'와 '꿈속 世界세계'를 發現발현시킵니다. 꿈에서 다리에 자상을 입어도 實際실제 肉體육체에 상흔이 안 남는 연유는 意識의식이 고깃덩이(肉體육체)를 벗어나 다른 次元차원(想念상념 水準수준)의 世界세계를 기同時동시켜 거기에 도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3. 死後사후 世界세계와 靈界영계 生命생명이 다해 몸이 썩으면 意識의식은 더는 物理물리 레벨에 기생할 수 없어 自然자연스레 마음과 想念상념의 領域영역으로 遷移천이합니다. 제로 씨는 死後사후의 領域영역(靈界영계)이나 극락·地獄지옥 등도 어딘가에 조경을 끝마치고 對機대기하는 客觀的객관적 스페이스공간이 아니라,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에 潛在잠재한 소스(업의 記憶기억과 성향)가 비어져 나와 創出창출되는 스페이스공간**이라고 어드바이스조언합니다. 유토피아를 마주하는 영혼이 있는가 하면, 恐怖공포스러운 地獄지옥도를 마주하는 자도 있으니 온 宇宙우주의 衆生중생이 일률적으로 目擊목격하는 視野시야는 아닙니다.
結論的결론적으로 어느 位相위상의 어떤 世界세계一地일지라도 그것은 **「同一동일한 水準수준의 어떠한 個體개체를 '나'라고 斷定단정 짓고 거기에 마음을 묶어 사로잡히기에, 該當해당 次元차원의 에너지 規則규칙에 맞춰 宇宙우주가 再生재생되어 目擊목격되고 있을 뿐」**에 다름없다고 제로 씨는 糾明규명합니다.

自身자신을 훌훌 던져 버리는 듯한 '勇氣용기'란 어떤 것認可인가요?

제로 씨의 講義강의에 따르면 '自身자신을 투신하듯 내던지는 勇氣용기'란 靈的영적인 노정(眞理진리의 探索탐색)을 眞正진정으로 개척해 가기 危害위해 동원되어야 할, **世俗세속의 勇氣용기와는 根本근본을 달리하는 强烈강렬한 '내적 강인함'과 '과감한 決斷결단력'**을 意味의미합니다.
具體的구체적으로는 아래의 대조와 캐릭터로 描寫묘사됩니다.
1. 世上세상의 영달을 도모하는 勇氣용기와의 대조 우리가 通常통상 '勇氣용기'라 일컫는 것은 속세에서 영예를 안거나 난관을 타개해 열매를 쟁취하려 할 때 들이는 '심력'이나 '努力노력'을 뜻합니다. 하지만 제로 씨는 그런 物質的물질적 欲望욕망과 제휴하여 이권을 따내기 위한 담력은 靈的영적 遂行수행길에서 要求요구하는 영혼의 견고함에 비하면 "粗雜조잡하며 足脫不及족탈불급(比較비교조차 안 됨)"이라고 斷言단언합니다.
2. 에고 그 自體자체를 절벽으로 '투신시키는' 느낌 도학을 궁리하는 일은 신묘한 이능을 장착하거나 獲得획득하는 次元차원이 아니라, 只今지금까지 '참나'라고 誤認오인해 온 에고(自我자아)의 꺼풀을 깎고 뭉개는 淸掃청소 行爲행위입니다. 그러므로 探求탐구의 深淵심연에 들어간다는 行爲행위는 **「自身자신(自我자아)을 나락으로 번地點지점프 시키는」, 「에고를 방류하는」 식의 초탈한 행각**으로 描寫묘사됩니다.
3. 걸어갈수록 준엄해지는 험로를 견디기 위함 속세의 出世출세 가도는 밟아 올라갈수록 視野시야가 確保확보되며 平穩평온해지는 境遇경우가 많지만, 영의 노정은 正反對정반대여서 나아갈수록 더욱 緻密치밀하고 모질게 自己자기 밑천과 遭遇조우해 싸워야 합니다. 시始覺시각각 가시밭길을 通過통과해야 하는 악條件조건의 長期장기 레이스라 어설픈 열의나 다짐 따위는 途中도중에 무참히 꺾이기 십상입니다. 그렇기에 고행의 터널에서 도망치지 않고 완주하기 危害위해서는 自身자신이라는 껍데기 自體자체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천양지차의 勇氣용기(내적 기백)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行爲행위를 제물로 봉헌한다'는 가이드라인지침은 세부적으로 어떻게 意識의식해야 합니까?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따르면, '行爲행위를 供物공물로 바친다'는 行動행동은 무슨 거창한 禮式예식을 主觀주관하는 게 아니라, 職業직업 前線전선이나 평범한 日常일상의 잔잔한 活動활동 속에서 **"該當해당 視點시점에 自身자신이 다할 수 있는 極致극치의 성의를 쏟는 것"**을 意味의미합니다. 具體的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意識의식 개조를 요합니다.
  • 평판이나 보상을 完璧완벽하게 따돌린다 "남들이 날 어떻게 채점할까", "이 짓을 하면 무슨 떡이 생길까" 하는 욕심이나 스코어에 대한 執着집착을 行動행동하는 瞬間순간만큼은 머릿속에서 強制강제 퇴출합니다.
  • 只今지금 수중에 쥔 '自身자신의 전력'을 소진한다 그 刹那찰나에 自身자신이 장착한 知識지식과 在住재주, 行動행동할 수 있는 可能性가능성을 아낌없이 털어내 열性的성적으로 發揮발휘하기를 힘씁니다. 골수까지 다 쥐어짜진 못하더라도 現在현재의 能力능력이 닿는 데까지 그저 眞知진지하게 마無理무리를 짓겠다는 마인드로 集中집중합니다.
  • 日常일상의 모든 모퉁이에서 實現실현한다 이 가이드라인지침은 會社회사 一理일이나 대중 강연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每日매일 마주하는 부엌一理일이나 집 淸掃청소, 또는 요가 같은 遂行수행 속에서도 同等동등하게 作用작용합니다. 사소한 일距離거리도 "작금의 나를 供物공물로 제단에 올린다"는 信念신념으로 遂行수행합니다.
反對給付반대급부나 他人타인의 안색을 살피지 않고 오직 '작금의 나를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行爲행위에 三昧삼매되면, 소산으로 自身자신의 潛在的잠재적 역량이 스스로 全面전면에 나서며 外部외부의 상장과 稱讚칭찬도 뒤이어 自然자연히 굴러 들어오게 된다고 제로 씨는 장담합니다.

常住상주하는 것의 始原시원은 무엇認可인가요?

제로 씨의 解説해설에 依據의거하면, '常住상주하는 것(변하지 않는 것)'에는 **始源시원이나 始作시작이라는 槪念개념 自體자체가 存在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연유는 常住상주의 對象대상이 **'時間시간과 스페이스공간의 컨트롤통제를 받지 않는 에센스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제로 씨는 過去과거·現在현재·未來미래라는 時間시간의 進行진행 方向방향이나 '宇宙우주의 개벽' 같은 歷史的역사적 연對機대기는 現實현실에 存在존재하는 儼然엄연한 實體실체가 아니라 오직 只今지금 이 瞬間순간 우리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소설(비전)에 弗過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합니다.
우리가 감지하는 온갖 變化변화상(時間시간이 똑딱이며 흐른다는 幻影환영도 包含포함)은 그 바탕에 '변하지 않는 本體본체'가 自利자리 잡고 있기에 出現출현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환언하면 '時間시간'이라는 패러다임 自體자체가 常住상주체를 디딤돌 삼아 훗날 頭腦두뇌 속에서 創作창작된 神奇신기루(그림자)이므로, 時間시간을 超越초월한 常住상주체에게 "언제부터 가동되었는가" 하는 祈願기원을 구걸하는 質問질문 自體자체가 넌센스입니다.
變動변동하는 神奇신기루를 씻어 內面내면 마지막엔 '常住상주체'만이 남아 實際실제 世界세계에는 '그것만이 독점적으로 實存실존한다'고 제로 씨는 설파합니다. 그것은 知識지식이나 구어로 飜譯번역할 수 있는 下位하위 槪念개념이 아니며, 祈願기원을 안고 태어난 게 아니라 오직 絶對的절대적인 지반으로서 엄존하는 實在실재일 뿐입니다.

常住상주하는 것의 論理的논리적 始原시원을 糾明규명해 줄 수 있나요?

제로 씨의 講義강의에 基礎기초하면, **'常住상주하는 것(변하지 않는 것)'에는 論理的논리적으로도 '祈願기원'이나 '始作시작'이라는 思惟사유 시스템체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연유는 常住상주의 對象대상이 '時間시간과 스페이스공간의 컨트롤통제를 받지 않는 에센스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제로 씨는 過去과거·現在현재·未來미래라는 時間시간의 進行진행 方向방향이나 '宇宙우주의 개벽' 같은 歷史的역사적 연對機대기는 現實현실에 存在존재하는 儼然엄연한 實體실체가 아니라 오직 只今지금 이 瞬間순간 우리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소설(空想공상)에 弗過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합니다.
우리가 認識인식하는 모든 變化변화상(時間시간이 흐른다는 幻想환상도 包含포함)은 그 바탕에 '변하지 않는 本體본체'가 存在존재하기에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時間시간'이라는 觀念관념 自體자체가 常住상주체를 디딤돌 삼아 나중에 머릿속에서 創造창조된 허상(그림자)이므로, 時間시간을 超越초월한 常住상주의 것에 대고 "언제 開始개시되었는가" 묻는 발상 自體자체가 成立성립되지 않습니다.
變化변화하는 허상을 걷어內面내면 終局종국에는 '常住상주의 것(변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며 事實사실상 世界세계에는 '그것뿐이다'라고 제로 씨는 역설합니다. 그것은 單語단어나 理論이론으로 大變대변할 수 있는 性質성질이 아니며, 始原시원을 탑재하지 않은 채 그저 絶對的절대적인 土臺토대로서 現存현존하는 實在실재라고 하겠습니다.

카슈미르 시바교(카시미르 셰이비즘)나 상캬 哲學철학에서 말하는 存在論존재론, 有論유론(有論)적 解釈해석은 어떤가요?

提供제공된 소스나 기존 對話대화 履歷이력에는 '카슈미르 시바교'나 '상캬 哲學철학', '存在論존재론' 혹은 '有論유론' 같은 特定특정한 學派학파 名稱명칭이나 學術학술 用語용어에 대한 다이렉트직접적 言及언급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만 제로 씨는 印度인도 哲學철학(베다, 바가바드 其他기타, 샹카라, 파탄잘리의 요가 등)을 발판으로 삼아 **"무엇이 정말로 實在실재하는가(實在실재 및 存在論的존재론적 견지)"**에 관해 기존의 對話대화 흐름과 궤를 같以下이하는 形態형태로 다음과 같이 이야幾何기하고 있습니다.
제로 씨의 思惟사유시스템체계에서 '存在존재'의 메커니즘은 대략 다음 세 可知가지 核心핵심으로 整理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우리가 '現實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實在실재하지 않는다(幻想환상이며 그림자다) 제로 씨는 身體신체와 마음, 過去과거·現在현재·未來미래라는 時間시간의 축선, 그리고 눈앞에 노출되는 世界세계는 언제나 동요하며 변하는 屬性속성이어서 永久영구적인 '實在실재'가 될 수 없다고 斷定단정합니다. 이들은 플라톤의 '洞窟동굴의 譬喩비유'처럼 投射투사된 빛에 의해 빚어진 '그림자'나 '비전'을 實在실재라 盲信맹신하며 관람하는 형국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꿈의 영토가 想念상념으로 構築구축되듯 現實현실의 物質물질계 또한 소용되는 부속만 다를 뿐 內面내면에서 길어 올려진 幻想환상에 弗過불과하다는 것이 제로 씨의 見解견해입니다.
2. 世上세상을 存在존재케 만드는 源泉원천은 "내가 있다"는 錯覺착각(無名무명)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 비實在실재적 世界세계(宇宙우주와 他人타인 包含포함)가 상존하는 듯이 再生재생되는가 하면, 그 基底기저에는 **"나(意識의식)가 이곳에 實存실존한다"고 세뇌된 根本的근본적인 誤解오해(無名무명)와 我執아집**이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解説해설합니다. 이 '나'라는 중핵이 버티고 있기에 時間시간과 스페이스공간이 존립하고 世界세계가 觀察관찰 對象대상으로서 存在존재할 수 있는 스페이스공간이 생깁니다. 몸뚱이가 썩어 靈界영계(저승)로 천도한다 할지라도 '나'라는 執着집착이 解消해소되지 않는다면 同一동일하게 自身자신의 內面내면에서 世界세계를 조립하여 거기에 정주하기를 끊임없이 되풀以下이하게 됩니다.
3. 唯一유일하게 實在실재하는 것은 '常住상주체(변하지 않는 에센스본질)'와 '振動진동'이다 變化변화하는 性質성질은 本來본래 實體실체가 없으므로 그들에 대한 執着집착과 '나'라는 我執아집을 斷呼단호히 털어냈을 때 最後최후에 잔류하는 것이 바로 時空間시공간의 限界한계에서 逃避도피한 '변하지 않는 것(常住상주의 에센스본질)'입니다. 제로 씨는 실은 천지간에 '그것만이 홀로 實在실재한다'고 規定규정합니다. 이에 덧붙여 제로 씨는 森羅萬象삼라만상과 現象현상을 眞實진실의 창으로 보면 **"全部전부 단 하나의 振動진동이자 神性신성한 波動파동"**이라고 譬喩비유합니다. 이 世上세상은 본디 振動진동에 의해 調律조율되고 작동하며, 우리는 그것을 感覺감각 受容수용기와 內面내면의 誤解오해(記憶기억이나 我執아집)라는 필터를 장착하고 '現實현실의 歷史역사'로 왜곡해 수렴하고 있을 뿐이라고 어드바이스조언합니다.
要約요약하면 제로 씨가 描寫묘사하는 存在論的존재론적 洞察통찰은 **"實在실재하는 것은 永久영구하며 制約제약이 전無限무한 土臺토대(常住상주의 것·振動진동)뿐이며, 우리가 맛보는 世界세계와 自己자기 存在존재는 自我자아의 傲慢오만에 힘입어 內面내면에서 刹那찰나만에 스크린에 映寫영사되는 幻影환영에 弗過불과하다"**는 結論결론에 다다릅니다.

'모든 것은 神性신성한 振動진동이다'라는 感覺감각을 詳細상세히 말해 줘요.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따르면, '모든 것이 神性신성한 振動진동이다'라는 自覺자각은 우리가 日常的일상적으로 '길(吉)·흉(凶)'을 점치며 재단하는 世上세상萬事만사와 對象대상이 **根本的にはただの「1つの振動」であり、そこには私たちに気づきを促す恩寵은총이 潛在잠재되어 있다**고 洞察통찰하는 感覺감각을 가리킵니다.
具体的なメカニズムと感覚は、以下のように説明されています。
1. 世界세계의 實相실상은 '그저 하나의 振動진동'이다 우리가 目擊목격하는 이 宇宙우주와 유정물들은 요한福音복음의 성구와도 맥을 같以下이하듯 본디 但只단지 '振動진동'에 基盤기반하여 形成형성되었고, 儼然엄연히 현視點시점에도 波動파동의 性格성격으로 生存생존하고 있습니다.
2. 人間인간이 '意味의미'를 왜곡해 급조하여 덧칠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單純단순한 振動진동'을 肉體육체의 五感오감 受容수용기나 뇌를 통해 吸收흡수하는 段階단계에서 過去과거의 誤解오해와 記憶기억의 안경을 장착하고 自意자의적으로 가공해 버립니다. 그리하여 겉模樣모양을 報告보고 "이것은 성스러운 보배다", "이것은 흉악한 재앙이다", "저놈은 태어나선 안 될 악마이다"라며 낙인을 찍고, 그 表現표현물에 拘束구속되어 "그것이 생생한 現實현실이다"라고 철석같이 自家자가 최면을 걸어 살아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3. 萬物만물은 省察성찰을 종용하는 '實在실재의 부름'이다 에고에서 기인한 일次元차원적 解釈해석이나 善惡선악 基準기준을 철폐하고, 더욱 원숙한 '實相실상'의 렌즈로 對象대상을 觀察관찰하면 겉보기엔 '악質的질적인 人物인물'이나 事件사건을 불문하고 世上세상 萬事만사가 同等동등한 '단 하나의 振動진동'임을 看破간파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被造物피조물에는 '省察성찰의 씨앗(可能性가능성)'이 암장되어 있어, 事實사실상 그 전량이 우리를 本體본체로 印度인도하려는 '實在실재의 포효(부름)'이자 '神醫신의 慈悲자비(성음, 말씀)' 및 '聖殿성전', '聖者성자의 법어'와 하등 다를 바 없는 役割역할을 行使행사한다고 제로 씨는 主張주장합니다.
4. 同時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눈으로 觀察관찰하면 이 땅에 展開전개되는 萬事만사는 但只단지 하나의 波動파동이자 '神性신성한 것'이라 귀결됩니다. 同時동시에 우리가 제멋대로 妄想망상하는 固定的고정적 形相형상(絶對的절대적 악마나 天使천사) 따위는 存在존재하지 않는다는 觀點관점론에서, 實相실상은 '아무것도 아닌 本來본래 공한 것'이라高度고도 描寫묘사됩니다.
이처럼 視野시야에 노출되는 온갖 事件사건과 사람을 過去과거의 사사로운 선입견에 의한 '낙인'으로 왜곡해 感想감상하지 않고, **萬物만물을 골고루 '나를 本體본체로 回歸회귀시켜 주는 성스러운 波動파동'으로 흔쾌히 포용하는 안목**이야말로 '一切일체가 神性신성한 振動진동이다'라는 命題명제의 본령입니다.

'實在실재의 부름'이란 日常일상에서 어떤 타이밍에 돌출합니까?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依據의거하면, '實在실재의 부름'은 거창한 宗敎종교 禮式예식이나 神秘主義신비주의적 탈혼 狀態상태에서만 감지되는 奇跡기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呼吸호흡하는 現實현실의 **'모든 刹那찰나', '모든 사단', '遭遇조우하는 모든 生命생명과 因緣인연'**의 形態형태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具体的には、以下のような形で日常に現れていると説明されています。
1. '경사'뿐 아니라 '액운'의 모퉁이 속에서도 發見발견된다 우리가 一次的일차적 氣分기분으로 "幸福행복하다", "포근하다"며 首肯수긍하는 對象대상뿐 아니라, 겉보기엔 "불길한 재앙", "치욕스러운 事態사태", "태어나선 안 될 빌런"이라 지탄하는 要素요소마저 망라하여 모든 存在존재가 '實在실재의 전언(부름)'으로 다가옵니다.
2. 온갖 사단이 '自覺자각의 期會기회'를 장착하고 있다 日常일상에서 스치는 事件사건과 存在존재에는 우리가 스스로의 我執아집(에고)을 覺醒각성하고 에센스본질로 발돋움하도록 돕는 '悟깨달음의 씨앗'이 숨겨져 있습니다. 즉 每日매일의 一過일과 속에서 우리가 장벽을 마주해 포즈정지하거나, 自我자아 省察성찰의 期會기회를 附與부여받는 일 自體자체가 實在실재의 노크(神醫신의 배려)로 가동되는 現象현상입니다.
3. 終局종국에는 '受容수용하기 나름'이어서 日常일상의 一切일체가 부름이 된다 이들이 單純단순한 '一過性일과성의 귀찮은 해프닝(혹은 악재)'으로 매듭지어질지, 아니면 '實在실재의 부름'으로 효력을 發揮발휘할지는 **우리가 그것을 어떤 方式방식으로 뇌이징하고 받아내는가(마음을 보내는 經路경로)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제로 씨는 主張주장합니다. 에고의 '호(好)·오(惡)'나 '선(善)·악(惡)'이라는 변색 렌즈를 장착하고 관전하는 한, 닥치는 일들은 單純단순한 苦痛고통(스트레스)이나 快樂쾌락으로밖에 가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욱 深遠심원한 始覺시각(모든 것은 實在실재가 송신한 단 하나의 거룩한 振動진동이라는 안목)을 수립하면 日常일상에 드리우는 萬事만사가 나를 故鄕고향(에센스본질)으로 데려다 줄 '經典경전'이나 '聖者성자의 금언'과 完全완전히 똑같은 性格성격과 效率효율을 장착하게 된다고 어드바이스조언합니다.

'모든 것이 神性신성한 振動진동이다'라는 眞理진리를 體得체득할 방안은 있나요?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따르면, 천하의 모든 存在존재와 事件사건이 '단 하나의 거룩한 波動파동'이라는 實相실상은 우리가 普通보통 身體신체 感覺器官감각기관이나 頭腦두뇌의 '표피적 意味의미 附與부여'에 얽매여 있기에 평범한 마인드로는 體感체감할 수 없습니다. 이 實相실상을 탁上空상공론식 理解이해로 썩히지 않고 진짜 體得체득(혹은 예리하게 포착)하기 위한 實踐실천 방략으로 다음 사安易안이 거론됩니다.
  • 1. 표피적 感覺감각에서 '그 內面내면에 要諦요체'로 마음의 배분을 轉換전환한다 우리는 他人타인이나 世上세상을 感想감상할 때 외양의 動作동작, 안색, 말씨 등 '物質的なレベル(表面)'만으로 채점하는 慣性관성에 젖어 있습니다. 一切일체가 波動파동(에너지)임을 온몸으로 體得체득하려면 그러한 껍데기 情報정보를 分析분석하는 비중을 意識的의식적으로 遮斷차단하고, 그것을 跳躍도약해 '그 深淵심연에서 스며 나오는 뉘앙스'로 마음을 돌리는 숙달 訓練훈련을 權奬권장합니다. 日常일상에서 이러한 意識의식 移轉이전을 演習연습함으로써 五感오감 機關기관에 포획되지 않는 고운 에너지를 캐치할 수 있게 됩니다.
  • 2. 만트라(眞言진언)의 共鳴공명을 活用활용한다 宇宙우주가 波動파동으로 調律조율되는 異狀이상 '單語단어' 亦是역시 波動파동입니다. 만트라 遂行수행은 精巧정교하게 프로그래밍설계된 성음(振動진동의 패턴)을 실生活생활에 구사하는 接近法접근법입니다. 자구 解釈해석도 意味의미 있지만 만트라 自體자체의 파장과 共鳴공명을 反復반복해서 울림으로써 우리의 內面내면 構造구조와 뇌神經신경에 다이렉트 影響영향을 가해, 波動파동 次元차원에서 心身심신 교정과 覺醒각성을 서포트지원하는 효능을 發揮발휘합니다.
  • 3. 요가 遂行수행(아사나와 呼吸法호흡법)으로 감수성을 가다듬는다 고운 波動파동을 直感직감할 지반을 닦기 危害위해 요가 아사나(姿勢자세)와 프라나야마(呼吸法호흡법)가 훌륭한 대안입니다. 自己자기 골격을 작동하고 숨決意결의 狀態상태를 주밀하게 監視감시하는 專門的전문적 행공을 거듭함으로써 自然자연히 고운 에너지와 波動파동에 精密정밀하게 反應반응하는 체질로 개조됩니다.
우리가 가죽 부대(육신)를 뒤집어쓰고 延命연명하는 처지라 五感오감 등 物質的물질적 刺戟자극은 '폭포수나 해일마저 凌駕능가하며' 끊임없이 浸透침투해 오므로 십중팔구 껍데기 解釈해석에 理性이성을 강탈당합니다. 그러나 평소 觀照관조 포인트를 전향하고 정규 行法행법을 訓練훈련해 感覺감각 노예에서 解放해방되며 腦波뇌파를 安定안정시키면 그 深淵심연에 항시 메아리치던 '단 하나의 거룩한 振動진동'을 알아차리고 體感체감하는 境地경지로 순항하게 된다고 격려합니다.

'萬物만물이 거룩한 波動파동이다'라는 自覺자각이 불러오는 慈悲자비(恩寵은총)는 무엇認可인가요?

제로 씨의 담론에 根據근거한 '萬物만물은 거룩한 波動파동이다라는 悟깨달음의 恩寵은총'이란, **日常일상의 잡다한 生命생명과 事件사건이 알고 보니 나를 本體본체(實在실재)로 소환하기 위한 '성스러운 演出연출'이었음을 看破간파함으로써 收穫수확하는 壓倒的압도적 解脫感해탈감과 極致극치 平安평안의 感覺감각**을 명명합니다.
具体的には、以下の3つのポイントとして語られています。
1. 每日매일의 行跡행적이 '經典경전'이나 '神醫신의 음성'으로 윤색된다 우리가 普通보통 에고의 선글라스를 끼고 "이것은 축복이다", "이것은 마경(재앙)이다" 지레짐작하는 일들조차 實相실상에서 目擊목격하면 一切일체가 '하나의 波動파동'이자 '實在실재의 데모(表現표현)'입니다. 이 法則법칙을 깨달으면 겉보기엔 害惡해악 같은 악재나 원수 같은 人間인간一地일지언정 事實사실은 나로 하여금 我執아집을 풀고 눈을 뜨도록 배려하는 '覺醒각성의 찬스'를 주선해 주는 귀인임을 實感실감합니다. 다시 말해 每日매일의 事件사건 지대 全體전체가 '經典경전'이나 '대도인의 금언', 心地심지어 '神醫신의 성음'과 티끌만큼도 다르지 않은 격조와 效率효율을 지니고 있음을 確認확인하게 되는 셈입니다.
2. 事件사건의 가時的시적 스코어에 一喜一憂일희일비하지 않는다 森羅萬象삼라만상이 '나를 本體본체로 가이드 하려는 거룩한 波動파동'임을 確信확신하고 나면, 事件사건의 표피적 득실(합격, 낙방, 取得취득, 몰수)에 心地심지가 흔들리는 悲劇비극이 終了종료됩니다. 아픔이나 고역조차 自己자기를 초발심 覺醒각성으로 案內안내하는 求道구도의 조력으로 받아들이기에, 재난에 대항하는 本能본능적 恐怖공포나 巨富거부 反應반응이 永久영구 박멸됩니다.
3. 世上세상을 향한 信頼신뢰와 絶對的절대적인 평정 이 實相실상을 파헤치는 안목은 우리가 '內面내면 깊은 곳에 얽매임'을 스스로 갈아 엎을 비옥한 개간지가 됩니다. 온 宇宙우주의 시나리오가 실은 나를 故鄕고향(에센스본질)으로 회군시키기 危害위해 가동되는 '神性신성한 禮式예식'임을 몸소 體驗체험함으로써, 어떤 地獄지옥 같은 참상에 버려져도 "萬事만사는 순리대로 작동 중이다"라는 絶對的절대적 安全안전판(平穩평온) 위에 自利자리를 깔고 누울 수 있게 됩니다.
整理정리何者하자면 '萬物만물이 성스러운 振動진동이다'라는 自覺자각의 은혜는 **世上세상이 自身자신을 抑壓억압하고 괴롭히는 유배지가 아니라, 나를 眞理진리(본향)로 救援구원하려는 '거룩한 가이드라인으로 포장된 樂園낙원'이었음을 환호하며 世上세상과의 불화를 永遠영원히 종식하는 열쇠**라 평하겠습니다.

'神性신성한 振動진동'을 體感체감하도록 意識의식을 內面내면으로 復歸복귀시키는 訓練훈련법은 무엇認可인가요?

'神性신성한 振動진동'을 體得체득하기 危害위해 意識의식의 焦點초점을 深淵심연으로 移動이동시키는 訓練훈련이란, **우리가 평소 習慣습관적으로 벌이는 '눈코입귀 등 感覺감각 센서만으로 被造物피조물을 糾明규명하려는 慣性관성'을 고의로 느슨하게 만들고, 그 너머에 요동치는 고운 에너지(波動파동)에 마음의 映寫機영사기를 맞추는(轉換전환하는) 行動행동**을 뜻합니다.
제로 씨는 천하 萬物만물과 宇宙우주는 根本的근본적으로 '단 하나의 波動파동이자 성스러운 實體실체'라고 역설합니다. 但只단지 우리는 부질없이 表面표면의 스펙에 理性이성을 도둑질당하고 맙니다. 이를 몸소 體驗체험하기 위한 具體的구체적 솔루션으로 아래 매뉴얼이 推薦추천됩니다.
1. 가時的시적 感覺감각에서 '深淵심연에서 스며 나오는 뉘앙스'로 눈을 돌린다 우리는 因緣인연을 맺거나 해프닝을 볼 때 身體신체 거동이나 表情표정, 옥음 등 '物質물질 次元차원의 껍데기'만으로 낙인찍는 고약한 버릇이 있습니다. 이 악습을 冷徹냉철히 自覺자각하고 껍데기 情報정보의 판독 비중을 強制강제로 축소(혹은 意識的의식적 無始무시)함으로써, 그것을 跳躍도약하여 **'그 背後배후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印象인상이나 무드, 內面내면에서 웅성대는 固有고유 感覺감각)'에 마음을 꽂아 두는 訓練훈련**을 實施실시합니다.
2. 日常일상 속 담소 지대에서 微細미세한 에너지를 포착한다 實相실상 우리는 이미 生活생활 속에서 문자나 비주얼뿐 아니라 "저 사람은 只今지금 번아웃인 듯하다", "초조해 보인다"와 같은 오오라나 에너지(波動파동)를 無意識무의식으로 直感직감하며 疏通소통하고 있습니다. 肉眼육안과 고막 등의 感覺감각 受容수용기로만 情報정보를 해킹하는 게 아니라는 事實사실을 절감하고, 마음의 안테나를 意識的의식적으로 돌리는 移轉이전 演習연습이 매우 重要중요합니다.
3. 행공(아사나와 呼吸法호흡법)을 통한 感性감성 계발 및 監視감시 안테나를 전향하는 訓練훈련은 요가 아사나(姿勢자세)와 呼吸法호흡법을 매개로 삼아 極大化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自己자기 골격을 使用사용하며 呼吸호흡 주기에 맞춰 육신 狀態상태와 腦波뇌파 움직임을 진득하게 모니터링하는 作業작업을 연마하면 自然자연스레 感覺감각이 세공되어 가다듬語集어집니다. 이 段階단계가 成熟성숙하면 程式정식 瞑想명상 코스에서 더 조밀한 靈音영음이나 波動파동 自體자체에 直接직접 注意주의를 묶어 둘 要領요령이 장착됩니다.
4. 만트라(성음의 振動진동)를 애용한다 一切일체가 波動파동으로 作用작용하는 만큼 '말씨' 또한 波動파동의 領域영역입니다. 면밀히 프로그래밍설계된 만트라의 波動파동을 구송함으로써 그 振動진동이 뇌細胞세포와 심중에 즉각적 타격을 가해 고밀도 次元차원의 覺醒각성과 心身심신 오버홀을 서포트합니다.

物質的물질적 데이터(껍데기)를 確認확인하는 비중을 줄인다는 건 具體的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제로 씨의 매뉴얼에 따르면, '物質的물질적 情報정보(껍데기)의 消費소비 비율을 억制限제한다'는 말의 세부 實踐실천 강령은 **日常일상의 사교 마당에서 육신 狀態상태나 낯빛, 목소리처럼 視聽시청각 센서에 잡히는 情報정보로부터 意圖的의도적으로 精神정신을 分散분산시키고, 그 이면에 잠복한 '直感직감'에 精神정신을 集中집중하는 訓練훈련**을 뜻합니다.
具体的には以下の手順や視点が語られています。
1. 기실 평소에도 '物質물질 너머의 뉘앙스'를 감지하고 있음을 悟깨닫는다 "나는 기(氣)나 에너지를 잘 느끼지 못해"라고 내빼는 사람一地일지라도 現實현실에선 代人대인 關係관계 속에서 "저 親舊친구 오늘 탈진 狀態상태인 것 같군", "우울해 보여", "매우 들떠 있네" 하는 무드의 微妙미묘함(物質물질 異狀이상의 領域영역)을 無意識무의식으로 접수해 相對상대의 리얼 컨디션을 診斷진단합니다. 于先우선 本人본인이 눈코귀 感覺감각에만 의탁하는 機械기계가 아니며 이미 直感직감의 채널로 데이터를 송受信수신 중이라는 팩트를 認定인정하는 것부터가 始作시작입니다.
2. 身體신체 거동·얼굴 表情표정·抹消말소리를 수집하는 비율을 作爲작위적으로 누른다 우리는 日常일상에서 綺語기어이 '物質물질 段階단계의 단서만으로 偏見편견을 일삼는 버릇'을 反復반복합니다. 따라서 相對方상대방과 면담할 시에는 相對상대의 關節관절 움직임, 입꼬리의 실룩임, 옥음 등의 '껍데기 데이터'를 아예 모르는 척 패스하거나 監視감시 빈도를 意識的의식적으로 감축(注意주의의 빔을 딴 곳으로 굴림)하도록 神經신경 씁니다.
3. 노출되었다 한들 '跳躍도약해 우회하여' 深層심층의 直感직감에 에너지를 보낸다 五感오감의 信號신호를 完璧완벽하게 셧다운하기는 不可能불가능에 가깝기에, 만약 그것들이 고막을 때리거나 망막에 맺힐지라도 그 스킨 情報정보를 '공중 跳躍도약하고 패스'하여, 그 깊은 곳에서 演出연출되는 波動파동(印象인상이나 무드)이나 自身자신의 심중에서 直感的직감적으로 감응하는 파장에 온 神經신경을 沒我몰아줍니다.
4. 精神정신 안테나의 전향을 每日매일 演習연습한다 初期초기에는 어쩔 수 없이 망막이나 고막 등의 거친 五感오감에 홀려 煩惱번뇌를 일삼겠으나 日常일상 다反射반사에서 고의로 '포인트를 回避회피하는 訓練훈련'을 재차 거듭함으로써 漸次점차 표피 너머에 넘실距離거리는 조밀한 에너지(波動파동)를 귀신같이 캐치하는 체질로 숙달된다고 解説해설합니다.

物質的물질적 단서보다 深淵심연의 直感직감으로 意識의식을 안착시킬 秘訣비결이 있나요?

제로 씨의 가이드라인지침에 따르면 껍데기 단서(身體신체, 表情표정, 문자 등)를 패스하고 그 너머의 波動파동이나 에너지로 意識의식을 안착시킬 秘訣비결은 **日常일상에서 부리는 作爲작위적 '안테나 전향 訓練훈련'**과 **요가 등을 매개로 한 '精密정밀 모니터링'**의 2대 아젠다로 分割분할됩니다.
具体的には以下のようなコツや練習方法が語られています。
1. 생동하는 現實현실 속에서 '패스하고 바라보는' 演習연습을 한다 우리는 부득불 동공에 비치는 事物사물이나 고막을 울리는 문장 같은 거친 刺戟자극에 넋을 잃기 십商人상인 習慣습관성 我執아집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 카르마적 습성을 打破타파할 要領요령은 代人대인 關係관계를 맺을 때 고의로 相對상대의 關節관절 驅動구동이나 안색 등의 '物質물질 레벨 단서'를 透明투명 人間인간 취급하는 다짐을 품는 것입니다. 설령 視聽시청각에 노출되었을지라도 그 표피 데이터를 **'공중 跳躍도약해 스킵'하고, 그 背後배후에서 송신되어 오는 에너지 파장이나 自己자기 內面내면에서 고개를 드는 微細미세 直感직감의 채널로 注意주의의 빔을 굴려 맞추는 演習연습**을 每日매일 복습해야 마땅하다고 설파됩니다.
2. 요가 행공(아사나와 呼吸法호흡법)으로 監視감시 能力능력을 育成육성한다 평시의 자율 演習연습에 덧붙여 요가 아사나(姿勢자세)나 프라나야마(呼吸法호흡법) 같은 테크니컬한 空法공법을 구사하는 것 亦是역시 內面내면의 感覺감각으로 精神정신을 안착시킬 偉大위대한 디딤돌(지반 닦기)이 됩니다. 골격을 가동하면서 "작금에 關節관절과 筋肉근육 狀態상태는 어떠한가", "숨을 쉴 때 細胞세포가 어떤 리액션을 일으키는가"를 돋보기로 보듯 미시 모니터링하여 本來본래 自己자기 밑천을 해킹하는 作業작업을 적층시킵니다. 專門전문 空法공법을 매개로 이 監視감시망을 풀가동하고 있으면 절로 五感오감이 세공되어 섬세해지며 미약한 에너指導지도 기가 막히게 접수해 냅니다.

'껍데기 데이터를 스킵하고 바라본다'는 具體的구체적인 트레이닝 매뉴얼은 어떠한가요?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根據근거하면 '物質的물질적 情報정보(껍데기)를 뛰어넘어 感想감상한다'는 테마의 現實的현실적인 단련 매뉴얼은 **每日매일 遭遇조우하는 사교 마당에서의 안테나 전향**과 **요가 등의 專門전문 空法공법을 통한 監視감시 피드백 訓練훈련**의 2대 갈래로 區分구분됩니다.
1. 평범한 代人대인 疏通소통 局面국면에서 '深淵심연에 암장된 本體본체'로 焦點초점을 移轉이전하는 訓練훈련 우리는 因緣인연을 대할 때 어휘나 비주얼뿐 아니라 現場현장의 기류나 相對상대의 아우라 같은 '物質물질 異狀이상의 殘像잔상(에너지)'을 無意識무의식으로 노출해 吸收흡수합니다. 이 미약한 波動파동을 意識의식 次元차원에서 正確정확히 포획하기 危害위해 一過일과 중에 다음 사안을 예습합니다.
  • 사람과 미팅할 때 **相對상대의 골격 狀態상태나 안색, 제스처 등 '物質물질 레벨 情報정보'를 못 본 척 無始무시하기로 決心결심한다**.
  • 설령 그 視聽시청각적 껍데기 殘像잔상이 뇌에 浸透침투했을지라도 **그 스킨을 고의로 '스킵하여 뛰어넘고', 그 안에서 감지되는 뉘앙스나 自身자신의 심중에서 한층 微妙미묘하게 共鳴공명하는 파장 채널로 다이얼을 꺾어 맞춘다**.
2. 요가 遂行수행(아사나와 프라나야마)에 依據의거한 監視감시력 증진 평시 트레이닝 외에도 本人본인이 아사나(姿勢자세)나 프라나야마(呼吸法호흡법) 같은 專門전문 空法공법을 손수 트레이닝하는 방안 亦是역시 이러한 안목을 연마하는 데 아주 효험이 좋은 레슨 코스입니다.
  • 그냥 무작정 몸둥이를 비트는 게 아니라 **自己자기 뼈대를 전同時동시키면서 숨을 쉴 때 "어떤 現象현상이 펼쳐지는가"를 진득하게 모니터링한다**.
  • **육신 感覺감각에 머물지 않고 本人본인의 '腦波뇌파(마음)' 리액션마저도 도맡아 連續연속 주시함**으로써 레슨을 移行이행하는 와중에 절로 感性감성이 영글어 微細미세 波動파동을 납치해 오는 기량이 育成육성됩니다.

物質的물질적 껍데기와 그 深淵심연에 암장된 波動파동의 差異차이점을 더 면밀히 알려줘

제로 씨의 講義강의에 따르면, '物質的물질적 단서'와 '그 안쪽에 암장된 波動파동'은 完全완전히 別個별개로 獨立독립되어 노는 두 個體개체가 아닙니다. 뿌리는 **量子양자 冒頭모두 同等동등한 '단 하나의 振動진동'이며, 但只단지 우리가 그것을 '어떠한 뎁스(거친가, 조밀한가)로 튜닝하여 吸收흡수하는가'의 差異차이**일 뿐이라고 糾明규명합니다.
具體的구체적으로는, 以下이하의 差異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정돈됩니다.
1. 物質的물질적 껍데기 = 波動파동을 '意味의미 附與부여'하여 얼려 버린 투박한 表面표면 物質물질 데이터란 우리가 物理的물리적 五感오감 受容수용기(망막, 고막 등)를 매개로 해 접수하는 어휘 단서입니다. 가령 대방의 關節관절 驅動구동, 안색, 성조, 單語단어의 자구 意味의미 따위가 代表的대표적입니다. 事實사실 宇宙우주 萬物만물은 오직 '波動파동'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感覺감각 필터로 꿀꺽한 뒤 過去과거의 선입견과 我執아집의 렌즈를 장착하고 오토매틱 解釈해석을 해 버립니다. 소산으로 "이것은 이런 규격이다", "이 人間인간은 이런 성향이다"라고 뇌 안에서 멋대로 規定규정하여 꽁꽁 얼려 버린 비주얼(映像영상)로 관람하고 있는 對象대상이 바로 '物質的물질적 情報정보(現實현실)'입니다. 이는 波動파동을 가장 거친 해상道路도로 영접해 意味의미를 強制강제 주입해 버린 껍데기 쪼가리에 該當해당합니다.
2. 깊은 곳의 直感직감(에너지) = 한층 實相실상에 육박한 촘촘한 波動파동의 거동 반면 그 內面내면에 故人고인 直感직감이란 五感오감의 干涉간섭을 跳躍도약해 스킵한 지대에서 다이렉트(靈的영적)로 노포크 접수하는 조밀한 기류입니다. 예컨대 相對상대의 얼굴색이나 어투(껍데기 情報정보)가 어떻든 간에 "왠지 서글퍼 보인다", "녹초가 된 듯하군", "매우 신났네"라고 감을 잡거나 現場현장의 기류(雰圍氣분위기)를 독심하는 行爲행위가 包含포함됩니다. 더불어 本人본인 스스로 느끼는 "오늘 몸이 찌푸둥하네", "심기가 어둡다"와 같은 靈的영적 컨디션 또한 이 바운더리에 귀속됩니다. 이들은 物理的물리적 규격으로 제련되기 전 段階단계의, 혹은 외형을 超越초월해 放出방출되는 에너지의 性格성격이며, 한층 純度순도 높은 '波動파동'에 근접한 밀도 높은 世界세계의 거동입니다. 우리는 日常일상에서 이미 이들을 無意識무의식적으로 直感직감하며 살아可知가지만, 폭포처럼 흘러드는 五感오감 情報정보에 혼을 뺏겨 까맣게 忘却망각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3. 뿌리는 모調理조리 '단 하나의 성스러운 波動파동' 눈앞의 物理的물리적 宇宙우주도, 보理智이지 않는 오오라나 想念상념의 영토(꿈 등)도, 構成구성 部品부품이나 意識의식을 노크하는 레벨이 틀릴 뿐 본류에 도도히 흐르는 것은 完璧완벽하게 同一동일한 '단 하나의 거룩한 振動진동'입니다. 우리가 껍데기 操作조작(호오, 善惡선악 判斷판단)을 철폐해 버릴 수 있다면 一切일체가 골고루 나를 救援구원할 神性신성 波動파동임을 눈치채게 된다고 응원합니다.
※注意주의할 점: 조밀한 에너지 마도 最終최종 終着종착지가 아니다 제로 씨는 核心핵심 안목으로서 비록 物理물리 껍데기를 스킵해 고운 기나 波動파동을 감지할 水準수준에 到達도달했을지라도, "그것을 感想감상하는 觀客관객(나)"이 殘存잔존하는 異狀이상 그 조밀한 기류마저도 內面내면에서 급조해 낸 假想가상물(비전)일 뿐이라고 쐐기를 박습니다. 기공적인 波動파동도 結局결국 物理물리계의 延長線연장선상에 位置위치한 소품(本質的본질적으로 그리 심오한 絶對절대 實在실재가 아님)으로 치부하는 논조도 개진됩니다. 따라서 고운 波動파동을 直觀직관하는 能力능력은 긴요한 스테理智이지지만 終局종국엔 그 현묘한 波動파동조차 '방류하여 얽매理智이지 않는' 탈바꿈이 命令명령됩니다.

物質的물질적 껍데기와 그 深淵심연에 故人고인 波動파동은 어떤 고리로 連結연결되어 있나요?

物質물질 情報정보와 深淵심연의 波動파동(에너지)은 각자 도생하며 떨어진 別個별개의 소품이 아니라, **본디 '同一동일한 하나의 實體실체'가 어떤 뎁스나 模樣모양새로 외형을 빚고 우리에게 吸收흡수되느냐의 튜닝 差異차이**로 直結직결되어 있습니다.
소스에 依據의거하면 이 世界세계의 온갖 事件사건과 우리가 송신하는 어휘들은 모調理조리 뿌리를 캐면 振動진동에 의해 成立성립되었으며, 儼然엄연히 현 타임에도 單純단순 波動파동의 形態형태로 共存공존합니다.
우리가 '物質물질 데이터(사지 거동, 안색, 성음, 어휘 등)'로 취급하는 것은 그 單一단일한 波動파동이 物理물리 골격의 五感오감 필터를 通過통과하며 我執아집(記憶기억과 선입견)의 가공 시스템을 거쳐 自動자동 飜譯번역된 '껍데기 데모'일 뿐입니다. 우리는 표피의 광경에 매혹되어 "이것은 이런 규격이다" 낙인찍어 盲信맹신하지만 實相실상에서 目擊목격하면 몽땅 한 줄기 振動진동입니다.
반면 우리가 껍데기 情報정보를 跳躍도약해 直感직감하는 '內面내면의 振動진동이나 에너지(기류, 오오라 등)'에 관해 제로 씨는 **"기공적 에너지나 物理的물리적 육神異신이나 結局결국 한 통속으로 묶어 判斷판단하는 때도 있다"고 진술하듯 實際실제 두 領域영역은 完璧완벽하게 同等동등한 해상도 次元차원의 껍데기**에 該當해당합니다. 즉 物理的물리적 껍데기나 內面내면의 기류나 우리가 디코딩하는 거칠기와 精密정밀도가 다를 뿐 지단으로 이어진 쌍둥이 波動파동입니다.
다만 제로 씨는 중대 警告경고로서 **"조밀한 기류나 에너지 波動파동을 캐치할 水準수준이 되었어도 그것은 但只단지 거친 物質물질계의 延長線연장선에 位置위치한, 그리 深遠심원하지 못한 道具도구"**라고 폭로합니다. 아無理무리 고행 空法공법을 연마해 微妙미묘한 靈音영음이나 波動파동에 精神정신을 안착시켰을지언정 "그것을 感想감상하는 나"가 實在실재하는 한 根源的근원적 迷妄미망의 그물에 포획된 셈이기에, 終局종국엔 그 현묘한 파장을 스캔하는 行爲행위에서조차 離脫이탈해 초극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神性신성한 振動진동'과 '實在실재의 부름'의 相互상호 關係관계는 어떤가요?

제로 씨의 說明설명에 따르면 '神性신성한 振動진동'과 '實在실재의 부름'은 **이 世界세계의 '本來본래적 成立성립 요건(實相실상)'과 그것이 衆生중생에게 미치는 '메커니즘(效率효율)'이라는 表裏一體표리일체의 고리**입니다.
具体的には以下のように結びついています。
1. 萬物만물의 에센스본질이 '거룩한 振動진동'이다 우리가 밤낮 겪는 萬事만사와 感情감정, 現存현존하는 事物사물은 에고의 스킨 解釈해석을 廢棄폐기하고 진면목(實相실상)의 눈으로 관람하면 **"죄다 實在실재가 派遣파견한 단 하나의 振動진동이자 神性신성한 波動파동"**입니다. 애초 萬物만물은 한 가닥 振動진동에 期待기대어 태어났고 現在현재 이 瞬間순간에도 波動파동의 격조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2. 그렇기에 萬事만사가 '實在실재의 포효(부름)'로 가동된다 被造物피조물이 實在실재의 성스러운 전언(振動진동)으로 演出연출된 덕에 겉보기엔 사악한 재앙이나 흉측한 빌런을 包含포함해 '萬物만물'과 '一切일체 感覺감각'이 우리에게 覺醒각성을 수령시키는 **'實在실재의 부름'**으로 둔갑할 수 있습니다. 經典경전이나 聖者성자의 說法설법뿐 아니라 日常일상의 흙먼지 하나조차 本來본래는 쌍둥이 振動진동이기에 골고루 省察성찰의 씨앗을 탑재하고 있는 셈입니다.
結論的결론적으로 이 世上세상이 **"神性신성한 振動진동(實在실재의 派遣파견)"으로 調律조율되어 작동한다는 팩트가 엄존하기에, 우리가 그것을 어떤 態度태도로 뇌이징하고 포용하느냐에 준해 每日매일의 사소한 돌멩이조차 참나(眞理진리)로 호송해 줄 '實在실재의 부름'으로 가동된다**는 法則법칙이 두 命題명제의 커넥션입니다.
← 아카이브 목록으로 돌아가기 다음 글: 불이일원(不二一元)과 '유일한 실재' →